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희의 썰] ‘이제와 돌아보니’(25)

윤설희 전 KB생명보험 부사장
윤설희 전 KB생명보험 부사장

“나는 엄마의 부하직원이 아니란 말이야!”

어릴 적 내 아이가 자주 외친 말이다. 굼뜨고 매사 흘리고 다니는 아이를 볼 때마다 나는 답답했다. 그럴 때면 아이에게 커서 회사생활에서 능력 없는 사람이 된다고 은근한 협박을 했었다. 성장과정에서 아이가 느리고 실수하는 것은 당연한데 그걸 회사 직원들과 비교하다니 참! 지금 생각해도 서툴렀다.

인기 있는 배우자 가운데 하나가 교사이다. 그런데 막상 선생님과 사는 지인들은 나름 불만이 있다. 교사인 배우자는 학생 대하듯 가족에게 지시하고 시킨다는 것이다. 본인은 입으로만 한단다.

어릴 적 우리 반에는 군인 아버지를 둔 친구들이 많았다. 퇴근한 군인 아버지는 병영생활의 연장이었다. 아들의 경우는 아버지로부터 얼차려도 당했고 기합도 받았다. 군인 남편을 둔 아내들도 상사 모시듯 남편을 대해야 했다. 심기를 건드렸을 경우 밥상이 날아가고 아이들 앞에서 싸대기도 당했다. 우리 아버지도 그랬다. 

왜 일까?

우리 모두는 태어난 이후 관계망 속의 일원이 되어 성장하게 된다. 자식, 부모, 형제, 친구, 동료, 종교인, 학부모, 직장인, 부하직원, 상사, 사위, 며느리, 할머니, 할아버지 등등… 살면서 적어도 스무 가지 정도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이때마다 우리는 다양한 역할에 적합한 페르소나를 선택하게 된다. 가정에서의 역할에 필요한 페르소나와 직장에서의 페르소나, 그 외의 각종 커뮤니티에서의 페르소나는 다를 수밖에 없다. 

요즘 인기짱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생각해 보자. 경증 자폐를 가진 주인공은 평범한 사람보다 맥락을 읽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그래서 주변 상황과 역할에 따른 페르소나를 그때그때 바꿔 쓰는데 어려움이 있다. 집중력이 강한데 멀티가 안 되는 상황이다.

멀티 페르소나를 구사하기 어려운 우영우는 주위사람을 어이없게도 만들지만 자신의 한계를 강점으로 문제를 풀어내기도 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는 해맑은 모습으로 정글에 뛰어든 그녀를 보며 아슬아슬함과 청량감을 느낀다. 

거침없이 가면을 바꿔쓰며 타인을 파멸시키고 자신의 욕망과 성공만을 쟁취하는데 청담동 드라마 속 인물들. 여기에 열광과 혐오를 동시에 느끼는 우리들…. 드라마뿐 아니라 현실에서 만나는 이런 가면의 삶에 피로한 우리는 우영우 드라마를 보며 맑아지고 깨끗해짐을 느낀다.

그러나 이 또한 판타지다. 세상을 한두 가지 페르소나로만 살아간다면 그것은 드라마처럼 사랑스러운 모습보다는 소외와 부적응의 모습이 될 것이다.

반대편에는 특정 페르소나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공인이거나 연예인이다. 그들은 역할과 상황에 맞는 이런저런 페르소나를 가지고 살아가는 범인들과 다르다. 그에게는 이미 세상이 그에게 씌워주었고 자신이 견고하게 만든 페르소나가 있다.

이것을 ‘패리스 힐튼 페르소나’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녀는 언제나 완벽하고 화려하고 파격의 모습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녀는 이미 바비인형 페르소나와 한 몸이 된 것 같다. 

반면 현재 쓰고 있는 멋진 페르소나는 가짜라 생각하며 가면 뒤의 초라한 자기 모습을 들킬까 봐 불안해 하는 ‘가면 증후군’이 있다. ‘난 엉터리인데,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야, 들키면 어쩌지?’ 그들은 자신이 이룬 성공을 의심하며 즐기지 못한다. 주로 성공한 리더들에게 나타난다. 유명 여배우 나탈리 포트먼과 뉴질랜드 총리, 심지어는 미셸 오바마도 겪었단다. 

우영우의 페르소나가 사회 부적응의 가능성이 있다면, 패리스 힐튼과 가면 증후군에 휩싸인 사람들의 페르소나는 스스로에 대한 부적응을 의미하지 않을까? 어느 쪽이든 자기소외 현상이다.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연극에서 쓰던 가면을 뜻한다. 연극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기 위해 진짜의 자기 모습을 감추고 가면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는 연극이 끝나면 가면을 벗어 버리고 자기로 돌아간다. 

그런데 일하는 부모들, 선생님들, 군인 아버지들은 일할 때의 가면을 벗지 않은 채 가족들과 조우한다.

이들은 자신이 특정 역할의 페르소나를 쓰고 있다는 사실도 종종, 자주 잊어버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특정역할의 페르소나는 자신의 피부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딱 붙어 버리고 그것을 진짜 얼굴처럼 느끼기도 한다. 내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필요하기도 하지만 경계하기도 해야 하는 페르소나. 우린 어떻게 페르소나를 대해야 할까?

