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조 칼럼

최영조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
최영조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사회문제가 되어 국가 개입의 필요성이 높아지면 이 문제는 정부가 자원을 투입해서 해결해야 하는 정책문제가 된다.

정책문제가 해결되고, 사회가 안정을 되찾기 위해서는 정책문제에 적합한 정책수단의 선택이 필수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가장 신중해야 할 절차가 정책문제의 정의다.

정책문제의 정의는 말 그대로 ‘무엇이 문제인지 밝히는 것’인데 여기서 문제의 원인, 결과와 함께 둘 사이의 인과관계가 드러나게 된다.

정책문제의 정의가 갖는 이러한 특성상 주어진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가 부여된다. 정책문제가 어떻게 정의되는지에 따라 정책목표가 달라지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수단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진행될 정책과정의 우선순위가 이 과정에서 대부분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불과 두 달 전 당연했던 일상의 기억이 흐릿하다. 지금까지 이어온 사회 작동의 원리와 방식이 코로나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이 변화를 마주한 우리는 과연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하고 있을까. 결국, 정부의 정책, 국회의 입법 행위로 국가의 대응은 달라질 터인데, 그들은 정책문제를 제대로 정의하고 있을까.
 
코로나19 이후를 준비하는 바람직한 정책결정은?
 
코로나19를 어느 정도 극복하고, 미래를 설계할 때 세계 모든 정부는 현재 드러난 문제에 집중해서 정책문제를 정의하고, 정책목표를 설정하게 될 것이다.

공공의료시설과 인력·장비가 부족했던 나라는 여기에 예산을 집중시켜 의료공공성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은 물론이고, 국가 산업 역량에 따라 의료·바이오산업에 투자를 확대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재화의 생산방식과 국가 간 상호의존성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이와 같은 국가의 대응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문제의 원인에 조응하는 정책수단으로 거론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정치적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들이다.

세부 집행방식의 수준과 범위에서는 논쟁이 될 수 있지만, 의사결정의 흐름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 정도 수준의 대응만 가능해도 정부는 당분간 감염병 문제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정책문제를 갑자기 출현한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것에만 집중하여 정의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정책과정인지 의문이다. 미래에 발생할 또 다른 신종에도 이와 같은 대응 방식이 약효가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더욱 다양하고,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을 예상한다.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새롭게 정책문제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중국의 한 지역에서 우발적으로 돌출한 바이러스가 원인이라고 문제의 범위를 국한해서는 위험하다.

국가 정책이 새로운 바이러스, 박테리아 등 병원체가 일으킨 문제 치유에 집중하는 대증요법에 머물게 되고, 이 과정은 반복될 수도 있다.
 
인류를 위협할 새로운 바이러스
 
2015년 9월, 미국국립과학원은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3만년 전의 고대 바이러스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발생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2016년 8월, 시베리아 야말반도에서 12살 소년이 탄저균 감염으로 죽고, 주민들이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발생했다. 과학자들의 경고가 현실이 된 것이다.

2016년 여름 폭염으로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75만년 전 탄저균에 감염된 순록이 땅 위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주변의 물, 흙, 풀이 탄저균에 오염되고, 인근 마을 사람과 순록이 감염됐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수백만 마리의 순록, 천연두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이 시베리아에 묻혀 있다고 한다(오기출, 국제신문, 2020년 3월 31일). 

시베리아 영구동토층, 극지의 빙하는 21세기 인류에게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사람이 접근하여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그 심연에 존재하는 것들의 정확한 실체가 무엇인지, 그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잘 알지 못한다.

기후변화로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이 꿈틀대고, 그 안에 갇혀 있던 바이러스나 세균이 인간과 접촉했을 때 코로나19가 일으킨 지금의 혼란 정도에서 끝날지 알지 못한다.
 
기후변화, 환경·생태문제 해결 선행돼야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 2020년 코로나19를 겪은 21세기 인류가 바람직한 정책문제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후변화를 그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 기후변화는 지금까지 세계 경제를 이끌어온 석유·석탄 중심의 성장 논리의 결과다.

대규모 삼림파괴와 환경오염으로 그동안 인간과 단절됐던 자연 생태계가 접촉면을 넓히면서 실체를 드러낸 지카바이러스와 에볼라바이러스도 이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코로나19 이후의 미래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모든 국가가 기후변화를 포함한 환경·생태 영역까지 정책문제의 범위를 넓히는 건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인간이 이룩한 성장의 경로를 바꿔야 하고, 그로 인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이런 불편함을 극복하고, 국가의 범위를 넘어선 초국가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리더십도 기대하기 힘들다. 지금 준비하지 않은 미래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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