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희의 썰] ‘이제와 돌아보니’(15)

윤설희 전 KB생명보험 부사장
윤설희 전 KB생명보험 부사장

“핸드폰 연락처가 2000명이 넘었네. 나보다 많은 사람…” 은행에 있을 때 왕 오지랖인 동료가 자랑삼아 물어보았다.

한두 번 만난 사람도 절친이 되고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와의 친분관계를 거품 물며 설명하는 그이다. “어우! 이 친구 또 시작했네.” 다들 같은 마음으로 눈빛을 주고받는다.

그러다 갑자기 핸드폰의 연락처 경쟁이 시작되었다. 글쎄. 나는 몇 명이더라? 1000개였다. 1000명! 연락처 등록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하는 나도 생각보다 많은 숫자에 놀랐다. 물론 지난 몇 년간 연락이 없었던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나이 오십이 넘어가며 나는 정기적으로 연락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난처한 순간도 여러 번 있었다. 상대는 내가 자신을 알고 있다고 확신하며 본인을 밝히지 않고 본론부터 말하는데 나는 도대체 그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그럴 땐 나도 아는 척하면서 시간을 끈다. 듣다 보면 목소리가 기억나기도 하고 내용 속에서 그를 짐작할 수도 있다. 끝까지 모르겠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그럴 때는 미안함을 무릅쓰고 솔직히 물어본다.

“저, 누구세요?” 상대의 황당함과 서운한 눈초리가 느껴진다. 몇 년 만에 느닷없이 훅 들어오는 것도 실례지…. 나는 이럴 경우 우선 문자로 노크를 한다. 문자 말미에 내 이름을 꼭 넣어서 말이다. 핸드폰 연락처에도 휴지통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다.

34년 조직생활을 마치기 몇 달 전, 나는 ‘퇴직 전 준비할 것’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연락처 정리였다. 물론 핸드폰 용량상 수천명의 번호가 있어도 괜찮다.

그러나 무언가를 마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갈 때는 관계의 리모델링도 필요하지 않을까?

아파트만 리모델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관계 리모델링! 수십 년 동안 거미줄처럼 얽히고 피동적으로 엮여왔던 ‘관계’를 이제는 내 기준으로, 능동적으로 리모델링 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그래서 생각했다. 후반부 인생에서는 무엇으로 관계 맺기의 기준을 삼을까? 나는 몇 가지 기준을 정했다.

첫째, 이 사람이 회사를 떠난 이후에도 계속 교류할 사람인가?

동료이든 거래처로 만났던 나머지 인생도 함께하고픈 사람인가? 그간 대화에 거슬림이 없었고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가? 아니, 가치관이 다르고 사는 모습도 다르지만 그런 그가 왠지 흥미롭고 그 점을 불편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가?

둘째, 개인이 아니라 어떤 모임이라면 곰곰 생각해 보자.

모임의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내 머릿속은 이런저런 불참의 핑곗거리를 찾고 있지는 않았던가?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하다 참석했을 때 나도 모르게 시계를 쳐다보며 하품을 삼켰는가? 혹은 고민 없이 종종거리며 달려가며 막히는 도로에 투덜거렸고, 어느덧 가버린 시간에 ‘아니 벌써!’를 외쳤는가?

셋째, 혹시 이 사람이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가?

이런저런 고민을 가지고 있어 필요할 때 나를 찾을 수도 있는 사람일까? 주로 후배들이다. 또는 모든 게 달라도 너무 다르지만 서로 간 마르지 않는 애정을 가지고 있어 어려울 때 한걸음에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인가? 주로 어릴 적 친구들이다.

이런 기준으로 정리하다 보니 그저 50여 명의 사람들과 몇 개의 모임이 남았다. 나이 먹어가며 앞으로 있게 될 기쁨과 상실의 순간에 서로 같이 있어줄 사람들 말이다. 물론 핸드폰 연락처를 50명 빼고 다 지웠다는 말은 아니다.

정리를 하다 보니 아쉬운 점도 있었다. 그간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으나 나는 눈앞의 목적만을 보며 그 사람 자체에 좀 더 다가가지 못했다. 아직 현직에서 숨 가쁘게 살아가는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다. 누군가를 만날 때에 ‘목적’ 뒤의 ‘그 사람’을 보라고 말이다.

목적은 때가 되면 해결되고 사라지지만, 사람은 남는다. 그런 후배라면 그는 나의 50명보다 더욱 풍성하게 후반부 인생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에 둘러싸일 것이다.

‘GIVE & TAKE’에서 애덤 스미스 교수는 ‘진정한 Giver’들은 주변에 셀 수없이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있고, 그들은 자신의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필요한 사람들을 조건 없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최선을 다해 연결해 주는 사람이다.

우연히 한번 만난 사람도 진정한 Giver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받아 크게 성공한 사례들이 있다. 수혜를 받은 그도 다시 조건 없이 타인을 도울 Giver가 되기도 한다.

나도 한때 Giver가 되고자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고 연결시켜 주기도 했다. 그러다 지쳤다. 난 진정한 Giver는 못되나 보다. 그래도 상관없다. 이제는 편안한 사람들, 함께 무언가를 도모할 수도 있는 사람들, 비록 스타일은 몹시 다르더라도 왠지 그런 그를 더 알고 싶어지는 사람들과 만나련다. 그러기에도 인생은 짧다.

얼마 전 서점에 가서 신간을 쭈욱 둘러보다 한 책의 부제에 눈이 꽂혔다. “주말만 기다렸는데 막상 주말이 되자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순간 내게 그 말은 이렇게 들렸다. “퇴직만 기다렸는데 막상 퇴직을 하자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럼 관계 리모델링부터 하자.

선배 중에는 이런 충고를 하는 사람이 많다. 퇴직 후에는 인간관계가 어차피 줄어드니 불러주는 모든 모임에 악착같이 참석하라고. 얼마 전 마지못해 끌려나갔던 모임에서 이런 분들을 만났다. 술 한잔과 함께 옛날의 추억을 안주 삼아 했던 말을 무한 반복한다.

때론 과거를 회상하며 웃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에 갇혀 사는 건 곤란하다.

30, 40년의 사회생활은 누구에게나 거미줄 같은 인간관계를 남긴다. 인생2막에서는 한번은 관계를 덜어 내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자. 아파트도 30, 40년 되면 재건축과 리모델링이 시작되지 않는가? ‘관계’든 아파트든 그쯤 되면 손을 봐야 하나 보다.

이제 주위를 둘러보니 조직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부류의 사람들이 보인다. 내가 가고 싶은 영역에 먼저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다.

오늘도 나는 그들을 만나며 새삼 신기하고 놀란다.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여기에 신념을 가지고 어떤 것들을 포기하고 소명에 이끌려 사는 사람들이 많구나. 아니 포기할 무엇도 가져본 적도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사회생활 출발점부터 넘어지는 청년들을 붙잡아주는 사회적 기업의 김 대표를 만났고, 삶의 회복을 돋는 ‘삶의 예술학교’의 헌신자들을 만났고,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 마땅치 않은 젊은이들에게 코칭을 해주는 프로보노 코치들을 만났다. 그리고 내가 함께할 50여 명과는 현직 때는 못했던 좀 더 깊은 만남을 가지고 있다.

머물던 곳에서 떠나야, 가진 것을 버려야 비로소 새로운 것을 만난다는 어느 책의 구절이 와 닿는다. 선배님들, 동료들이여! 과거는 이제 보내자. 새 술은 새 부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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