첫째, 각각의 페르소나를 구분하자.

흔히 페르소나를 생각하면 진실을 감추기 위한 가면, 그러기에 부정적인 느낌이 든다. 그러나 칼 융은 페르소나는 우리 본래의 자아가 외부세계와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즉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에서 더불어 사는 데 있어 페르소나는 필요하다. 

문제는 페르소나 자체가 아니라 세상과 관계를 맺기 위해 쓰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각각의 역할별로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가정에서의 페르소나와 회사에서의 페르소나를 구분돼야 한다. 직장에서 쓰고 있던 페르소나를 집으로 그대로 쓰고 들어와 자녀와 배우자를 마주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 퇴근 후에 일정한 리츄얼(ritual)을 정하자. 일명 모드 바꾸기!

회사일로 꽉 찬 머릿속을 가지고 귀가하지만,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문의 손잡이를 돌리기 전에 잠시 멈추자.

머리와 몸을 가볍게 흔들어 털고 손과 옷도 탁탁 털자. 낮 내 몸과 마음이 쏠렸던 것들을 먼지처럼 털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대여섯 번의 호흡을 하자. 이러다 보면 전투모드였던 몸과 마음이 이완되고 잔뜩 성나 있는 교감신경이 호흡과 함께 가라앉는다.

그리고 얼굴을 한번 쓰다듬으며 얼굴에 붙어 있는 가면을 벗어 버리는 것처럼 턱에서 이마 쪽으로 손을 쓸어 올리자.

여기엔 과학적 근거가 있다. 하버드대의 심리학자인 에이미 커디의 ‘프레즌스’와 그의 TED강연을 들어보자. 그는 사람이 자세를 바꾸거나 약간의 몸동작을 하면 마음도 변화한다는 것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실제로 의도적인 신체 조작, 자세 변화를 취하기만 해도 분비되는 호르몬이 달라진다.

중요한 면접이나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화장실에 들어가 혼자 원더우먼 자세를 취하는 것이 그 예이다. 어른들이 어깨를 쫙 펴야 일이 잘 풀리고 복이 들어온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에이미 커디는 하루 5분의 프레즌스 동작을 권한다. 그러나 아파트 문 앞에서 5분이나 서성거리면서 몸을 떨고 얼굴을 더듬고 있으면 이웃의 의심과 동정의 눈초리를 받을 수 있다. 그저 1분의 리츄얼이면 충분하다. 

두번째, 진짜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어떤 페르소나도 느슨하게 쓰자.

페르소나를 각각의 역할별로 구분하는 것 못지않게 어떤 페르소나도 결코 나 자신의 참모습이 아닐 수 있음을 잊지 말자. 나의 본성이 무엇에 가깝고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는지에 의도적으로 귀를 기울이자.

특정 페르소나를 오래 쓰고 그것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면 그 역할이 끝났을 때 우리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 특히 퇴직으로 조직의 페르소나를 벗게 되면 많은 사람이 당황한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자신을 잊고 가족을 돌보는 것에 헌신한 엄마들이 자녀가 성장하여 떠나가고 돌볼 대상이 없을 때 밀려오는 ‘빈집 증후군’도 비슷한 현상이지 않을까?.

현재 필요한 페르소나를 야무지게 쓰고 그 역할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해 냄과 동시에 이것이 페르소나임을 늘 의식하자. 그러기 위해 페르소나를 피부에 딱 붙어버리기 전에 느슨하게 쓰고 때때로 벗기도 해야 한다. 

부모로서, 상사로서 자녀들에게 직원들에게 나의 진짜 얼굴도 보이고 역할을 하는데 있어 어려움과 고민도 이야기하자. 

나는 수십년간 회사용 페르소나를 쓰고 직장과 가정을 넘나들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부하직원 보듯 가르치고 책임을 묻기도 했고 때론 남편도 협조 안 하는 얄미운 동료로 보기도 했었다. 그러다 오십이 훨씬 넘어서야 그것도 가족들의 원성이 높아지면서 내가 쓴 회사용 페르소나와 엄마, 부인으로서의 페르소나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이에게 엄마로서, 직장 선배로서, 코치로서 다양한 페르소나로 만난다.

한편으론 페르소나 이면의 내 모습에 대한 고민도 시작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겁고 몰입이 되었던가? 과연 그런 적은 있었던가? 그동안 가려져 있던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가?

인생 후반은 이런 의미에서 자기를 찾아가는 여행인 것 같다. 퇴직 후 훨씬 단순하고 얇아진 페르소나를 가지고 살면서 나의 본성을 반영하는 가면 안쪽의 참모습을 찾아가는 긴 여행이다.

워킹맘으로서 직장에서 고단하게 일하고 보살펴야 할 식구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후배들이여. 퇴근 무렵 회사 페르소나는 책상에 놓아두고 집앞에서 잠깐 몸을 털고 엄마의 페르소나를 쓰고 가족을, 자녀를 만나자. 

그리고 모든 페르소나를 벗고 혼자만의 시간도 가지자. 그래도 아이들은 잘 크고 조직도 잘 돌아가고 세상도 잘 돌아간다. 내가 나를 잃어버리는 게 더 큰 문제이다.

저작권자 © 공생공사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