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인의 좌충우돌 사회적응기(29)

가로세로 하얀 묘비들이 열병하는 대오처럼

한 치 흐트러짐 없이 늘어서 있는 현충원에 섰다 (중략)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이슬같이 죽겠노라던 독립군과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나가자던 용사들의 노랫소리

귓가를 맴돌다 뜨거운 유월의 태양 속으로 사라졌다

‘현충원에서’, 시집 《지금 너를 마중 나간다》(2021년) 중에서 -

이서인 시인(여자 정훈장교 1기)
이서인 시인(여자 정훈장교 1기)

73년을 기다려온 호국의 형제

지난주에 국립현충원을 방문하여 호국영령들을 추모하였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앞두고 재향군인회 여성회의 일원으로 참배를 하러 갔는데 예상외로 많은 단체 참배객들로 인해 현충탑 앞이 붐비고 있었다. 그동안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단체 방문이 제한되었다가 해제되어서인지 우리도 10분의 짧은 시간을 허용받아 참배를 마칠 수 있었다. 참배 후 현충원을 한 바퀴 돌아보며 이 많은 영령들이 왜 이곳에 잠들어 있는지를 되새겨보게 되었다.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은 6·25전쟁에서 전사한 고(故) 김봉학 육군 일병의 유해를 안장하는 ‘호국의 형제’ 안장식에 참석했다. 대통령의 안장식 참석은 2011년 6월 6일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 12년 만이라고 한다. 

고인은 1951년 9월 국군 5사단과 미군 2사단이 힘을 합해 북한군 2개 사단을 크게 격퇴한 전투인 강원도 양구군 ‘피의 능선’ 전투에서 전사했다. 2011년 유해가 처음 발굴된 후 12년 만인 올해 2월 유가족 DNA 검사를 통해 신원이 확인됐으니 참으로 오랫동안 가족과의 만남을 기다려온 셈이다. 

고인은 1950년 12월 38도선 일대를 방어하는 춘천 부근 전투에서 전사한 동생인 고 김성학 육군 일병 묘역에 합동 안장됨으로써 두 형제가 6·25전쟁에 참전한 지 73년 만에 유해로 상봉하게 되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6·25 남침전쟁은 결코 잊혀진 전쟁이 아니다. 목숨 바쳐 조국을 수호한 호국영령들 덕분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보훈해야 할 부채이다.

죽어서도 전우와 함께 

고 채명신 예비역 중장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혁혁한 전공으로 태극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등의 훈장을 받을 정도로 무공을 세운 전쟁영웅이었다. 지난 2013년에 별세한 채명신 장군의 유해는 8평 규모의 장군 묘역 대신 1평 사병 묘역에 안장된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그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그의 측근에서 보좌를 했던 정재성씨는 이렇게 말했다. “채명신 장군님은 생전에 국립묘지를 참배하며 내가 월남사령관을 하는 동안 많은 장교와 사병들이 5000여 명 넘게 전사했다. 나는 목숨을 부지했는데 이 친구들은 여기에 묻혀 있다. 내가 죽으면 여기 전우들하고 같이 묻혀야 되겠다.” 그는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전우들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고 그 유언이 실현된 것이다. 

또한 2003년 PKO 파병 장병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면서 베트남전의 경험을 언급했는데 당시 대민작전을 나가면서 부하들에게 강조한 얘기가 “베트콩 100명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전하면서 한국군의 이런 자세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살아서는 전쟁영웅으로, 죽어서는 참군인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된 그의 영전에 마음속 붉은 장미 한 송이를 바친다.

70년을 이어온 ‘같이 갑시다’

우리나라에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있는 외국군 묘지가 있다. 유엔사령부는 지난 6월 1일, 공식 SNS 계정에 유엔군묘지 조성 당시 풍경과 70년 이상 지난 오늘의 모습을 나란히 보여주는 사진들을 게시했다. 아울러 “1955년 12월 15일 유엔총회에서 통과된 결의안 977호에 따라 한국에서 유엔의 깃발 아래 싸운 전몰장병들을 기리는 기념묘지가 부산에 조성되었다”며 “이렇게 조성된 한국의 재한유엔기념공원은 세계에서 유일한 유엔군 기념묘지”라고 밝혔다.

재한유엔기념공원에는 1950년 6·25 전쟁 때 유엔의 깃발 아래 뭉친 해외 참전용사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전사한 11개국 장병 2300여 명의 유해가 잠들어 있다. 기념공원에 안장된 전사자 중 영국(890명)이 가장 많고 튀르키예(462명), 캐나다(312명), 호주(281명), 네덜란드(122명), 프랑스(47명), 미국(40명) 등 순서다. 6·25전쟁에서 3만 6000여 명이 전사한 미국 출신 참전용사 유해가 적은 것은 전사자 유해는 고국으로 운구해 장례를 치르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미국 행정부 방침 때문이라고 한다.

올해는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통해 성립한 한·미동맹 70주년이기도 하다. 밴 플리트(James Alward Van Fleet, 1892~1992) 장군은 6·25전쟁 중 유엔지상군 사령관 겸 미8군 사령관이었다. 자신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제임스 밴 플리트 2세(James Van Fleet Jr, 1925-1952) 대위는 한국전쟁에서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실종·전사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과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밴 플리트 부자가 보였던 노블레스 오블리제와 한국에 대한 헌신을 되새기며 현충일을 맞이하여 1분의 사이렌이 울리는 동안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그들을 잊지않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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