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이재용 ‘불법 승계’ 19개 혐의 전부 무죄…“범죄증명 없어”
국정농단 이후 8년 반 동안 발 묶였던 이 회장 사법리스크 탈피
반도체 인텔에 1위 내주고 파운드리는 TSMC와 격차 더 커져
HBM에서는 SK하이닉스에 한참 뒤쳐져 초격차의 삼성은 옛말
국정농단 사면복권·경영권 승계 무죄… 이젠 경영성과 보여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지 3년 5개월 만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비록 1심 판결이긴 하지만, 그동안 이재용 회장의 발목을 잡아온 사법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에는 충분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는 5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된 지 8년 5개월,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로 이 사건이 터진 지 7년여 만이다.

이 회장 등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최소비용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지배력 강화를 위해 미전실이 추진한 각종 부정 거래와 시세 조종, 회계 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로 2020년 9월1일 기소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은 미전실이 이 회장의 승계계획안으로 불리는 ‘프로젝트-G’ 문건에 따라 2015년 이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제일모직을 삼성물산과 흡수합병했다고 봤다.

그룹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당시 삼성전자 2대 주주로 4.06% 지분을 보유, 지주회사격이던 삼성물산의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자 제일모직의 주가는 올리고 삼성물산의 주가는 낮추기 위해 이같은 부정행위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두 회사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어서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고,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봤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권 승계 관련 재판 무죄로 8년여의 사법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사진은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서울신문DB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권 승계 관련 재판 무죄로 8년여의 사법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사진은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서울신문DB

특히 재판부는 검찰이 ‘불법 합병계획’의 핵심 증거로 제시한 ‘프로젝트-G’·‘M사 합병 추진(안)’ 등 내부 문건이 일반적인 기업 실무 차원에서 검토할 수 있는 보고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전체 피고인 기준 23개, 이 회장이 연루된 19개 혐의 모두에 대해 “증거가 부족하다”, “달리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검토 분석하여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판결로 이재용 회장은 그동안 준비했던 ‘뉴삼성 플랜’을 본격화할 수 있게 됐다.

이 회장이 사법리스크에 발목이 잡힌 기간은 무려 8년여에 달한다.

그동안 삼성전자가 누리던 반도체 부문 등에서의 ‘초격차’는 거의 지워졌다.

지난해 반도체 1위 기업의 지위를 인텔에 넘겨준 데 이어 갤럭시 판매도 고가폰에서는 애플에 밀려 중저가폰 판매로 매출의 상당 부분을 채웠다.

파운드리를 통해 다각화를 시도했지만, 대만의 TSMC와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지난해 3분기 삼성의 전세계 파운드리 점유율은 12.5%로, TSMC(57.9%)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애플이나 퀄컴 등의 파운드리 중 TSMC의 과부하로 남은 물량을 이삭줍기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그뿐인가. SK하이닉스에는 HBM(고대역 메모리) 주도권을 완전히 내주고 말았다.

삼성전자도 한때 HBM 전담부서를 두고, 개발에 착수했으나 포기하고, 팀마저 없애버렸다.

반면 하이닉스는 AMD와의 협업을 통해 지속적인 기술개발에 성공해 AI시대가 도래하면서 대박을 쳤다.

비용절감에 집착해 개발부서를 없애는 등 미래예측에 실패한 삼성전자의 대가는 컸다.

한때 올 상반기에는 SK하이닉스를 따라잡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쉽지 않으리라는 분석이다. 3년여의 격차를 1년 만에 따라잡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

이재용 회장이 사법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있는 동안 인수합병(M&A)도 거의 없었다.

4차산업사회에서는 선제적인 과감한 투자가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관건인데 오너가 사법리스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니 월급쟁이 경영자들이 M&A에 나서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이날 판결로 이런 사법리스크로부터 헤어나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남은 것은 이 회장의 숙제다. 사법리스크도 벗어나고, 국정농단 관련해서 특사와 사면복권까지 이뤄진 만큼 이제는 경영성과를 안팎에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해 8·15 사면복권이 이뤄졌지만, 1년 6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 회장은 별다른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런 마당에 법원에서 경영권 승계관련, 무죄 판결을 받아든 만큼 그의 어깨는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가 시민단체 등의 비판도 넘어서야 할 과제다.

이 회장이 경영실적을 내지 못하면 이전 이 회장의 사면복권과 이번 법원 판결에 비판적인 여론은 사그라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경제단체는 이재용 회장의 무죄 선고와 관련, “경제에 도움될 것”이라며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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