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희의 썰] ‘이제와 돌아보니’(18)

윤설희 전 KB생명보험 부사장
윤설희 전 KB생명보험 부사장

며칠 전 동네 식당에 갔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옆자리가 소란스럽다.

서빙하는 종업원과 중년부부의 언쟁이었다. 내용인즉슨 손님이 칼국수의 바지락의 해감이 덜 되어 모래가 씹혔다는 불만을 이야기했는데 종업원은 건성으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는 종업원과 성의없다는 손님… 고성이 터져 나왔다. “야! 네가 제대로 사과했어?”, “어디다 대고 ‘너’라고 해? 손님이면 다야?”

어느덧 바지락의 모래 이야기는 사라지고 막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인격을 공격했다.

결국, 손님은 식당이 망해라는 저주를 끝으로 퇴장했고 종업원은 눈물을 쏟았다. 이게 이럴 일인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불만제기와 사과. 형식적으로는 큰 문제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은 표정, 작은 몸짓, 어투가 순식간에 서로의 감정에 기름을 부었다.  ‘말’(message) 자체보다 전달하는 ‘방법’(method)의 위력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조직생활 34년을 돌아보니 나의 기분을 들었다 놨다 했던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였다. 그리고 관계의 기본은 말, 아니 말하는 태도였다. 회사에서의 여러 장면이 떠오른다.

옳은 말을 참 재수 없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 부서의 관계자들과 윗사람이 쫙 깔린 회의 때 옳은 소리를 핏대 높여 하는 사람이 있다. 상대 의견에 대놓고 반대한다. 누가 모르나? 상황에 따라 감안해야 할 것이 많고 따라서 의사결정이 쉽지 않으니 이러고 회의하는 거지.

사실 모든 조직에서 회의가 너무 많다. 오죽하면 ‘회의 문화 개선’이 사업 계획 중 하나가 될까? 이럴 땐 모두의 목구멍이 간질간질하나 차마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을 시원하게 쏟아내는 이런 사람이 필요하기는 하다. 지리하게 제자리걸음 하는 이슈에 짱돌을 던지는 셈이다.

참석자들은 발언자가 아닌 최고상사를 일제히 바라본다. 그의 반응에 따라 그날의 기분과 후속 업무가 정해진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회의실에서만 보고 싶다. 분명 소신을 가지고 의견을 이야기할 수는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기주장을 하는 태도와 뉘앙스는 중요하다. 숫자와 합리성을 들이대며 조목 조목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오히려 듣는 사람의 귀를 닫게 한다.

그보다는 아니다 싶은 의견에도 일단 검토하고 발표한 상대의 수고를 인정해주자. 그런 다음 상대 의견에 우려되는 점과 준비했을 대안을 질문하자. 자신의 의견을 그다음에 피력해도 늦지 않다.

결국은 반대의견의 지혜로운 표현이다. 아무의 감정도 건드리지 않았다. 회의 진도를 빼면서도 명확히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고 주변을 끄덕이게 하는 사람. 두 사람의 메시지는 같지만 메소드는 확연히 다르다.

딱딱하게 칭찬하는 상사와 부족한 점을 부드럽게 지적하는 상사가 있다

 상대에게 좋은 말을 딱딱하고 정 없이 이야기하는 사람과 웃으면서 부드럽게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가? 미국의 대학심리연구센터의 연구결과가 있다. 답은 웃으며 아픈 말 하는 사람에 대한 호감도가 높았다. 우리의 감정은 말의 내용보다 전달하는 표정, 분위기에 더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어느 심리학자의 연구에서는 프레젠테이션할 때 청중이 말 자체에 영향을 받는 비율이 불과 7%에 불과하다고 한다. 청중은 메시지보다 목소리 톤(38%)과 보디랭귀지(55%)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믿기 어려운 결과이나 그만큼 사람은 비언어적 태도와 분위기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어느 조직이든 팀원들에 대한 상사의 정기적인 피드백을 의무화하고 있다. 평가가 확정되기 전에 중간 중간에 직원들과 면담을 하면서 그의 장단점과 성과를 짚어주며 그들을 성장시키라는 주문이다.

사실 숨은 목적은 따로 있다. 최종 평가의 충격을 미리 흡수하고 평가의 수용성을 높이고 싶은 거다. 평가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MZ세대’가 늘어나는 시대에 피드백은 더욱 중요해진다.

피드백은 쌍방이 모두 편치 않은 상황이다. 특히 잘못을 지적하고 책임을 물을 때 더욱 껄끄러운 상황에 놓인다. 나는 눈 딱 감고 ‘fact’와 그것의 결과를 알려주는 편이였다.

이게 피드백의 종류 중 ‘Direct Feedback’이다. 스스로를 잘 알면서도 일 안 하는 뺀질이에게 통하기도 한다.

그런 피드백을 받았던 그 팀원이 더욱 힘을 내고 개선되었던가? 아니었다. 그 후 그는 상사가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에 더욱 위축되었고 눈치만 보았다.

나는 어떤 때 귀를 기울이고 개선하고자, 변화하고자 노력했던가?

나의 단점과 고과를 무표정하게 콕 찍어 이야기한 상사보다는 부드럽고 진지하게 나의 강점과 한계를 이야기해 주고 다음 단계를 위한 조언을 곁들인 상사가 나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후 나의 노력을 지켜봐 주었던 상사는 지금도 인연을 이어간다.

승진을 코앞에 둔 고참들이 우글거리는 부서의 막내로 있으면서 일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한 경우에도 그의 조언과 진심 어린 양해가 나를 잠재웠다.

메시지와 리액션은 짱인 데 할리우드 액션인 사람이다

무조건 상대를 칭찬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도 잘했다, 저것도 대단하다. 팩트에 관계없이 과도하게 칭찬폭탄을 떨어뜨리며 시간되면 자리를 뜬다.

이것 또 영혼 없는 할리우드 액션이군! 어느새 딴생각에 빠진다.

물론 이렇게 항상 남을 칭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대부분 조직에서 남을 비하하고 꼬투리를 잡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액션의 상대를 마주할 때는 그가 진정으로 나를 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사내정치와 세평관리에 신경 쓰는 그가 느껴진다.

이보다는 짧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칭찬을 하는 사람, 결과보다 그것을 이룬 땀과 고생을 알아주는 사람. 호들갑스러운 칭찬의 말은 아니지만, 공감과 인정의 눈빛을 발사하며 슬쩍 “수고 많았어, 고생했네”라며 어깨를 툭 치는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이 좋다.

리더십의 핵심은 소통이고 따라서 리더의 중요한 덕목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이다. 어떨 때 소통이 되었다고 느끼는가? 상대와의 연결감을 느낄 때다. 연결감의 ‘key’는 fact와 ‘data’ 이전에 감정이다.

조직에서 감정이 왜 중요하냐고? 사람은 일방적인 지시보다는 상대가 표정으로, 몸으로 보여주는 공감과 나의 감정을 알아줄 때 연결감을 느끼고 자기주도적으로 움직인다.

MZ세대를 움직이고 싶은가? 그러면 인정과 공감부터 보여줘라.

이제는 회사를 떠난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회의실에서의 나의 모습, 팀원들을 마주하며 면담했던 내 모습이 떠오르며 얼굴이 붉어진다.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 알았다면!

후배님들은 지금 어떤 method로 소통하고 계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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