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희의 썰] ‘이제와 돌아보니’(26)

윤설희 전 KB생명보험 부사장
윤설희 전 KB생명보험 부사장

“사무실에 있으면 숨이 막혀요. 팀장님 눈치 보기도 힘들고 다른 직원들과 따로 외딴섬에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어요. 하루하루가 괴로워요.”

얼마 전 찾아온 입사 7년차 A는 그간 맘고생이 심했던 듯 평소의 밝은 얼굴이 누렇게 뜨고 다크서클이 뺨까지 내려와 있었다.

사연인즉슨, 이랬다. 연초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부서에 배치받았는데 자신에게만 유달리 다르게 대하는 팀장 때문에 점점 숨이 막힌다는 것이다.

그런데 팀장은 합리적인 편이고 그 자신이 워라밸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 불필요한 야근도 거의 없어서 부하직원들의 평은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직원, A에게는 달랐다. 업무 지시는 딱딱했고 기본적인 가이드도 주지 않았다. 그에게 지시하는 순간에도 A와의 눈맞춤을 피했다. 툭 하니 일을 던졌고, 배경 설명 없이 결과를 요구했다. 간단한 보고도 여러 번 퇴짜를 당한 후에 통과되었다.

A는 점점 위축되었다. 한마디로 그는 상사에게 꼭 찍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일인가 태도인가. 일의 문제라면 간단하다.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러나 여기에 감정이 수반되면 꼬여 버린다.

일 인가 태도인가?

나의 질문에 A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둘 다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A는 이번 이동에서 본인이 원치 않는 부서로 오게 되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B급 부서였다. 그래서 업무를 만만하게 보고 긴장감 없이 몇 달을 보냈다.

어떤 업무도 대충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더구나 새로운 업무는 빠른 파악을 위해 첫 3개월은 과거의 자료를 샅샅이 뒤지며 출발선을 땡기는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중요한 업무라면 첫 6개월은 자신을 갈아버릴 각오로 붙어봐야 한다. 이래야 이후가 편하다.

“아!” 하는 A. 역시 새로운 일에 시간 투자가 충분치 않았다. 그는 뒤늦게 업무 파악에 집중 노력했고 업무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첫 3개월의 ‘Golden time’을 놓쳤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했겠다 싶을 무렵 다시 찾아온 A의 얼굴은 더욱 심란해 보였다.

일은 어느 정도 커버하는 것 같은데 팀장의 냉랭함은 바뀌지 않았고, 그새 더욱 예민해진 A는 자신만 제외하고 농담과 웃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팀장과 팀원들을 바라보며 소외감을 느꼈다.

평소 주변과 활발하게 어울리는 그에게 낯선 감정에 밀려왔다. 외로움. 막막함. 벽을 앞에 두고선 무력감….

심리적 자본- 나를 지지해 줄 동료를 만들자

새로운 부서에서 A가 동료직원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살펴보았다. 애고~ A는 석 달이 지나도록 동료와 밥 한번 돌지 못했다. 이런~ 아무리 세대가 바뀌어도 함께 밥을 먹는다는 의미는 마음을 여는 첫 단추인데….

이제부터 한 명씩, 또는 두어 명씩 묶어 점심을 청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팀장에 대한 성향도 알아내고 마음을 열 수 있는 동료도 탐색하기로 했다.

나를 공감해 주고 지지해줄 옆자리 동료는 언제나 중요하다. 서로 하소연하고 위로해줄 동료의 존재는 강력한 심리적 자본이다. 반대로 사무실에서의 소외, 외로움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을 벗어날 의지조차 무력화시킨다.

A는 지금 한겨울 세찬 바람 속에서 창문 넘어 단란한 가정을 들여다보는 성냥팔이 소녀의 심정인 것이다.

좀 더 시간을 둔 관계 형성이 필요했다. A는 새로운 부서에서 동료에 대한 마음 투자를 소홀히 했다. 업무 따라잡기에 이어 두 번째 골든 타임을 놓친 것이다.

정중히 물어보자. 이때 화살의 방향은? 나에게 돌려야 한다.

딱히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출근하는 A의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우리는 직면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상사에게 직접 물어보자.

이때 “나에게 왜 이러는지 말해 주세요”라는 직접적인 화법은 곤란하다. 큰일 날일!

상사는 이 말을 도전으로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상사가 무슨 일? 웬 생뚱?” 하면서 딴청을 부리면 그때부터 상황은 지뢰밭이 아니라 지옥이 된다.

기회를 보아 낮은 자세로 물어보자. “팀장님, 제가 업무에 미숙해서 팀장님을 번거롭게 해 드리네요. 저도 잘하고 싶은데 제가 어떤 면을 바꾸어야 할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우리의 문제가 나를 껄끄럽게 대하는 너, 상사의 문제가 아니라 부족한 점이 있는 나의 문제이니 알려 달라는 정중한 요청이다.

상사는 이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을 할까?

첫째, A에 대한 그의 감정이 심하지 않다면 이 질문을 가볍게 넘길 것이다. “그래요? 딱히 고칠 것은 없지만 이런 경우는 요렇게 하면 좋겠어요.” 끝. 상황 끝이다.

둘째, A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있는데 개방적인 상사가 아니라면 대놓고 피드백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정도 필요한 피드백을 흘릴 것이고 미운털이 다소 빠질 것이다.

셋째, 직선적인 상사는 물 만난 고기처럼 A의 부족한 점을 콸콸 쏟아낼 것이다. 이건 O.K. 나의 문제를 시원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다. 이후 잘하면 관계 개선의 물꼬가 트인다. A의 경우 직선적인 상사였다면 지금의 상황이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넷째, 잘해 보고 싶어 하는 부하직원의 이런 요청에 딴청을 부리며 외면하는 상사이다. 그렇다면, 그는 리더십이 ‘꽝’이다. 쿨 하게 돌아서자. “이자에게서는 배울 것이 없구나.”

다행히 A는 기회를 포착했고 두 번째 타입인 팀장은 견딜만하게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여전히 A에게는 편안함과 웃음에 인색했다. 상사의 마음에 미운털이 확실히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것은 A의 문제라기보다 상사 본인의 문제일 수 있다. 그는 감정에, 솔직함에, 개방성에 꽉 막혀 있는 사람이다.

헤어질 때까지 묵묵히 견디자. 무기를 갈면서!

이런 상사라면 포기하고 견디자. 헤어질 때까지. 일단 업무로 승부하자. 상사가 어떻게 하든 관계없이 나의 업무 실력을 기르는데 최선을 다하자. 긴급한 일이라면 저녁시간과 주말도 양보하자.

그는 언젠가 나와 헤어질 사람이고 내가 더 회사에 오래 다닐 사람이다. 나의 조직생활이 이런 사람으로 구겨질 수는 없다. 노노! 

차근차근 실력을 갖추다 보면 어느덧 나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상사와는 드라이하게 일로만 이야기하자. 모든 업무를 상사가 커버할 수 없는 한 나의 존재는 중요해진다.

이래야 지금의 상황으로 내가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상사의 미운털이 나의 업무 탁월성을 기르는 선물이 될 수 있는 거다.

우리는 어려움을 대하는 두 갈래의 태도에서 성장하거나 추락한다. 상황에 무너지는가? 어려운 상황을 배움의 기회로 삼는가?

딸 같은 후배인 A여! 괜찮다. 이렇게 겪고 견디며 빠져나오려 애쓰는 것이

회사생활이다. 너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 그러고 산다. 이게 다 월급 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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