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야근의 민족’이라 부른다는데…
우본, 창구·지원분야 직원들의 속얘기

오후 6시 안 돼 온 우편물 처리하다보면 8시
근무 1~2시간 더하고도 초과근무는 ‘0
상사 눈치 보는 수십년된 내부 문화 때문
스스로 권리 찾는 적극적인 자세 절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공무원노동조합(우정사업본부노동조합)이 만든 포스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공무원노동조합(우정사업본부노동조합)이 만든 포스터.

2019년 10월 11일 현재 경기도 B 우체국에 근무하는 K씨(45). 우체국 창구직원인 그는 오후 8시 퇴근이 일상화됐지만, 초과근무 수당을 신청한 기억이 없다.

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그것은 우체국의 얘기일 뿐 고객의 입장에서는 6시까지만 우편물을 가져가면 접수가 가능하다고 여긴다. 맞는 말이다.

은행도 마감시간 전까지 고객이 들어오면 셔터를 내리고도 일을 하듯이 우체국을 비롯한 대한민국 대부분 직장의 창구업무가 모두 마찬가지다.

이렇게 일하다 보면 7시는 기본이고, 8시까지 가는 경우도 다반사다. 회의니 뭐니 해서 조기출근도 잦다. 그런데도 초과근무 수당은 아예 생각지도 않는다니 의아했다.

국정감사 때마다 수당 부정수령 등의 문제가 터져 나오고, 해마다 한 두 번은 수당을 부정수령한 공무원에 대한 감사원이나 검찰의 조사 결과가 발표돼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는 판에 일하고도 수당 신청을 하지 않다니….

초과근무 수당 신청한 기억이 가물가물

그래서 물었다. “상사 눈치 보고, 조직의 눈치를 보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요즘 세상에 일하고 초과근무 수당 신청하지 않는 게 있을 수 있나요.”

“이해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게 우체국입니다.” 의아하겠지만, 사실이란다.

우정사업본부하면 집배원들의 과로를 떠올린다. 하지만, 창구 등에서 근무하는 행정·기술직 공무원들의 어려움도 심각하다고 한다. 집배원들의 어려움에 가려서 보이지 않을 뿐 이들의 노동 강도 역시 상상이상이란다.

왜 그럴까. 이들의 대답은 우체국 근무체계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이구동성이다.

우정사업본부-지방우정청-총괄국-관내국의 피라미드형 조직구조에서 총괄국 이하 행정·기술직 공무원들은 사각지대에 놓여서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다는 게 우체국 일선 직원들의 얘기이다.

강요 안 한다지만, 신청하려면 눈치 보여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강조하지만, 경영평가 때문에 실적에 매달리고, 또 그 평가에 중요 요소가 비용이어서 초과근무 수당을 신청하지 않는 게 오랜 관행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제도상으로는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근무 시작 전 초과근무를 신청하거나 끝난 이후에도 신청이 가능하다. 공무원 내부 시스템인 ‘e-사람’을 통해서다.

우정사업본부도 초과근무를 통제하지 않는다는 게 공식적인 입장임은 당연하다. 오히려 그런 사례가 있으면 제보해 달라는 입장이다.

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퇴근 직전 우편물이 도착하면 우체국 창구나 지원업무 공무원들은 초과근무가 다반사지만, 실제로 초과근무를 등록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우체국 현장 모습. 우본노조 제공
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퇴근 직전 우편물이 도착하면 우체국 창구나 지원업무 공무원들은 초과근무가 다반사지만, 실제로 초과근무를 등록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우체국 현장 모습. 우본노조 제공

하지만, 우체국 업무는 ‘즉시성’과 ‘비예측성’이 특징이다. 마감 직전에 우편물이 몰리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또 고객 우선이기 때문에 우편물 등을 처리하고 나서 오후 5시가 지나서 자료나 보고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게 수십년 쌓이면서 우체국은 1~2시간 일 더한 것은 초과근무 신청을 안 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고, 만약 이를 신청할 경우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이철수·우정사업본부·이하 우본노조)에 데이터를 요청했다. “노조가 이런 것이 있으면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곧바로 자료가 왔다.

