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희의 썰] ‘이제와 돌아보니’(17)

윤설희 전 KB생명보험 부사장
윤설희 전 KB생명보험 부사장

#장면 1

김 팀장의 책상엔 가족사진이 놓여 있다. 근사한 배경에 부인과 자녀와 찍은 사진이다. 지나가며 한마디씩 한다. “미인이시네요. 아이들도 어쩜!” 사람들은 김 팀장을 즉각 평가한다. 아! 저 남자 가정적이기까지 하네.

차 팀장의 책상에도 가족사진이 올려져 있다. 남편과 아이들 사진이다. 지나가며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몸은 직장에 마음은 집에 있는 거 아니야?’ 같은 상황에서 차 팀장은 의문의 일패를 당한다. 누구는 능력에 인성까지 갖춘 사람이 되고 누구는 회사에서의 몰입도와 성실성을 의심받는다. 

#장면2

연말연시는 인사철이다. 평가에 면담에 어수선하다. 무엇보다 초미의 관심은 승진, 승격이다. 은근 기대했던 김 팀장은 탈락발표에 굳은 얼굴로 자리를 뜬다. ‘저 친구 실망이 많을 텐데. 옥상에서 한 대 빨고 있겠지’.

그간 연속탈락의 아픔이 있던 차 팀장의 이름이 이번에도 없다. 확인하는 순간 차 팀장은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간다. 그런 그녀를 보며 생각한다. ‘화장실에서 울고 있겠지. 이번 승진에 남자들도 많이들 밀렸던데.’

#장면3

퇴근 후 약속장소에 도착했는데 낯익은 얼굴이 있다. 옆자리 김 팀장이다. ’어! 박 본부장과? 박 본부장이 김 팀장을 총애한다는 소문이던데… 역시. 짜아식, 잘 나가네. 부럽다.’ 질투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맛집이라 찾아간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문을 열자 차 팀장이 앉아 있다. 그리고 건너편에는 이번에도 박 본부장이다. ‘뭔 일이지? 둘이 혹시 …’ 비슷한 상황에서 누구는 부러움의 능력자가 되고 누구는 엉뚱한, 큰일 날! 오해를 받는다.

#장면4

화장실에 가는 길목, 탕비실에서 핸드폰을 입으로 막고 통화하는 김 팀장을 보았다. ‘무슨 일이지? 좋은데 면접이라도 보나? 하긴 실력이 있으니 찾는 곳도 많겠지’.

같은 상황이다. 차 팀장이 통화를 하고 있다. ‘아이가 또 아프나? 워킹맘들은 이리저리 쉽지 않아, 쯧쯧!’

김 팀장과 차 팀장의 통화내용은 알 수 없다. 그런데 김 팀장은 여기저기 불려가는 능력자로, 차 팀장은 원치 않는 동정을 받는다.

조직 내 이곳저곳 풍경을 떠올려 본 것이다. 어디서나 무심히 마주친 광경이었고 누구 하나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장면들이다. 그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우리의 생각 속에 스쳐갈 뿐이다.
여성과 남성의 행동을 해석하는 어이없는 기준은 언어 곳곳에도 녹아 있다.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여성에게 ‘야무지다’라고 한다. 이 경우 남성에게는 ‘완벽하다’라고 한다. 야무진 것이 완벽에 비해 뭔가 폄하되고 있다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중도포기 없이 목표를 해내고야 마는 여성에게 ‘악착같다’라고 한다. 남성에게는? ‘추진력 있다’고 표현한다. ‘악착 같다’에는 다른 어떤 의미가 가미된다.

누군가를 붙들고 씨름하며 때론 충돌하면서 억척스럽게 해냈을 것 같은 뉘앙스다. 남성은 능력 자체를, 여성은 과정상 비호감일 수 있는 태도까지 더해진다. 

말수가 적은 여성을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라고 말하고 남성은 ‘과묵하다’, ’진중하다’라고들 한다. 한쪽은 가볍고 쉬이 깨질 것 같아 대하기 조심스럽다면, 같은 성향의 다른 한쪽은 믿음직하고 신뢰를 주는 느낌이다. 말수 적은 것이 부끄럼타는 것과 무슨 상관?

일도 잘하고 주변 상황을 빨리 읽고 대처를 잘하는 여성을 ‘똑 소리 난다’고 칭찬하며 ‘똑순이’라는 애칭을 붙여 준다. 남성의 경우는? ‘똑돌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그는 그냥 능력자, 완소남으로 불린다. 똑순이는 왠지 애정이 묻어 있다고? 됐다고 해라.

