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 구한 뒤 화재진압 중 콘크리트 더미에 맞아 희생
사고 때마다 재발방지 다짐하지만, 이어지는 소방관 순직
“화재진압대원도 힘든 데 제주는 인력 없어 구급대원 투입”
현장 간부들 대응은 제대로 이뤄졌는지 등 철저히 따져야

고(故) 임성철 소방장. 임 소방장은 지난 1일 제주도 서귀포의 한 감귤농장 화재 때 노부부를 대피시킨 뒤 화재 진압도중 무너지는 콘크리트 더미에 맞아 순직했다. 연합뉴스
고(故) 임성철 소방장. 임 소방장은 지난 1일 제주도 서귀포의 한 감귤농장 화재 때 노부부를 대피시킨 뒤 화재 진압도중 무너지는 콘크리트 더미에 맞아 순직했다. 연합뉴스

소방관이 순직하면 하늘에서 이 땅을 내려다보는 별이 된다는데 또 한 명의 20대 젊은 소방관이 별이 됐다.

성공일 소방교가 지난 3월 전북 김제의 주택 화재 때 안에 있는 노인을 구하려다가 순직한 지 9개월여 만이다.

앞서 임성철 소방장(29·사고 당시 소방위)은 지난 1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감귤 보관 창고에서 난 불을 끄다가 무너진 외벽 콘크리트 처마에 머리를 맞고 순직했다.

당시 임 소방장은 화재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80대 노부부 등의 대피를 도운 뒤 입구 쪽에서 진화작업을 하던 중 무너지는 콘크리트 더미에 머리를 크게 다쳐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끝내 회생하지 못했다.

제주한라대학교에서 응급구조를 전공한 임 소방장은 소방관이 꿈이었다고 한다.

2019년 5월 창원에서 소방공무원에 입직한 뒤 2021년 고향인 제주로 돌아와 제주동부소방소 표선119센터에서 근무해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 소방위의 순직과 관련, 지난 1일 1계급 특진(소방장)과 함께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윤 대통령은 비보를 접한 뒤 고인을 애도하며 “큰 슬픔에 잠겨 있을 유가족과 동료를 잃은 소방관 여러분에게 깊은 위로를 드린다”며 “불길이 덮친 화재 현장 최일선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 고인의 헌신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영훈 제주지사도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도민 안전을 위해 거대한 화마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임무를 소화하고자 나섰던 고인의 소식에 마음이 미어진다”며 “하늘의 별이 되신 고인의 명복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4일 임 소방장의 빈소인 제주시 부민장례식장을 찾아 유가족을 위로한 뒤 “제복을 입고 일하는 젊은이들에게 최선의 대우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애도가 이어지지만, 되풀이되는 소방관들의 희생에 짚어볼 것이 한둘이 아니다.

임 소방장은 구급대원이었다. 그런 그가 불을 끄기 위해 화마 속으로 뛰어들었고, 그러다가 사고를 당했다.

서울이나 대도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소방대원들은 입을 모은다.

구조대원이 화재 진압에 투입되는 일은 있어도 구급대원의 화재진압 참여는 일부 지자체에서만 용인되는 일이라고 한다.

여기서 마주하는 게 인력 문제다. 인력이 없으니 구조나 구급대원도 사고 유형을 가리지 않고 투입되는 것이다.

임 소방장도 그런 케이스였다. 불이 났다는 소식에 구급대원이 현장에 출동해 사람도 구하고, 화재진압 활동도 벌였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4일 오전 제주도의 한 감귤창고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던 중 순직한 고(故) 임성철 소방장의 장례식장을 찾아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행안부 제공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4일 오전 제주도의 한 감귤창고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던 중 순직한 고(故) 임성철 소방장의 장례식장을 찾아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행안부 제공

현장에서 활동하는 한 소방관은 “화재 진압대원도 한 일주일만 손을 놓으면 화재현장에서 손이 서툰데 구급대원이 화재현장에 투입될 경우 더할 것이다”며 “인력이 없다 보니 구급대원도 화재 진압에 동원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방대원은 “구급차 안에 화재진압복이나 비치돼 있었는지 모르겠다”면서 “이번 임 소방장 순직을 계기로 현장 대응에 문제는 없었는지, 나아가 제도적·인력 충원 등의 문제는 없는지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소방관이 희생될 때마다 정치권이나 소방당국 모두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만, 희생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조사팀을 꾸려 조사를 하고 제도개선을 하지만, 사고 때마다 빈틈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책임지는 사람도 없이 흐지부지되는 것 또한 현실이다.

매뉴얼이 없으면 만들고, 매뉴얼이 있는데도 지켜지지 않는다면 지휘계통을 가려서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대책만 만들고, 안 지켜져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면 제1, 제2의 성공일·임성철 소방관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임 소방장의 영결식은 5일 오전 10시 제주시 한라체육관에서 제주도청장(葬)으로 엄수된다. 삼가 임성철 소방장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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