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두라고 직·간접 압박에 샌드위치되기도
행안부 내 선후배 경쟁 치열, ‘욱’하고 사표도

행안부와 서울시 등을 제외한 전국 각 시도는 인사교류를 한다. 이 중 부단체장은 꽃이지만, 애환도 많다. 공생공사닷컴 그래픽
행안부와 서울시 등을 제외한 전국 각 시도는 인사교류를 한다. 이 중 부단체장은 꽃이지만, 애환도 많다. 공생공사닷컴 그래픽

얼마 전 한 광역자치단체의 간부회의 자리. 시장이 재난지원금 등 예산 상황을 논의하다가 부시장을 질타한다.

“예산이 몇 십억원도 아니고 몇 백억원이 모자란 데 부시장은 뭐 하는 겁니까.”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던 부단체장은 이내 사의를 표명한다. 발표는 ‘후배들의 길을 터주기 위한 용퇴’였다. 그러면서 “평소 공직 30년하고 은퇴할 생각이었다”는 부단체장의 얘기까지 곁들였다.

그 부단체장이 실제로 그런 얘기를 하고, 용인을 했으니 그런 발표가 나왔겠지만, 해당 지자체와 행정안전부 안팎에서는 “아마 시장이 부시장을 바꾸고 싶었던 모양이었다”는 얘기가 돌았다.

바꾸고 싶은 단체장의 다양한 시그널

하지만, “사실이라면 방식은 고약했다”는 얘기도 뒤따랐다. 예산 문제는 기조실장 몫인데 예산을 이유로 부시장을 깬 것은 과했다는 것이다.

결국, 평소 자존심이 강하기로 소문난 그 부시장은 미련없이 사표를 던졌고, 최근 후임자가 부임했다.

직제상으로는 두 번째 자리지만, 부단체장은 그 화려한 겉과 달리 그림자도 짙다.

너무 튀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매일 노는 사람으로 비쳐져서도 안 된다. 오래 머물러 있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1년쯤 돼가면 방 뺄 준비를 해야 한다.

면박 혹은 행안부에 교체 요구도

최근 한 지자체에서도 도지사가 행안부에 부단체장을 교체해달라는 요구를 두 번이나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그 부단체장이 다음 자리가 정해질 때까지는 옮길 수 없다고 버티면서 곤란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부단체장 입장에서는 아직 정년이 한참 남았는데 갈 자리도 정하지 않고 공중에 뜰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행안부 1급 실장 자리는 차관이 바뀌어야 연쇄 이동으로 틈이 생기는데 풍문에 8월쯤이나 가능하다고 하니 그때까지 버티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본부에서는 실장급으로 받아줄 것 같지도 않다는 게 안팎의 전언이다.

꿋꿋하게 버텨 본부 입성한 부지사도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그 부단체장은 외청이나 산하기관 1급 자리라도 가고 싶지만, 경쟁이 치열하다. 이래저래 해당 부지사는 좌불안석이다. 도지사는 물론이고 직원들 보기도 민망할 뿐이다.

물론 이렇게 버티다가 행안부 본부로 들어온 경우도 있다.

영남권 광역지자체의 한 부단체장은 지난해 행안부 내에 도지사가 이미 점 찍어둔 부지사감이 있어서 자리를 비워주기 원했지만, 못 들은 척하고 견뎌냈다.

한 때 총선 출마도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공천도 자신이 없고 아직 공직에 대한 미련이 적지 않았다. 개의치 않고 꿋꿋이 버티다가 행안부 실장 자리를 꿰차고 들어왔다. 인내의 결실을 본 것이다.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은 특별한 경우다.

경력 관리 자리…후배들 줄줄이 대기

그 역시 행안부 출신 간부 가운데 정치를 할 가능성이 있는 간부로 몇 손가락 안에 꼽혔지만, 올 총선은 저울질하다가 지나갔다.

하지만,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행 문제로 낙마하면서 권한대행을 맡았다. 만약 권한대행을 맡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본부에 자리는 없는지 알아보려고 동분서주했을 것이다.

그는 지금 권한대행으로서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보궐선거 출마설도 나돈다. 결과를 떠나 나쁘지 않은 케이스로 꼽힌다.

서울특별시를 제외한 광역지자체 부단체장 자리는 행안부가 임명하고, 1년 남짓하면 바뀌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 과정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행안부가 보내려는 인사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지자체장이 계속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힘센 단체장 행안부와 밀당도

아무리 행안부가 임명하던 관행이 있다지만, 정치권에 힘이 있는 지자체장은 이를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인사를 받기도 한다.

지난해 충청권의 한 지자체는 부지사 자리를 놓고 행안부와 밀당을 했다. “받아라.” “못 받겠다.” 이로 인해 인사가 한참 지연됐고, 결국은 지자체장이 이겼다.

행안부는 지자체장의 선호도를 떠나 되도록이면 기수 순으로 내려 보내고 싶어한다. 그래야 본부 인사가 꼬이지 않고, 적체가 어느 정도 해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지자체장은 이미 부단체장으로 점 찍어 둔 인사가 있다.
지자체를 관할하는 행안부의 업무 특성상 행안부와 지자체는 인사교류가 빈번하고, 이미 정례화돼 있다.

이미 사무관 때 행안부로 올라오는 경우도 있고, 이들이 성장해서 지자체 국장급이나 기조실장으로 내려가기도 한다. 물론 이 경우 지자체에서 간부 하나는 행안부나 산하기관으로 들어온다.

이런 과정에서 지자체장과 ‘합’이 맞는 간부가 형성된다. 지자체장이 이런 간부를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 지자체 직원들도 행안부에서 내려온 간부에 대한 평판이 형성된다.

부임할 때 떠날 채비해야 하는 자리

그럼에도 행안부는 기수를 중시한다. 그래서 서로 밀당을 거쳐서 원만히 해결하곤 한다.

그런데 원만히 해결이 안 되면 많은 사람이 속이 탄다. 자리를 비워주어야 하는 좌불안석 부단체장도 그렇고, 행안부에서 부단체장으로 내려가려고 기다리고 있는 후배도 속앓이를 한다.

이러다가 자신을 건너뛰고 다음 기수로 넘어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간부는 부단체장 이력을 달고 다음번 지자체 선거에 출마를 하려는데 선임자가 방을 빼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게다가 그의 뒤를 이어 내려가려고 기회를 엿보는 후배들도 적지 않다.

영남권 지자체의 부단체장으로 가 있는 한 간부는 “부단체장은 모든 것을 단체장에 맞춰야 한다. 단체장의 생각도 잘 읽고, 총대를 메고 일을 할 때는 하고, 공은 단체장에게 돌리고, 정치에 대한 생각이 있어도 드러내서는 안 된다”면서 “행안부에서 내려올 때 이미 다음 행보를 생각해야 하는 자리가 바로 부단체장이다”고 말했다.

김성곤 선임기자 gsgs@public2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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