옷차림에 신경 안 쓰는 여성은 사무실에서 눈총을 받는다. 몸무게라도 과다하면 루저로 전락한다. 반면 남성은? 털털하다. 멋부리기 보다는 업무집중형이다. 헐! 걸치는 옷에 따라 누구는 능력까지 거론된다.

이처럼 우리는 같은 현상에 대해 남녀에 따른 상반된, 전혀 근거 없는 평가를 한다. 그런 편견은 일반화되어서 여성인 우리조차 무의식 속에서 동조할 만큼 말이다. 

신입사원 시절이었다. 담당 차장님이 허둥지둥 인사부로 뛰어다니셨다. 대졸 공채로 들어온 나를 임원 비서로 발령 낸다나?

아니 내가 왜? 담당 차장님은 인사부와 비서실로 가서 내 흉을 보았고 인사부는 쉽게 동의했다. 비서로서 성격과 외모가 적절치 않다며 어필 했단다. 뭔가 기분 나쁘고 억울했지만, 여하튼 비서 발령은 피했다.

일 가리지 않고 주변을 잘 챙기는 것이 눈에 띄었다는데 그런 내가 남자였다면? 아마 재무나 기획부로 차출되었을 것이다. 당시 여성에게 핵심부서는 접근 불가였다. 그건 그렇고 비서발령을 그렇게 쉽게 취소한 사유가? 이건 나를 두 번 죽이는 거였다.

나는 지난 34년을 뼛속까지 만연한 성차별 속에 묻혀 살았다. 숨 쉬듯 의식조차 못 한 채 말이다. 후배님들이여. 그대들이 사는 세상은 좀 나아졌겠지? 그렇다고 믿고 싶다.

성별 차이와 차별을 설명하는 유전자, 뇌 구조와 작동방식, 사회적 기대와 학습 효과 등등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현상을 설명할 순 있어도 현재를 바꾸기엔 부족하다. 그럼 나의 후배들은 본인이 책임질 일도, 알지도 못하는 사이 벌어지는 의문의 일패들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뾰족한 방법은 없다.

희망이 있다면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이 바뀌면 인간의 역할이 바뀌고 느리지만 의식도 변한다. 이제 오래전 디폴트 값으로 자동 설정된 성에 대한 인식, 역할, 한계에 차근차근 질문을 던질 때가 되었다.

그것은 누구에 의해 정해졌는가? 그것은 진실인가? 아직도 유효한 개념인가? 미래 시대에 그와 같은 개념은 무엇에 도움이 되는가?

‘디폴트 값’은 불변이 아니다. 오류를 발견하거나 상황이 바뀌면 조정할 수 있다. 지금의 디폴트 값은 가능성, 확장, 창의, 통합과 같이 가기 어렵다. 우리가 여성과 남성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할 때 개인과 사회의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다.

후배들이여. 지금 이 순간에 벌어지는 선입관, 차별에 치열하게 맞서지 말자. 비합리와 부당함은 단번에 부수어 없애지는 못한다. 불합리는 합리가 그것을 서서히, 그리고 완전히 덮어버릴 때 힘을 잃고 소멸한다.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먼저 집단 무의식에서 깨어나자. 차이와 차별의 행위를 명료하게 알아차리되 나부터 집단마비에서 빠져나오자. 무의식이 의식의 영역으로 올라오고 그것이 종국에 사회시스템까지 변화시킬 수 있을까?

있다. 핀란드어에는 she, he의 구분이 없다. 그냥 남녀 통칭 ‘핸’이라 칭한다. 따라서 남녀 구별을 위해서는 문맥을 봐야 한다. 이 한 단어 ‘핸’이 현재의 핀란드를 설명한다고 하면 지나친 도약일까? 

1906년 최초로 여성에게 참정권을 준 나라, 1985년생 여성총리가 이끄는 나라, 국회의원의 46%가 여성이고 내각의 60%가 여성인 나라. 총리의 연합정당을 구성하는 5개 정당 대표가 전원 여성인 나라. 성 중립적인 인칭대명사 ‘핸’을 1543년부터 문자로 표기하기 시작한 나라. 핀란드 정부는 “누군가를 성별과 무관하게 부를 수 있는 대명사를 사용하는 일은 차별을 없애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우린 무엇을 출발점으로 삼을까? 평소 말이 없는 여성 후배들에게 ‘과묵하다’라고 표현해 주자. 업무 완성도가 높은 여성팀장에게는 ‘악착같다’ 대신 ‘추진력 있다’라고 칭찬해 주자.

사소한 표현부터 성의미를 세탁하자. 중립화 시키자. 변화를 위한 균열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지금부터 일 잘하고 똑 소리나는 김군을 이제부터 ‘똑돌이’라 불러주자. ‘와? 이 친구 똑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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