지난해 말 자녀를 결혼시켰다. 아니, 이 말은 사실과 다른 표현이다. 자녀가 결혼을 했다가 정확한 표현이다.우리네와 달리 그들은 스스로 파트너를 찾고 결혼을 결정했다.혼인 날짜와 결혼식 프로세스, 모든 것이 자녀의 디자인에 따라 결정되었고 부모인 우리는 결정된 것을 따랐다.그도 그럴 것이 삼십 대 중후반이 되어 결혼을 하는 자녀들은 이미 완전히 성인들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이십 대에 결혼한 우리네가 거의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존했던 것과는 다르다.그래서 ‘혼주=혼인의 주인’의 의미도 바뀔 수밖에 없다. 이제 혼주는 부모가 아닌 당사
마침 12월 중순부터 뉴질랜드를 여행하고 있다.한국은 영하 15도를 넘는 강추위에 폭설까지 겹쳐 사방이 꽁꽁 얼어붙었다는 뉴스를 보았다.두고 온 식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은근 신나기도 하다. 이렇게 추운 겨울에 나는 반대편 뉴질랜드의 여름을 즐기고 있다니!꽉 막히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에 앉아서 정체되어 길게 늘어선 승용차 행렬을 바라볼 때의 희열이라고나 할까!뉴질랜드의 남섬과 북섬을 일주에서 자주 보는 것과 드물게 보는 것…먼저 자주 보는 것은 드넓은 초원의 양떼와 소떼이다. 특히 광활한 목초지대에서 머리를 박고 풀을 뜯고
“아니! 다 같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데 부장이 이 정도는 파악하고 와야 하는 게 기본 아닌가요?” A는 B부장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진다.팀원의 보고를 함께 듣는 자리에서 상사인 나를 앞에 두고 팀원에게 업무 진척도를 묻다니! 이 정도는 미리 파악하고 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열이 확 오른다.경력사원으로 몇 달 전 합류한 B부장은 부지런히 움직이는 데 반해 일의 우선순위가 상사인 A와 맞지 않았고 성과도 나지 않았다. 최근 나빠지는 경기상황과 연말마감이 다가오자 A는 마음이 조급하다.B는 A에게 찾아와 의논하는 법도
“사무실에 있으면 숨이 막혀요. 팀장님 눈치 보기도 힘들고 다른 직원들과 따로 외딴섬에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어요. 하루하루가 괴로워요.”얼마 전 찾아온 입사 7년차 A는 그간 맘고생이 심했던 듯 평소의 밝은 얼굴이 누렇게 뜨고 다크서클이 뺨까지 내려와 있었다.사연인즉슨, 이랬다. 연초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부서에 배치받았는데 자신에게만 유달리 다르게 대하는 팀장 때문에 점점 숨이 막힌다는 것이다.그런데 팀장은 합리적인 편이고 그 자신이 워라밸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 불필요한 야근도 거의 없어서 부하직원들의 평은 좋은 사람이었다.그
“나는 엄마의 부하직원이 아니란 말이야!”어릴 적 내 아이가 자주 외친 말이다. 굼뜨고 매사 흘리고 다니는 아이를 볼 때마다 나는 답답했다. 그럴 때면 아이에게 커서 회사생활에서 능력 없는 사람이 된다고 은근한 협박을 했었다. 성장과정에서 아이가 느리고 실수하는 것은 당연한데 그걸 회사 직원들과 비교하다니 참! 지금 생각해도 서툴렀다.인기 있는 배우자 가운데 하나가 교사이다. 그런데 막상 선생님과 사는 지인들은 나름 불만이 있다. 교사인 배우자는 학생 대하듯 가족에게 지시하고 시킨다는 것이다. 본인은 입으로만 한단다.어릴 적 우리
34년의 회사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귀환했다. 먼저 제대한 남편은 이제는 같이 놀 수 있다며 기대에 찬 눈치였다. 그동안은 남편과 같이 있는 시간은 길어야 하루 두세 시간 정도였다. 그러다 갑자기 24시간 붙어 있게 되었다. 예상은 했지만 큰 변화였다.퇴직 직전 시작된 팬데믹으로 고대했던 여행도 불가능했다. 퇴직 후 반짝 찾아오는 두 번째 허니문도 없던 것이다.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나면서 편안함은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바뀌어 갔다. 그간 서로 얼핏 봤던 모습들이 코앞에서 보였다. 아니, 이제 퇴직해 쉬려 하는데 끼니는 왜 나만
다섯 번째는 국민연금이다. 때가 된다고 당연히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연금수령 3년전의 월평균소득이 일정액을 넘으면 (기준은 근로자의 평균소득이다. 약 270만원 조금 못된다.) 넘는 금액에 따라 연금액이 최대 반이나 감액된다. 장장 5년까지. 게다가 소득별로 어떤 것은 100%, 어떤 것은 30% 계산이 되니 이것도 알아야 한다.연금수령 3년전부터 평균소득을 넘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퇴직 후 차린 치킨집이 너무 잘되면 연금이 절반이나 깎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대박 난 치킨집을 정리한다고? 노노! 이럴 땐 연금수령시
