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보장 우려에다 보훈처 사태 이후 위축

이름뿐인 소통방도 수두룩, 소통보다는 불만

기관장이 신경쓰니 간부들은 죽을 맛

“만들었으면 활성화해야” 지적도

개성 있고 부처의 특성을 살린 공무원 소통방 이름들. 그래픽 서울신문 제공
개성 있고 부처의 특성을 살린 공무원 소통방 이름들. 그래픽 서울신문 제공

“한번 만들어 놓은 것을 없앨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올라오는 글들을 무시할 수도 없으니 간부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겁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때 활기를 띠었던 공직사회 내 소통방이 최근 들어서는 주춤하다.

“아무리 익명이라지만, 문제가 되면 IP 추적 등을 통해 신분이 드러나는데…”하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지난해 국가보훈처에서 소통방 내 게시글이 명예훼손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등 문제가 된 것도 한몫했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내용도 지난해와는 달리 근무환경 개선이나 신변잡기가 많고 일부는 개인불만을 쏟아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소통방 개설을 준비 중이던 부처도 ‘없었던 일’로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직장내 괴롬힘 금지법 이후 소통방에 관심 늘어

하지만, 이달 들어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발효하면서 소통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공무원들은 근로기준법이 아닌 공무원 복무규정에 적용을 받기 때문에 괴롭힘 금지법에 호소할 수가 없다. 실제로 일부 부처 소통방에서는 공무원들도 괴롭힘 금지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복무규정을 개정하든지 아니면 유사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고 한다.

아직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지만, 일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활성화되면 공직사회에서도 사내 소통방을 통해 각종 사례가 쏟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법제처 등 세종시에 입주한 기관들은 29일 오후 간부를 대상으로 갑질방지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작명가 뺨치는 공직사회 내 소통방 명칭

온라인이 보편화되면서 공직사회 내에도 자유게시판 성격의 소통방이 개설되기 시작했다. 소소한 생활정보의 교환,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느끼는 생각들을 공유하기도 하고, 때론 조직 내 관행이나 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는 이른바 자유게시판 성격이다.

문재인 정부 이후 급속도로 늘어났다. 18부 5처 17청 2원 4실 가운데 대부분 기관이 소통방을 두고 있다. 일반에는 개방되지 않고, 대부분 익명이다.

이름도 가지가지다. 자신의 부처 특성을 살린 곳도 있고, 그저 형식적으로 유지만 하는 곳도 있다. 만들 당시 기관장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기관은 작명가 뺨치듯 아이디어가 번득인다.

보훈처의 소통방은 ‘보톡스’다. 보훈처의 앞자와 ‘Talk’를 잘 엮은 이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국무조정실은 ‘만사소통’, 행정안전부는 ‘소곤소곤’, 기획재정부는 ‘공감소통’인데 교육부는 ‘소통공감방’이다. 누가 먼저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환경부는 ‘사이다환경톡톡’, 중소벤처기업부는 ‘아무말대잔치’, 국민권익위는 ‘솔직담백방’, 국세청 ‘소통광장’, 조달청 ‘조달통’ 등도 잘 지은 이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대부분 소통방 이름값 못해

교육부와 기재부의 소통공감방과 공감소통방은 기관의 성격을 반영하듯 별다른 내용 없이 밋밋하다는 게 직원들의 자체 평가다. 대부분 공감을 이끌어 내는 주제보다는 근무환경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 등의 소통이 이뤄진다고 한다. 기재부의 경우 7월 중순 현재 올라온 글이 7건에 불과하다고 한다.

환경부가 운영 중인 사이다 환경 톡톡은 익명에다가 IP 추적이 안 되게 설계를 했지만, 잘 홍보가 안 됐는지 아니면 직원들이 이를 믿지 못하는 것인지 실제 활용도는 낮은 편이다.

국무조정실의 만사소통도 이름값을 못하는 소통방 가운데 하나다. 화장실 불결 등 개인적인 것들이 많다고 한다. 권익위 솔직담백방도 개인 권익 침해가 많이 올라온다. 국방부의 소통방 이름은 ‘소통’이다. 올라오는 내용은 회의실 추가 설치나 흡연구역을 옮겨달라는 내용 등의 건의 글 중심이라고 한다. 타 부처에 비해 경직돼 있다는 평가다.

