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기의 일본 리포트’

일본 최고의 명문 도쿄대학생들의 관료 기피가 지속되고 있다. 중앙 부처의 간부 후보가 되는 국가공무원 종합직 시험의 지난해 합격자 가운데 도쿄대 출신은 249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2015년도 459명과 비교하면 200명 이상 줄었다. 지금의 도쿄대생의 눈에 ‘가스미가세키’(霞が関·중앙 부처가 몰려 있는 도쿄 시내의 지명·한국으로 치면 과거는 광화문, 지금은 세종시)는 어떻게 비치는 것인가. 일본 아사히신문 지난 16일자에 특집기사가 게재됐다. 한국과 다른 점도 있지만, 같은 점도 적지 않다. 사회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관료직의 미래비전 부재, 관료사회의 시대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일하는 방식이 기피의 이유였다. 이점에서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시사점이 있어서 이를 소개한다.

일본 도쿄의 주요 부처들이 몰려 있는 일명 '가스미가세키'. 공생공사닷컴DB
일본 도쿄의 주요 부처들이 몰려 있는 일명 '가스미가세키'. 공생공사닷컴DB

근로환경은 악덕기업 수준… 보수는 그저 그런 관료직

“취업을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관료는 아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도쿄대 4년생 야마다 히로토(21)씨의 얘기다. 그는 2년 전만 해도 장래의 꿈은 관료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외국계 컨설팅 회사다. 그에게 국가공무원은 근로환경은 악덕기업 수준이고 월급도 별로라는 인식이다. 같은 대학 동아리 출신으로 관료가 된 선배는 “(관료가) 되려면 각오하라”고 말했다. 그 선배의 지친 표정이 머릿속에 남았다고 한다.

뉴스를 접하면서 강해진 느낌은 (관료가) ‘정치인의 의향이나 부정에 휘말려 언론 비판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재무성의 공문서 조작을 둘러싸고, 지방 재무국 직원이 자살한 것도 쇼크였다.

“이상한 일이 있어도 상사 명령을 거역할 수 없고, 조직의 자정 작용도 없다”는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 있는 관료사회를 보면서 야마다는 “도저히 적응 못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야마다는 졸업 후 진로 가운데 하나로 기업 등의 성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후생노동성 등에서 일하는 것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가공무원보다는 컨설팅 기업에서 여러 기업의 근로 방식을 개선하는 게 사회 변화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국가종합직 합격자 도쿄대 출신 14.5%로 낮아져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에서는 관료들이 사회를 움직이는 큰 역할을 해왔다.

메이지 유신 뒤의 ‘부국강병’과 ‘식산흥업’, 패전 후의 부흥과 고도경제성장. 이런 방향을 잡은 관료들의 인재 공급원이 도쿄대였다. 도쿄대 출신으로 재무관료 출신의 사학자인 하타 이쿠히코가 쓴 ‘관료의 연구’에 이런 숫자가 있다.

1894년부터 1947년까지 관료가 되기 위한 고등문관시험 행정과 합격자 9565명 가운데 도쿄대학(동경제대) 출신자는 5969명으로 전체의 60%를 넘는 압도적 숫자였다.

타 대학 출신도 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중앙 부처에서 관료로 올라갈 수 있는 최고 직위인 사무차관 13명 가운데 도쿄대 출신이 11명이나 된다. 사무차관 13명은 모두 남성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다. 국가공무원 종합직의 합격자 가운데 도쿄대 출신자는 2020년도 249명으로 줄었다. 전체 합격자에서 도쿄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14·5%로 떨어졌다.

“격무인데도 일하는 방식 개혁이 진행되지 않는다. 관료가 되려면 전쟁터로 가는 패기가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도쿄대학의 석사과정을 휴학하고 보도 관련 벤처 기업에서 일하는 에토 다케루(23)의 지적이다. 학보사인 ‘도쿄대 신문’에서는 취업활동 기사를 담당했다.