우리 모두는 삶에서 죽음을 향해 가고 있듯이 조직에 있는 우리 또한 퇴직의 그 날을 향해 가고 있다. 영원히 살 수 없는 것처럼 마냥 회사에 다니고 돈벌이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나이가 들고 직급이 높을수록 회사의 문을 나서는 순간은 다가오는데 우리는 그 순간을 애써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하던 대로 생활한다. 아니, 앞만 보며 여느 때보다 맹렬히 질주한다.그러다 어느 날 퇴사가 결정되면 팽팽한 고무줄이 탁 끊어지면서 질주를 멈춘다.그리곤 어리둥절한 얼굴로 두리번거린다. 무엇을 해야지? 무얼 알아야 하나? 회사밖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연말 인사이동에서 퇴직한 여성후배 A를 만났다. 가까운 사이라도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깔끔한 친구였다.퇴직 때문일까? 그간 버티고 있던 마음의 벽이 느슨해졌는지 처음으로 남편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은 50대 초반 퇴직 후 근 10년이 넘게 집에 있단다. 그동안 본인 출근하느라 크게 거슬리지 않았고 가정경제도 본인 몫으로 생각하고 있던지라 별문제는 없었다.근데 퇴직 후 집안에 둘이 있다 보니 남편의 일거수가 점점 거슬린다는 것이었다. 흔히 보는 퇴직한 가장의 집안 풍경이다. 남녀가 바뀌었을 뿐이다.“그럼, 부군은 낮 동안 어떻
직장생활 4년차인 딸아이가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 선배는 연초 내내 놀다시피 하다가 하반기에 반짝 일을 하더라고. 그리고 고과는 최고점을 받았어. 뭐야 이게? 나도 그래야 되나?” 순간 나는 남이 보든 안 보든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등의 뻔한 이야기를 하려다 말을 삼켰다.“글쎄. 그 선배는 참 경제적으로 일을 하는구나.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상사 입장에서는 평가 철에 반짝 일을 하는 사람에게 눈이 가기는 하지. 그게 사람의 기억의 한계야. 가까운 과거에 더 영향을 받는 것 말이지.”주위의 여성후배들이 겪는 빠질
첫 출근 때 만났던 상사는 이제 생각해 보니 전형적인 ‘똑부’(똑똑+부지런함)였다.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하고 쉼 없이 일하였다. 지시가 떨어진 일은 물론이고 그 외의 일도 앞질러서 찾아 했다. 목표치도 높아 거기까지 도달하면 즉시 한 단계 높였다.물론 나는 많이 배웠고 이후의 직장생활은 단단해졌다.이후 수십 년이 흘러 더 센 똑부를 만났다. 그는 작은 일 하나도 놓치지 않았고 전체를 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통찰력도 지녔다. 그의 책상에는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주말에 퇴근할 때는 가방이 터지도록 자료를 한가득 싸 들고 갔다.물
며칠 전 동네 식당에 갔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옆자리가 소란스럽다.서빙하는 종업원과 중년부부의 언쟁이었다. 내용인즉슨 손님이 칼국수의 바지락의 해감이 덜 되어 모래가 씹혔다는 불만을 이야기했는데 종업원은 건성으로 대응했다는 것이다.미안하다고 사과했다는 종업원과 성의없다는 손님… 고성이 터져 나왔다. “야! 네가 제대로 사과했어?”, “어디다 대고 ‘너’라고 해? 손님이면 다야?”어느덧 바지락의 모래 이야기는 사라지고 막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인격을 공격했다.결국, 손님은 식당이 망해라는 저주를 끝으로 퇴장했고 종업원은
#장면 1김 팀장의 책상엔 가족사진이 놓여 있다. 근사한 배경에 부인과 자녀와 찍은 사진이다. 지나가며 한마디씩 한다. “미인이시네요. 아이들도 어쩜!” 사람들은 김 팀장을 즉각 평가한다. 아! 저 남자 가정적이기까지 하네.차 팀장의 책상에도 가족사진이 올려져 있다. 남편과 아이들 사진이다. 지나가며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몸은 직장에 마음은 집에 있는 거 아니야?’ 같은 상황에서 차 팀장은 의문의 일패를 당한다. 누구는 능력에 인성까지 갖춘 사람이 되고 누구는 회사에서의 몰입도와 성실성을 의심받는다. #장면2연말연시는 인사철이다
