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거사 안정훈의 아날로그 세계일주(11) 북유럽, 발트, 발칸 반도 여행(하)

작아도 너무 작은 인어 공주상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인어 공주상이 워낙 유명해서 꼭 가보기로 했다. 시내 도보 투어가 끝나고 가이드에게 가는 길을 물었더니 자기가 동행해주겠다고 해서 수채화 같이 예쁜 뉘하운 항구에서 부터 강을 따라 꽤나 먼 거리를 걸어서 갔다.

중간 중간에 벽화나 동상들을 감상하고 강 위로 떠올라서 가는 작은 잠수정도 구경하면서 가다보니 관광버스가 줄지어 서있는 광장과 공원이 나왔다. 어린 시절 안데르센 동화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보고 싶어하니 일년 내내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이 넘쳤다.

그런데 웬걸 주변의 광장이나 공원 그리고 부대 시설들은 엄청나게 넓고 큰데 인어공주상은 너무 작았다. 몇 년 전 유럽 여행 때 브루셀에서 보았던 귀여울 정도로 작은 오줌싸개 소년 청동상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도 인어 공주상은 높이가 불과 70센티인 오줌싸개 동상 보다는 좀 큰 것 같다.

생각보다 작은 코펜하겐의 인어상
생각보다 작은 코펜하겐의 인어상

노트북을 잃어 버리다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냐에서 대형 캐리어를 끌고 가슴에는 카메라를 메고 한쪽 어깨에는 노트북을 메고 시내 버스를 탔다. 구글맵을 들여다 보다가 내릴 정거장인 걸 알고 놀라서 급하게 뛰쳐 내렸다. 내려서 보니 뭔가 허전했다. 노트북을 의자 옆에 두고 내린 것이다. 놀라서 저만치 가는 버스를 불러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택시라도 잡아타고 쫓아가보려고 했지만 택시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버스 회사에도 찾아가서 알아봤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여행 시작하고 첫 번째 대형 분실사고였지만 의외로 빨리 포기하고 잊어 버렸다. 무거운 짐 하나 덜었다고 위안 삼았다.

라트비아 리가의 오토캠핑장의 통나무주택
라트비아 리가의 오토캠핑장의 통나무주택

아직도 러시아를 두려워하는 발트 3국은 예뻤다

발트 3국은 1991년에 러시아로부터 독립했지만 지금도 러시아가 다시 합병을 시도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면서 불안감이 더 높아졌다. 실제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마음만 먹으면 3일이면 발트3국을 점령할 수 있다고 위협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세 나라 모두 나토(NATO)에 가입해서 친유럽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도시 분위기와 사람들의 복장이나 행동도 러시아 보다는 유럽풍이 훨씬 더 강했다.

발트 3국의 첫 번째 나라인 에스토니아에서부터는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우선 슈퍼마켓의 물가가 싸서 갑자기 부자가 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매일 장을 봐와서 고기 굽고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실컷 먹었다. 발트는 특별히 볼 것은 없지만 도시와 자연이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머무는 동안 여유롭게 즐겼다.

벨로루시의 민스크는 화려했다

‘벨라루스는 여행 성수기가 없고 항상 비수기라서 북적대는 사람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외국 여행자들이 적었다. 2017년 전반기까지는 비자가 없으면 갈 수 없는 나라였다. 나는 비자 때문에 벨라루스를 건너 뛸 생각이었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을 하다보니 얼마 전부터 비행기를 이용해 민스크 공항으로 입국하는 경우에 한해 도착 비자를 발급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급하게 비행기 표를 발권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8년 7월부터는 무비자로 바뀌었으니 내가 과도기에 간 셈이다.

벨라루스는 공산당의 영향력이 강해서 건물과 광장에 레닌 동상이나 초상들이 많이 걸려 있었지만 의외로 수도인 민스크의 분위기는 화려하고 생동감이 넘쳤다.

운 좋게 5개국에서 온 여행자들과 어울려 벨라루스의 낮과 밤을 즐겼고, 하루는 차를 빌려 올드캐슬에 가서 제대로 역사와 문화를 즐겼다.

김일성과 평양을 모델로 삼았다가 폭망한 루마니아 공산당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 번화가의 밤은 우리나라의 강남을 뺨 칠 정도로 화려했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건물에 한국 가전회사의 광고탑이 우뚝 세워진 걸 보면서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티 투어를 하다보면 루마니아의 공산당 독재를 무너뜨린 혁명의 현장을 주로 안내했다.

독재자 차우세스쿠는 북한의 김일성과 평양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북한을 방문하고 와서 우상화와 주석궁을 베낀 거대한 건축 공사를 추진 하다가 망했다. 특이한 공산주의의 너무나 다른 과거와 현재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부쿠레슈티에서는 몰도바에서 장박하면서 만났던 영국 청년을 다시 만나서 함께 다녔다. 브라쇼브에서는 마침 축제가 열리고 있어서 제대로 민속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벨라루스 현지 가이드와 함께 올드캐슬에서 필자
벨라루스 현지 가이드와 함께 올드캐슬에서 필자

불가리아 써니 비치에서 게으름의 행복을 누리다.

발칸 반도의 마지막 여행지는 불가리아의 써니 비치였다. 이름도 생소한 써니 비치를 가게 된 것은 알바니아에서 만난 영국 노인 여행자의 추천 때문이었다. 그는 156개국을 여행한 베테랑 여행자였다.

그에게 여행하면서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써니 비치를 가보라고 했다. 어째서 좋으냐고 물으니 ‘게으름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게으름의 행복이라는 말에 묘하게 끌려서 불가리아의 소피아를 보고 나서 바로 버스를 타고 흑해 연안에 있는 부르가스로 갔다. 거기서 하루밤을 자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써니 비치를 찾아 갔다.

써니 비치는 불가리아 최대의 휴양지고 6월에서 8월은 성수기여서 비수기 보다 각종 물가와 요금이 배 이상 비싸다. 그래도 EU국가들 보다는 훨씬 싸기 때문에 서유럽에서 휴가를 오는 관광객들이 넘쳤다. 하얀 백사장과 수영복만 입은 채 길거리를 활보하는 유럽인들은 보니 확실히 휴양지 기분이 났다.

나는 영국 베테랑 여행자가 가르쳐 준 호텔을 찾아갔다. 내가 간 7월은 성수기라서 모든게 비쌌지만 그 호텔은 하룻에 10유로라는 저렴한 요금이었다. 역시 노련한 여행고수의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됐다. 호텔은 지은지는 좀 오래된 단층 건물이었지만 깨끗한데다가 마당이 넓고 바다가 가까워서 마음에 들었다.

나는 써니 비치에서 일주일을 멍때리며 보냈다. 일출과 일몰 때 바닷가 모래사장을 산책하는게 유일한 낙이었다. 방의 창문과 출입문을 열면 바다와 정원이 통해서 시원한 맞바람이 불어와 선풍기도 필요 없을 정도였다. 게으른 시간을 보냈지만 떠나기가 싫었다. 멋진 비치라기 보다는 편안한 비치였다. 인도의 고아주에 있는 아람볼 비치와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 해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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