같은 편집부 멤버인 도쿄대 4학년 다카하시 유키(22)는 관료를 기피하는 원인을 ‘학생들의 높은 위기의식’ 때문으로 본다.

젊은 세대 일본 미래에 불안감… 젊어서 돈 벌자

“젊은 세대에게는 ‘앞으로 일본은 떨어져 갈(내리막길) 뿐’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이로 인해 연공서열로 월급이 올라가는 안정적인 모델을 믿지 못하고 젊어서부터 돈을 벌려고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난해 9월의 ‘도쿄대 신문’과 웹미디어 ‘News Picks’가 도쿄대 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한 앙케트에서도 이런 경향을 엿볼 수 있다.

가장 선호하는 분야로는 ‘IT·통신’이 16·7%로 1위였다. 특징적인 것이 ‘컨설팅·싱크탱크’가 16·2%로 2위를 차지한 점이다. 과거 인기가 있던 언론·광고(13·6%), 금융·증권(11·6%)을 앞질렀다.

빨리 기술을 익혀 조직에 의지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안정 지향’ 성향이 늘어나면서 실력에 따라 고수입을 바라볼 수 있는 외국계 컨설팅 등 민간기업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도쿄대생의 선택지에서 점점 멀어지는 관료직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거나 ‘사회에 공헌하고 싶다’는 도쿄대생을 품어줄 가스미가세키 선택은 점점 어려워지고(줄어들고) 있다고 두 사람은 보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코로나19를 비롯해 인구 감소 등 난제가 산적해 있다. 이런 문제를 풀 정부의 담당자를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젊은 관료 그룹 ‘미래의 가스미가세키’ 회원 2명이 취재에 응해줬다.

이들은 지난해 가을부터 관료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거나 더 나은 조직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쁜 나날 속에 이런 활동을 왜 시작했는가.

후생노동성에 들어간 지 4년째인 호리 슌타로(25)는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국가공무원이 됐는데 뜻하지 않게 휴직·퇴직하는 직원을 보고 몹시 놀랐다”고 말했다.

내각 인사국에 따르면 2019년도 20대 종합직 가운데 일신상의 이유로 퇴직한 사람은 86명으로, 6년 전의 4배 이상으로 늘었다. 장시간 노동에 의해 심신이 피폐해지고, 일에 보람이 적다거나, 성장에 대한 불안감 등이 원인으로 보여진다.

‘미래의 가스미가세키’ 회원들은 이대로는 사회적 손실이 된다고 보고 젊은 직원이 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불필요한 업무의 폐지나 외주와 같은 효율화, 관리직의 매니지먼트 개선 등을 제언으로 정리해 2회에 걸쳐 고노 다로 행정개혁장관에게 제출했다.

“회의·서류·야근 줄이자”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우수인재 U턴

예를 들어 국회 답변 시 자료의 전자화나 같은 과제를 중복해서 다루는 정부 회의의 재검토 등이다. 문부과학성의 다구치 아스카(26)는 직장에서 야근 시간을 줄이려는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며 비는 시간에 공부를 하게 됨으로써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호리나 다구치 모두 도쿄대 출신이다. 국가공무원을 목표로 하는 후배가 줄어들고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다구치는 “도쿄대생도 다양화하고 있어 비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정책에 관심 있는 사람이 다른 데 가는 것은 아깝다. 그런 만큼 가스미가세키와 기업을 오가는 유연한 루트도 더 넓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호리는 취업활동 때 외국계 컨설팅 기업에도 합격했지만, 후생노동성을 선택했다. 의료보험이나 코로나 대응 같은 중요한 일도 경험했다.

그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세상을 위해 굉장히 큰 과제에 머리를 쓰는 일에 보람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고 강조한다.

올해 국가공무원 종합직 합격자는 21일 발표된다. 4월에 발표된 응시자는 1만 4310명으로, 전년도보다 14·5% 줄었다. 출신 대학이 어떻든 우수한 젊은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스미가세키의 일하는 방법을 지속 가능한 것으로 바꾸는 수밖에 없다.

번역정리=황성기 자문위원(서울신문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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