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인의 좌충우돌 사회적응기(26)

이서인 시인(여자 정훈장교 1기)
이서인 시인(여자 정훈장교 1기)

서울을 떠나 경기 구리시 갈매지구로 삶의 터전을 옮긴 지도 2년 반의 시간이 흘러갔다. 약 1만여 가구가 살고 있는 갈매동은 코로나19 시대에 피난처와 같은 곳이었다.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멀리 나가지 않고서도 이른바 슬세권(슬리퍼와 같은 편한 복장으로 카페나 편의점, 도서관, 쇼핑몰 같은 편의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 주거 권역을 뜻함)을 누릴 수 있는 기반 시설을 갖춘 곳이라 일상 생활을 누리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다시 용산으로의 회귀를 계획하고 있다. 

돈이 그렇게 많냐구? 아니 오히려 돈이 부족해서다. 아들과의 두 집 살림을 청산하고 당분간 불편한 동거를 결심하게 된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연금은 도깨비 방망이인가 

공무원연금을 받기 시작한 지 올해로 5년 차가 되어간다. 첫 연금을 수령 할 당시 공무원연금은 5년간 동결이 확정된 상태라 연금받기 이전 3년과 이후 2년 동안 거의 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올해 처음으로 5.1% 물가상승분이 반영된 연금 인상이 이루어진 것이다. 

지난 1월 23일 자 모 일간지에 실린 뉴스 중 일부 내용이다.

“국민연금 수령액이 올해 5.1% 올랐다. 납입액수나 납입기금과 무관하다. 국민연금을 받고 있던 수령자 전원이 5.1% 오른 만큼을 지급받는다. 지난해 연간 물가상승률(5.1%)을 그대로 국민연금 지급액 인상으로 반영하면서다. 

이에 따라 지난해 월 100만원을 받던 국민연금 수급자의 월 수령액은 올해 1월부터 5만 1000원 오른 105만 1000원씩을 연금으로 매달 받는다. 국민연금제도는 노후소득 보장을 목적으로 도입된 만큼 물가상승을 매년 반영해 연금의 실질 가치를 보장한다.” 

“공무원연금·사학연금 등 공적연금도 물가와 연동해 수급액이 늘어나는 구조다.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가파른 물가 상승이 연금 곳간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연금 고갈 시기는 앞당겨질 전망이다. 인플레이션의 여파가 국민연금뿐 아니라 공적연금과 정부 재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결국, 이 기사 또한 연일 쏟아지는 언론의 내용처럼 각종 연금을 개혁할 수밖에 없다는 기조를 포함하고 있다. 연금을 처음 수령할 때만 해도 노후를 보장받는 도깨비 방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 두드리면 나오는 대박 보따리는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매년 쪼그라들고 있다. 각종 세금과 생활비가 그 이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의 미래를 위해  

아들이 자유로운 오피스텔 생활을 마감하고 부모와의 동거를 결심한 배경에는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서울로 직장을 옮기면서 내가 살고있는 경기도에서는 출퇴근이 멀기도 하고 이미 독립된 생활을 하던 터라 청년 안심대출을 신청하여 투룸 오피스텔을 마련했다. 2년 전에는 은행 대출금리가 비교적 저렴하여 월세보다는 전세로 사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2년이 지난 지금 은행 대출금리는 득달같이 올라 처음보다 60%나 상승하여, 한 달 이자가 100만 원이 넘게 되었다. 이른바 현실의 무게에 치여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는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머리를 맞대고 상의한 결과 집값이 떨어지고 있는 이즈음에 두 집 전세금의 총량적 금액을 줄여서 한집으로 합가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이후 부동산에 연락을 하고 발품도 열심히 판 결과 아들 직장과 가까운 곳에 시세보다 저렴하게 나온 전셋집을 계약하고 이제 이사를 앞두고 있다. 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우선적으로 엄청나게 오른 주택대출 이자는 물론, 매달 나오는 관리비며 주차비, 교통비, 식비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같이 살게 되면 나 역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연금 생활자인 지금의 입장에서 아들의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셰어하우스의 삶 

아들과의 불편한 동거를 앞두고 우리는 어떻게 하면 불편한 점을 줄일지 고민해 보았다. 성인이 된 아들하고 같이 사는 것은 예전과는 다른 방식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이미 독립생활을 유지한 지 5년이 되었고 나 또한 퇴직 후 삶의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아침형 인간에서 저녁 형 인간으로 변하다 보니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과 하루의 일상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우리는 가족이지만 셰어하우스 삶의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셰어하우스는 다수가 한집에서 살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인 침실은 각자 따로 사용하지만 거실, 화장실, 욕실 등은 공유하는 생활방식을 말한다. 다행히 우리 집은 화장실과 욕실이 두 개라 결국 거실과 주방, 옷방을 공유하고 각자의 사생활에는 최대한 간섭을 하지 않기로 했다.

아들은 늦으막하게 일어나 브런치로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일상을 침해하지 않고 스스로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다. 나는 아들의 퇴근 이후의 삶을 존중하기로 했다. 업무상 다른 사람도 만나야 되고 여자 친구도 사귀어서 진짜 독립된 가족을 이루려면 그것이 지름길 인 것 같다.  당분 간 ‘각자도생’이 아닌 ‘따로 또 같이’ 잘살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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