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조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자문위원 

최영조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
최영조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자문위원

소통에서 중요한 부분의 하나가 용어에 대한 합의된 이해다. 우리가 외국어를 오랫동안 공부했어도 원어민과 원활한 대화가 쉽지 않은 이유는 서로 사용하는 언어를 구성하는 단어의 뜻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적 배경 탓에 사전적으로 같은 단어라도 맥락과 상황이 달라지면 전혀 엉뚱한 개념으로 이해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현상은 비단 같은 나라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나타날 수 있다. 각기 다른 조직이 성장해온 역사 속에서 고유한 언어가 탄생하고, 같은 용어이지만, 다른 조직이나 대중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그것과 차이가 있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특정 의미를 규정하는 용어의 적절한 선택이 중요하고, 용어에 대한 올바른 개념 정의는 꼭 필요하다. 사회적 반향이 클 수 있는 법과 제도를 구성하는 용어의 선택에는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하고, 정책의 영향을 받는 집단은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무원연금의 충당부채는 빚?
 
서론이 길었다. 공무원연금 충당부채를 둘러싼 오해를 살펴보면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갈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이 문제가 용어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를 그대로 담고 있고, 논의의 장에서도 투영되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 충당부채는 ‘부채’란 용어를 누가, 어떻게 사용하고 있고, 실체는 무엇인가를 알면 해묵은 오해의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낼 수 있고, 공무원연금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시각을 정립할 수 있다.

부채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진 빚으로, 갚아야 할 금전상의 의무에 해당한다. 그러면 공무원연금의 충당부채가 갚아야 할 금전상의 의무에 해당하는가. 결론은 아니다.

공무원연금 충당부채는 향후 77년 동안 소요되는 지출규모를 보여주는 개념으로 여기에는 공무원이 내는 기여금과 사용자인 정부가 내는 부담금을 포함하고 있다.

이른바 공무원연금 충당부채의 구성
이른바 공무원연금 충당부채의 구성

결론적으로 공무원이 내는 기여금과 사용자인 정부가 내는 분담금은 법률적 의무비용으로 빚이 아니다. 국민연금도 마찬가지로 노동자가 내는 기여금과 사용자가 내는 부담금으로 구성되지만 이를 빚이라 하지 않는 것과 같은 구조인 것이다.

부채가 만든 공무원연금의 부정적 이미지
 
이런 인식의 연쇄작용은 공무원연금 충당부채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충당부채라는 용어 자체도 문제이지만, 정부의 재정상태표에 충당부채는 자산, 부채, 순자산 중 부채에 포함되도록 했기 때문이다.

회계 기준에 맞춘 결과이고, 이는 공무원연금에 대한 엄청난 오해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이는 공무원연금이 가진 특수성에 기인한 것으로 일반적인 부채가 가진 부정적 이미지를 덧칠해 개혁의 대상인 것처럼 비난해서는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게 된다.
 
변화는 제대로 된 이름짓기부터
 
공무원연금은 공무원이 매달 내는 기여금과 정부가 책임지는 부담금 등 연금수입으로 기금이 마련된다.

이렇게 연금 수급자인 공무원과 사용자인 정부가 함께 형성한 기금에서 지급하는 공무원연금을 마치 정부가 단독으로 빚을 내서 충당하는 것처럼 잘못 인식되어 있다. 공무원연금 충당부채라는 잘못된 용어의 규정으로 불필요한 논란은 지속됐다.

잘못된 용어의 사용과 이로 인한 공무원연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로 이득을 얻는 곳은 누구인가.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과 통합하자는 이상한 논리를 펴서 이득을 얻거나, 공적연금을 해체하여 민간 보험·연금으로 대체하길 원하는 집단일 것이다.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장적 성격이 아닌, 인사상 목적으로 도입된 공무원연금의 특수성을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은 집단일 것이다. 이들의 주장과 논리에 함몰되어선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금제도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어떠한 논의도 제대로 될 수가 없다. 그들에게는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늘 그랬듯이 4월 중으로 국가결산보고가 나올 것이고, 단골 메뉴인 공무원연금 충당부채 문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반복되는 ‘충당부채’ 이야기는 그만 듣고 싶다.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 미국의 작가 리베카 솔닛은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에서 “모든 것을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일이 세상을 바꾸는 핵심 작업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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