또 한 번의 연말이다. 해마다 12월에는 직장인들의 희비가 갈린다. 누구는 환호하고 축하받지만 누구는 고개를 떨구며 말없이 짐을 싼다.나 또한 해임을 통보받고 멍한 상태에서 주섬주섬 짐을 싸던 경험이 있다. 어떤 이가 꾸준히 올라가고 어떤 이가 중도에 멈추거나 자리를 떠나는가?나는 지금도 내가 다녔던 회사뿐 아니라 국내 기업 여성 임원들의 연말 인사를 관심 있게 본다. 올해는 외국계 은행의 여성 행장 발령을 맘속으로 축하했다. 수년 전 먼발치에서 본 내 또래의 여성이었다. 끝까지 갈 수 있었던 여성 리더의 무기는 무엇일까?“남자들은
“핸드폰 연락처가 2000명이 넘었네. 나보다 많은 사람…” 은행에 있을 때 왕 오지랖인 동료가 자랑삼아 물어보았다.한두 번 만난 사람도 절친이 되고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와의 친분관계를 거품 물며 설명하는 그이다. “어우! 이 친구 또 시작했네.” 다들 같은 마음으로 눈빛을 주고받는다.그러다 갑자기 핸드폰의 연락처 경쟁이 시작되었다. 글쎄. 나는 몇 명이더라? 1000개였다. 1000명! 연락처 등록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하는 나도 생각보다 많은 숫자에 놀랐다. 물론 지난 몇 년간 연락이 없었던 사람들이 대다수였다.나이 오
나는 책읽기를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책 훑어보기를 즐겨한다. 내 단골 서점에서는 매일 신간 리스트를 보내준다. 굳이 읽지 않아도 손가락 하나로 세상의 변화를 감 잡는다.이렇게 많고 다양한 책들이 하루 새에 쏟아져 나오다니! 제목과 표지를 훑는 것도 꽤 재밌다. 특히 밀레니얼 친구들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스스로 작가이기도 한 책들은 제목부터 원초적이고 직관적이다.‘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비롯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쾌변을 위한 사소하고 잡다한 놀이’ ‘나를 힘들게 하는 또라이들의 세상에서 살아 남는 법
“부사장님. 지난번 칼럼에서 걸려 넘어진 곳에서 순금을 발견했다는 문구가 특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저는 아직 인생의 오전 시간을 다 보낸 것은 아니지만, 오후, 후반부 인생을 위해 잠시 쉬어 가려 좀 긴 휴가를 떠납니다.”후배에게서 문자가 왔다. 나의 바로 이전 칼럼을 읽고 보낸 것이다. 순간 마음이 쿵했다. 뭔 일이 있구나 싶었다. 즉시 전화를 하니 받지 않았다.다음날 통화가 되었다. 역시 병원이었다. 아직은 정밀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지만 몹쓸 병을 발견했다 한다. 불쑥 나오려는 한마디를 겨우 삼켰다. ‘내 그럴 줄 알았어
나는 지난 3월에 34년의 조직생활을 공식적으로 끝내고 집으로 귀환하였다. 소위 퇴직이란 것을 한 것이다. 내 나이 58세. 한국 나이다.이제는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100세 시대. 100세 인생을 하루 24시간으로 대입하여 인생시계를 만들어 보자. 새벽 3시에 12살이 되고, 아침 6시가 되면 25살이다.우리가 활동을 시작하는 아침 7시는 실제로 경제적 자립을 하는 서른 즈음이다. 실제 생애와 꽤 맞아 보인다.오전 9시는 한창 일할 나이인 37세쯤이 된다. 그리고 점심시간인 낮 12시에 50세가 되는 거다. 이제 막 회사문을 나선
장면 1사무실의 한 직원이 한참 동안 안 보였다. 내가 그 직원의 부재를 알아차린 시점도 안 보인지 한 일주일 후였던 것 같다. 까닭을 묻는 나에게 담당 부장이 대답했다. “어? 모르셨어요? 일주일 전부터 휴가였는데. 2주 휴가로 해외여행 갔어요. 부사장님께 인사를 안 하고 갔나 보네요.”뭐지? 긴 휴가에 말 한마디 없이? 이 친구 지난 추석에도 연휴 끼고 장기 휴가 갔었는데. 부럽다. 난 이제껏 일주일 휴가도 못 써봤는데.장면2능숙하게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는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만하면 직원에게 부탁하지 않고 스스로 배워 해결
부모는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녀의 미성숙함에 조급함과 안타까움이 앞서고 일일이 관여하려는 유혹을 물리치기 힘들다.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 자녀는 좀 더 빠른 길로, 쭉 뻗은 대로로 갔으면 한다. 그러나 나는 좀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나는 후배들에게 때론 자녀를 남의 아이 대하듯 하라고 말한다. 그가 대로를 이탈해 좁은 길로 접어들더라도 다시 길을 찾아 나올 때까지 지켜보는 것이다.억지로 끌고 나올 수는 있지만 좀 참자. 모난 길을 스스로 나오는 그 과정 자체가 계속되는 나머지 여정의 자산이다. 정히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