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깡!’이다. 두 손 번쩍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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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깡!’이다. 두 손 번쩍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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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0.1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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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설희의 썰] ‘이제와 돌아보니’(14)
윤설희 전 KB생명보험 부사장
윤설희 전 KB생명보험 부사장

나는 책읽기를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책 훑어보기를 즐겨한다. 내 단골 서점에서는 매일 신간 리스트를 보내준다. 굳이 읽지 않아도 손가락 하나로 세상의 변화를 감 잡는다.

이렇게 많고 다양한 책들이 하루 새에 쏟아져 나오다니! 제목과 표지를 훑는 것도 꽤 재밌다. 특히 밀레니얼 친구들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스스로 작가이기도 한 책들은 제목부터 원초적이고 직관적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비롯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쾌변을 위한 사소하고 잡다한 놀이’ ‘나를 힘들게 하는 또라이들의 세상에서 살아 남는 법’ ‘여자를 위한 수염은 없다’ 등등.

제목만 읽어도 밀레니얼의 외침이 들린다. 얼마 전 내 시선을 딱 멈추게 한 제목이 있었다. 어느 외국작가가 쓴 ‘Brave, Not Perfect!’였다. 그래! 이거다. 내가 평소 여성후배들에게 하는 외침을 딱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었다. ‘완벽하기보다는 용기를!’…. 

“김 차장, 이번에 팀장을 맡아야겠어요. 자격도 충분하고 때도 되었지요?” 평소 뭘 맡겨도 일을 잘 해내는 김 차장에게 인사철을 앞두고 기쁜 맘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차세대 여성 리더로 찍은 친구였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저, 부사장님, 저는 그냥 일만 할래요. 팀장은 사양하겠습니다.” 엉? 이게 무슨 말? 누가 일하지 말랬나? 평소에 겸손하거나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도 아니었다. 적극적이고 저돌적인 일 추진으로 주위를 압도하는 친구였다. 근데 생각지 못하게 발을 뺐다. 이유를 물어보았다.

하나 이리 묻고 저리 물어도 팀장을 고사하는 명확한 이유를 본인도 나도 알 수 없었다. 결국 김 차장은 자기 자리에 그냥 머물렀다. 옆자리의 남자 차장이 팀장이 되었다. 몇 달 후 자신의 상사가 된 그를 두고 그녀는 한 마디 툭 뱉었다. “이렇게 일이 안 돌아갈 줄 알았으면 제가 팀장 할 걸 그랬어요.”

이제 와서 이게 무슨 말? 팀장을 고사한 이유는 뭔가? 우리는 다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한 끝에 그때의 거절이 용기 부족과 완벽성에 대한 집착임을 알게 되었다. 충분히 자격이 있음에도 그녀는 더욱 잘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이다.
뒤집어 말한다면 버벅거리고 실수할 자신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러다 팀장 초반에 우왕좌왕하는 남자 팀장을 지켜보며 오히려 그가 자신보다 준비가 덜 되었음을 안 것이다. 차 떠난 다음에 손 흔든 꼴이다. 현재 그녀는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고 남자 팀장은 초반의 헤매는 것을 지나 안정을 찾았고 다음해 부장으로 승진했다.

격 좋고 일도 스마트하게 잘하는 여자 대리와 같이 일 할 때였다. 옆 부서에서 사람을 찾는다고 추천을 요청했다. 누가 봐도 내가 맡고 있는 부서보다 은행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핵심 부서였다. 주저 없이 김 대리를 추천했고 해당 부서 직원들도 그녀의 온화한 성품과 일 잘한다는 소문에 대환영이었다.

감사하다며 가족과 의논하겠다던 그녀는 다음날 그 자리를 사양했다. 이유는 남편의 반대. 아이도 어린 데 야근이 예상되는 직무를 하면 가정생활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었다.

곧이어 그녀는 육아를 위해 집 근처 지점을 자원하여 나갔다. 한참 후 다시 만난 그녀는 평범한 지점 직원이었다. 그리곤 이미 지점장, 부장이 된 동기들을 바라보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이 또한 차 떠난 다음에 손 든 거다. 그때 남편의 반대에 ‘NO’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더라면, 직장과 가정생활 둘 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았다면 어땠을까? 그것이 꼭 가정생활의 실패를 가져올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한 경우이다.

남성들은 어떤가? 그들은 준비 전이라도 기회가 오면 주저 없이 받아들인다. 아니 기회가 오지 않더라도 문을 두드리고 손을 번쩍 든다. 한발 더 나아가 원하는 자리를 얻기 위해 안테나를 세우고는 미리미리 환경을 만들고 주변에 존재를 알린다. 수시로 부탁과 청탁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완벽해야 시작하는 여성들, 일단 뛰어들어 부딪치면서 전진하는 남성들. 이들의 차이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릴 때 교실을 떠올려 보자. 선생님이 질문이라도 하시게 되면 교실이 소란스러워진다. 남자아이들은 무조건 ‘저요, 저요’를 외친다. 알면 다행이고 몰라도 으쓱하고 어깨 한번 털고 또다시 손을 든다. 반면 여자아이들은 어떤가? 확실하게 답을 알 때만 야무지게 손을 든다. 긴가민가할 때는 책상만 뚫어지게 보며 고민한다. 대개는 맘속으로 생각한 것이 정답이다.

딸들의 뒤에는 나서지 말고 조신하게 있으라고 속삭이는 부모가 있다. 반면 부모들은 아들들의 등을 한껏 떠민다. 실수와 덤벙거림도 맘껏 격려되었다. “이놈 장군감이야. 크게 될 놈일세.” 교실에서의 장면이 회사 내에서도 연장된 것일까?

나 또한 부장 시절에 결정적 실수를 했다. 윗사람이, 그것도 최고경영자가 특정 부서를 담당할 것을 요청, 아니 지시하였다. 나는 NO를 했다. 당시에는 그것이 용기라고 생각했으나 분위기 파악 못한 패착이었다. 할 일 투성이에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그 부서를 맡고 싶지 않았다. 예상되는 실패가 두려웠다. 잘한다는 소리만 듣고 싶었다.

어려운 부서를 맡아 힘들지만,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뻥’ 차버린 것이다. 윗사람도 상황을 충분히 알았고 내게 기회를 준 것이었다. 이후 내게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가까스로 임원이 되어서도 변방을 돌았다. 끙! 33년 직장생활에 큰 후회는 없었으나 요것만은 필름을 다시 돌리고 싶다.

여성과 남성의 출발은 같다. 오히려 여성은 집중력도 좋고 성실해서 초반에 앞서 나간다. 그러나 중간관리자 이후는 남성이 앞서간다. 그들은 손 번쩍 들어 기회를 만들고 핵심업무를 맡는다. 그리고 실수하며 배운다.

그러면서 도약하고 또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 한마디로 그들은 ‘Brave’ 먼저, ‘Perfect’는 나중이다. Perfect는 시간이 해결해 준다. 그러면서 점점 거물이 되어간다. 세상 최고경영자(CEO)들의 대부분이 남자다.

물론 여성의 성장에 용기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나 아직도 남성들의 이너써클, 사내정치, 골프문화, 밤문화를 언급하며 유리천장만을 탓할 것인가? 세상은 좀 나아졌다.

내 시대처럼 더 이상 늦은 밤 2차에서 탬버린을 흔들지 않아도 된다. 평소 하던 대로 깔끔한 일 처리와 책임지는 자세와 주변을 포용하는 리더십만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필요한 건 용기! Brave 해져야 한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기회가 오면 깡 있게 두 손 번쩍 들자. 이것이 남성들이 성장하고 성공하는 단순한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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