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6개월째 서울 시의회 홍보 최일선 맡은 조경익 언론홍보실장
해양대 출신으로 공무원 되기 전 외항선 타고 무역회사에도 근무
“3년만 외항선 더 탔으면 강남에 집 샀을 걸… 그래도 공직에 만족”
'기자들도 모르는 언론홍보 비밀' 저서 내고 블로거 활동도 ‘부지런’

조경익 서울시의회 언론홍보실장.                                                      서울시의회 제공
조경익 서울시의회 언론홍보실장.                                                      서울시의회 제공

"결국 공직자라는 자리를 종착역으로 삼았는데, 아무래도 완주하게 됐으니 다행이라고 해야겠죠."

조경익(57) 서울시의회 언론홍보실장은 29일 이렇게 말하며 살짝 웃었다. 그는 바다를 좋아해 해양대 항해과를 나와 해운업체를 다녔지만 오래지 않아 회의감을 느꼈고 무역회사로 옮긴 뒤에도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되뇐다.

대학을 졸업한 다음 해군 하사로 전역해 해운회사에 취업한 그는 1991년 2월부터 5만t급 자동차 운반선을 탔다. 당시 3등 항해사로 승용차 6000여 대를 싣고 유럽에서 내려주면 빈 배에 독일, 스웨덴 등에서 벤츠, BMW, 볼보 등 자동차를 다시 싣고 미국에서 하역하곤 했다.

다시 빈 배로 캐나다로 가서 고급 원목자재를 싣고 일본으로 돌아오기까지 꼬박 6개월이 걸렸다. 그렇게 한 번 바다로 나갔다 하면 지구를 두 바퀴를 돌았다.

1년을 바다 위에서 생활한 뒤 이듬해 3월 두 달쯤 달콤한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 이번엔 2등 항해사로 인천에서 미국 서부를 오가는 원목 운반선을 탔다.

그런데 오랜 세월 사방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수평선뿐인 승선생활에 지치고 말았다. 그는 두 번째 배를 타고 돌아와 사표를 던졌다.

지금 생각엔 "외항선을 3년쯤 더 탔으면 당시 강남에 아파트 한 채 살 수 있었는데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며 다시 웃었다.

조경익(가운데) 서울시의회 언론홍보실장이 윤호근(오른 쪽 두 번째) 팀장 등 직원들과 회의를 갖고 있다.                                                                                                                           서울시의회 제공
조경익(가운데) 서울시의회 언론홍보실장이 윤호근(오른 쪽 두 번째) 팀장 등 직원들과 회의를 갖고 있다.                                                                                                                           서울시의회 제공

두 번째 직장으로 1993년 서울에 있는 개인무역회사로 둥지를 옮겨 미국과 중국에서 빵의 원료가 되는 콩이나 팥을 수입하는 업무를 맡았으나 또 다시 안타깝게도 2년을 넘기지 못했다. 그는 "이젠 적잖은 나이라 좀 더 안정된 일을 찾아야겠다"며 마음가짐을 다잡았다고 되돌아봤다.

급기야 7급 공무원시험에 도전해 1996년 9월 기어코 뜻을 이뤘다. 조 실장은 요즘 시의회를 어떻게 하면 널리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시의회 홍보에 대한 책을 쓸까 하는 욕심도 생긴다고 귀띔한다.

조 실장은 서울시 대변인 소속 언론과에 3년째 재직하던 2011년 언론홍보 경험과 성공담, 실패학을 차곡차곡 톺아 ’기자들도 모르는 49가지 언론홍보 비밀’이라는 책을 펴낸 재간꾼이기도 하다. 언론계에 떠다니는 은어나 전문용어, 그것들에 얽히고 설킨 에피소드를 곁들여 그득한 흥미를 자아냈다.

당시 서울시 담당 신문기자에게 책 내용을 알려주고 상담을 자청했는데 뜻밖의 반응을 들었다. 기자는 원고 중 “외부에서 서울시장이 일을 안 한다고 야단을 치는데 그렇지 않다”고 쓴 문단을 내세웠다. 겨울철이었는데 폭설 때 오세훈 시장이 현장으로 달려가 장화를 신은 채 손수 삽질을 하며 눈더미를 치운다는 설명이었다.

S기자는 “책 제목을 ‘삽질하는 시장’이라고 붙이면 괜찮겠다. 무엇보다 실제상황이기도 하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데도 효과를 볼 것”이라며 적극 권유했다.

일각에서 비난을 받고 있는데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엉뚱한 ‘삽질’을 하지 말고 그야말로 국민 삶의 현장을 보듬는 진짜 삽질을 해야 한다는 경종을 울리자는 취지였지만 차마 의견을 따를 순 없었다. 그냥 웃어넘기고 말았다.