인사혁신처와 국토교통부의 소통방 이름은 ‘자유게시판’과 ‘무기명게시판’이다. 성의없는 게시판으로 꼽힌다. 내용도 이름만큼 별것이 없다고 한다.

행안부 소곤소곤은 비교적 활발한 편에 속한다. 세종시로 이전 이후 직원들이 느끼는 ‘문화적 소외감’과 부적응 문제가 자주 올라오고, 이에 대한 공감도 많다고 한다. 또 정직직원으로 전환된 뒤 청원경찰의 과도한 검문검색 등의 글이 올라와 공감을 얻기도 했다. 반대로 청원경찰은 처우개선 목소리도 높다고 한다.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개점휴업 중인 '보톡스'

직원들 소통방으로 이름이 높기는 보훈처의 보톡스다. 그러나 톡톡 튀는 이름답게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휴업’ 중이다. 지난해 7월 서기관 승진 이후 15개월 만에 부이사관이 된 모 과장을 두고, 보훈처 내 고충토론방인 보톡스에 90여 개의 비판성 글이 쏟아졌다. 특별승진제도를 만든 당사자가 승진을 하면서 셀프 승진을 했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적폐청산 담당자에 대한 보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 사건은 인사 당사자가 “자신을 음해한 직원을 담당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고 했고, 음해 당사자로 눈총을 받은 직원이 “그런 적이 없다. 이게 무슨 비공개 방이냐”고 하면서 국감에서까지 이슈가 되기도 했다. 결국은 누가 글을 올렸는지는 공개되지 않고 지나갔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보톡스는 잠정중단된 상태다. 보훈처로서도 감당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 사건 이후 각 부처는 직원 소통방을 ‘요주의 대상’으로 눈여겨보기 시작했고, 반대로 공직사회에서는 “익명의 소통방이 과연 익명이 보장되는가”에 대한 회의론이 일었다. 최근 공무원 소통방이 활기를 잃은 것도 보훈처 사태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청와대 감사원은 소통방 없고, 있어도 실명 요구하는 곳도

청와대는 보안 때문에 소통방을 따로 두고 있지 않다. 소통을 위한 별도 서버를 두지 않는 한 소통방을 두기가 어려운 구조다.

그러나 보안과 크게 관련이 없는 감사원이나 법무부, 문화체육관광부, 외교부 등은 아예 소통방을 두고 있지 않다.

소통방을 만들어 놓고도 실명을 요구하는 부처도 있다. 고용노동부의 ‘백인백색’, 법무부가 소통방 대신 만들어 놓은 ‘미담칭찬방’은 실명이다. 직원들은 “실명으로 해놓으면 누가 자유롭게 발언을 하겠냐”며 볼멘소리를 한다.
 
“없앨 수도 없고…” 냉가슴 간부들…그래도 순기능 살려나가야

중기부 아무말대잔치에는 2017년 12월 개설 초기에는 회식 자리의 불편함을 꼬집는 익명글이 올라와 간부들을 긴장시켰다. 이에 따라 요즘은 가명으로 글을 올리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고 한다.

가명이든 실명이든 기관장은 이들 글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정부부처의 한 고위공무원은 “기관장으로서는 신경을 안 쓸 수가 있겠냐”면서 “이에 따라 간부들도 혹시 자신의 얘기가 올라오는 것 아닌가하고 긴장한다”고 털어놓았다.

없앨 수가 없다면 이를 보다 실용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 다른 고위 공무원은 “부내의 토론방은 익명이라고 해도 글을 올리다 보면 어느 부서, 누구인지 대충 알 수 있다”면서 “범 정부부처 토론방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고 말했다.

소통방은 익명이지만, 운영원칙은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하면 처벌받을 수밖에 없다. 운영 규정에 이를 분명히 고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토론방이라고 해서 상대방을 음해하는 등의 글을 올라오는 것은 지극히 예외적이다.

직원 괴롭힘 금지법 발효를 계기로 공직사회에서도 소통방을 활성화해 갑질 피해 방지나 근무환경과 불합리한 관행의 개선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성곤 선임기자 gsgs@public2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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