노사 공동 실태 조사해 문제 드러났지만, 시정 안 돼

올 3월부터 4월 사이에 노사가 합동으로 실시한 ‘노사합동 초과근무 운영실태 점검 결과 보고서’다.

조기 출근에 따른 초과근무 신청은 거의 없었고, 퇴근도 신청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보안점검표에 오후 8시 퇴근자가 초과근무 수당은 0시간으로 돼 있는 경우가 수두룩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체국에서는 초과근무 수당을 신청했는데 승인을 안 한 경우는 없다고 나와 있다. 당연하다. 신청을 안 했으니 미승인도 없는 것이다.

2018년 우정사업본부 행정·기술직 초과근무 현황 자료를 보면 어떤 우체국은 월평균 초과근무 시간이 44시간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불과 1.4시간에 그치는 경우도 있었다. 상당수가 10시간 이내다.

그런데 초과 근무시간 1.4시간이면 한 달 내내 거의 정시에 퇴근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가능한지를 물었다. “창구 등 지원 업무를 하는 직원이 정시에 퇴근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렇다면, 월평균 44시간이 정상입니까. 편차가 너무 크지 않나요.”

사연인즉슨 이렇다. 우편물류센터가 있어서 이를 포함하면 통계상 초과근무 시간이 늘어나고, 우편물류센터가 없고, 창구 직원만 통계를 내면 월평균 1.4시간짜리 초과근무 통계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B씨처럼 창구 직원이나 지원인력이 아침이나 저녁때 초과근무를 하고도 신청하지 않으면서 발생한 편차라는 것이 이들의 얘기이다.

게다가 요즘 들어서는 집배원노조의 인력 충원 요청에 따라 우체국이 폐국으로 발생하는 인원 등을 창구 인력으로 배치하지 않고, 집배분야로 배치하면서 오히려 계리원, 우편원 등 창구인력의 업무 강도는 더 세졌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초과 근무가 늘 수밖에 없는데 초과근무를 신청하지 않는 분위기가 구조화돼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권리 찾는 마음가짐도 중요

지난해 우정사업본부 초과근무 수당은 1163억원이 편성됐다. 이 가운데 50~60%가 집배 분야로 지급되고, 나머지가 창구·지원 분야에 쓰였다는 게 우본노조의 얘기이다.

이마저도 올해는 초과근무 수당에 책정된 예산이 697억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집배분야는 물론 창구·지원 분야 초과근무 수당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런 상태라면 초과근무를 하고도 수당을 제대로 신청하지 않는 구조화된 문제점의 해결은 난망할 뿐이다.

답이 없을까, 우본노조는 우정 당국이 ‘일한 만큼 대가를 지불한다’는 자세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본노조는 “우체국 창구·지원 분야 종사원이 일한 만큼 수당을 인정해주든지 아니면 중앙부처 공무원과 동일하게 초과근무제도를 인정해달라고 우정사업본무에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다”며 우정사업본부를 비난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정당한 자신의 권리를 찾겠다는 우본 공무원들의 마음가짐이다. 세상 어디에도 대가 없는 노동은 없다. 있다면 그것은 봉사활동이다.

우본노조는 지난 여름부터 초과근무 신고센터를 운영하는 중이라고 한다.

이철수 우본노조 위원장은 “결국 스스로 권리를 찾지 않으면 누구도 이를 대신해 줄 수 없다”면서 “당국에 초과근무 인정을 줄기차게 요구하겠지만, 창구·지원분야 종사자들의 초과수당 찾기 캠페인을 펼쳐 무보수 초과근무를 당연시하는 우본의 문화를 분쇄하겠다”고 말했다.

김성곤 선임기자 gsgs@public2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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