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에 ‘베이비부머’까지… 공직사회의 빛과 그림자
올해 국가공무원 9급 50대 40명, 지난해보다 22명 늘어
서울시는 올해 9급 공채 합격자 100명 중 2명이 50대
‘자식세대 일자리 뺏는다’ vs ‘공직 다양성에 보탬’ 갈등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최종합격자 가운데 50대가 40명으로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사진은 지난 7월 치러진 국가공무원 9급 필기시험 모습. 인사처 제공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최종합격자 가운데 50대가 40명으로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사진은 지난 7월 치러진 국가직 9급 필기시험 모습. 인사처 제공

공직사회에 고령합격자가 밀려들고 있다. 처음에는 한둘 보이더니 이제는 50대 합격자가 직급별로 수십명씩 들어온다.

같은 직급에서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세대)와 베이비부머(6·25전쟁 이후인 1955년부터 1963년 출생 세대)가 공존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일반 기업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같은 직급에서 같은 호봉의 급여를 받는 20대와 50대가 공존해야 한다.

한 40대 공무원은 “젊은 밀레니얼에 적응하기도 전에 50대 후배를 상대해야 할 판이다”고 씁쓸해했다.

반면, “신규 채용자의 1%대 안팎인 50대 합격자 문제로 호들갑을 떨 필요가 있느냐”는 공무원도 적지 않다.

자료:인사혁신처
자료:인사혁신처

28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 26일 합격자를 공개한 2020년 국가공무원 7급 공채 최종합격자 가운데 50대 이상은 40명으로 전체(4729명)의 0.8%를 차지했다. 지난해 18명(0.3%)에 비해 22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국가직 9급 최고령 합격자는 1961년생

최고령 합격자는 1961년생으로 만 59세, 한국 나이로는 60세였다. 지난해 최고령 합격자는 1959년생이었다.

이런 현상은 지방공무원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서울시 공채에서도 50대 합격자 비율이 1%를 이미 넘어섰다.

9급의 경우 2018년 29명에서 2019년 35명으로 30명대에 올라서더니 올해는 무려 47명이나 합격했다. 이는 전체 합격자(2616명)의 1.8%에 달하는 것이다.

올해 9급 합격자 가운데 최고령자는 1962년생으로 일반행정에서 나왔다. 2019년에는 9급 장애인 분야 59세 합격자가 최고령이었다.

50대보다 덜하지만, 40대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9급 국가공무원시험의 경우 지난해 40대 합격자가 160명(전체의 3.2%)이었으나 올해는 239명(5.1%)으로 늘어났다.

서울시도 9급 공채 결과 40대 합격자가 207명(전체의 7.9%)이었다. 2019년에는 171명(5.8%), 2018년에는 160명(7.1%)이었다.

연령제한 폐지로 인생2모작 블루오션된 공시

공무원시험에 고령자가 몰리는 것은 지난 2009년부터 공무원시험 연령제한이 폐지됐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응시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불합리한 차별이라고 규정하면서 공무원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자료:서울시
자료:서울시

이후 조금씩 40·50대 합격자가 늘더니 몇년 전부터 경기침체 등으로 조기퇴직자들이 늘어나고, 40대와 50대의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이들이 인생2모작으로 공무원시험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근무경력 10년이 안 되면 공무원연금 혜택도 못 받는데다가 몇년 근무하다가 퇴직하는데도 공무원시험에 고령자가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대체로 정년이 보장돼 안정적이고, 공무원에서 퇴직 이후에도 경력에 보탬이 돼 고령 응시자가 몰린다는 분석이다.

최근에는 모 방송에서 지방지 기자를 하다가 정년퇴직하고 50대 후반에 9급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인생2막에 성공한 김찬석씨를 소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가 방송에 나온 뒤 “에이 때려 치우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든지 해야지”하는 직장인들도 늘고 있다. 이른바 ‘김찬석 신드롬’이다.

이밖에 공무원 경력을 활용해 퇴직 이후에 다른 사업에 활용하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자격증 관련, 직종의 경우 공무원 경력은 신뢰도는 물론 업무에서도 큰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엇갈리는 고령합격자에 대한 시각

이들 고령합격자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공직사회는 드러내놓고 얘기는 안 하지만, 부정적이다.

자료:서울시
자료:서울시

“아무래도 신경쓰이지요. 지시도 쉽지 않고, 일단 삼촌뻘이니 거리감이 있는 것은 사실아닌가요.” 고령자와 같이 근무하는 한 기초자치단체 공무원 A(37세)씨의 얘기이다.

“나이제한도 폐지되고 면접도 블라인드라서…” 한 지자체 인사 담당자는 “일 배울 만하면 나가는데 부서에서는 좀 꺼리는 경향이 있다”면서 “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는 트렌드다”고 말했다.

반면,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직원들도 많다. “그분이 스스로 알아서 열심히 해요. 더 배우려고 하고, 우리에게 맞추려 하니 문제 될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일을 빨리 배우는 분야도 있어요.”

중앙부처에서 50대 합격자와 같이 근무하는 B씨의 얘기이다. 그는 “솔직히 제 승진 경쟁자도 아니고, 또 사회경험 등을 공유하니 보탬도 된다”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들 자리 뺏는 것 아니냐” 논란도

2009년 연령제한이 폐지됐을 때부터 제기된 논란이 고령자가 아들이나 조카의 자리를 뺏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자료:서울시
자료:서울시

공단기 등 공무원 시험관련 학원에도 고령 수강생은 적지 않다고 한다. 공단기 관계자는 “수강카드 작성이나 패스 구입 시 나이 등을 묻지 않아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고령 수험생이 늘어나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구직자 아들을 둔 주부 C씨는 “청년백수가 넘쳐나는 데 인생2모작으로 공무원시험을 보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솔직히 말했다.

하지만, “어차피 경쟁이고, 그 수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그런 것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쿨한 공시생도 적지 않았다.

중앙부처 국장급 간부는 “지금까지 맘에 드는 직원하고만 근무한 것은 아닌데 고령자라고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은 없다”면서 “공직사회의 다양성 차원에서도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나이를 따지는 공직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다만, 젊은 사람이 손해 보는 공직제도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이나 경력 중심보다는 직무 중심으로 가야 한다”며 “이제는 공직사회의 인식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곤 선임기자 gsgs@public25.com

저작권자 © 공생공사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