무엇보다 직접 일간신문과 방송사 등 언론계를 취재해 현장감을 살리려고 부지런히 뛰었다. 서울시청을 담당하는 언론사 기자는 등록된 인원만 120여 명이나 된다. 책 제목에 나오는 ’기자들도 모르는’이란 대목이 심상치 않았다.

그런데 마침내 "무척이나 애썼다"는 말을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일선 기자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 나름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일단 성공이라고 가름해도 무방할 듯하다.

2020년엔 시절에 걸맞지 않은 부분을 빼고 필요한 부분을 보태 ’기자들도 모르는 52가지 언론홍보 비밀’로 개정판을 냈다.

각종 통계수치와 보도 자료를 최신화하고 언론 경험사례도 업데이트했다. 제1부 기자는 누구?, 2부 알다가도 모를 언론, 3부 보도되게 하는 비법, 4부 서울시 대변인실 사람들, 5부기자와의 생생 인터뷰로 목차를 구성했다. 언론과를 떠나 사업 부서로 옮긴 다음 겪은 언론홍보 경험도 책에다 녹였다.

디지털로 기사를 생산하고 모바일로 뉴스를 소비하는‘모바일 미디어’시대에 최신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가볍지 않은 책임감이 초판 때의 각오를 재소환했던 셈이다. 하룻밤 사이에도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는 미디어 환경이 더욱 서두르게 채찍질을 더했다.

                                                     서울신문 DB
                                                     서울신문 DB

앞서 2004년엔 인터넷 블로그 ’한양입지’를 꾸리기 시작했다. 서울 살이에 대한 느낌을 되새기는 공간이다. 역시 영예로운 대한민국 수도 시민으로서 갖는 짙은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2년 뒤인 2006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면서 ’내 삶의 중요한 시간들을 기록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운영해 판을 키워야겠다고 별렀다.

아예 아이들 이름을 따 ’수아 예준이네 채플힐 스토리’(The Cho’s Family)라고 별칭을 달았다.

블로그엔 지갑 분실사고, 초등학교 동창회 뒷이야기 등 주변에서 일어나는 잔잔한 사연부터 마약하는 사람들, 국회의원 선거 등 사회 핫이슈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최근엔 4·10 총선을 앞두고 화제로 떠올랐던 연동형 비례대표제, 저출산 문제를 도표자료를 덧붙여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홍보 일꾼’ 조 실장이 근무하는 서울시의회를 널리 알리는 직업도 참으로 중요하게 다가온다고 곱씹는다. 얼마 전 건물에 반세기를 넘어 어렵사리 복원한 중구 세종대로 본관 시계탑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를 계기로 시의회 포토존을 만들어 시민들을 초청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짜내기도 했다.

1991년부터 서울시의회 본관으로 쓰이는 건물은 우리나라 역사에 제법 간단찮은 발자취를 간직한 곳이다. 제국주의 일본 치하이던 1934년 경성부 대집회용 건물로 세워져 6·25전쟁 발발 시기인 1950년까지 쓰여졌다. 이후 1950년대 중엽부터 1974년까지 국회의사당으로,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세종문화회관 별관으로 바뀌었다.

 1945년 7월 24일 경성부민관에선 애국 청년 류만수,  조문기, 강윤국이 매국노 박춘금 일당의 친일 연설 도중 사제폭탄을 던져 연단을 폭파했다. 박춘금은 조선총독과 조선군사령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일제에 충성을 맹세하고 아시아 민족을 전쟁의 제물로 내몰기 위한 친일 관제 민중대회인 이른바 ‘아세아민족분격대회를 주도하고 있었다. 이런 음모를 보란듯 무너뜨린 해방 20일 전 젊은이들의 폭탄투척 쾌거는 우리 민족 독립항쟁의 마지막 정열을 대변한 것으로 평가됐다.

또 1966년 9월 22일엔 국회의사당으로 바뀐 이곳에서 국회의원 김두한(당시 44세)이 정부의 사카린 밀수사건 비호에 분노한 나머지 국회 본회의에 참석한 정일권 국무총리, 장기영 경제기획원 장관, 민복기 법무부 장관, 김정렴 재무부 장관 등 국무위원들에게 오물(분뇨) 더미를 끼얹는 희대의 사건을 일으켰다.

삼성그룹 계열사였던 한국비료가 그해 5월 일본에서 사카린 원료를 밀수입해 들여온 게 언론에 보도돼 나라를 발칵 뒤집어놨다. 여당인 민주공화당까지 관련자 전원 구속과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며 비판에 가세할 정도로 박정희 정권의 부정부패가 요란하던 차에 끝내 폭발하고 만 것이다.

시계탑은 시의회 본관동에 우뚝 솟은 9층 건물로 3면에 모두 하나씩 시계를 갖췄다. 자체 발광기능이 있어 야간에도 매력적인 장면을 담을 수 있다.

문제의 시계탑은 1935년 만들어져 격동의 역사를 함께해오다 1975년경 사라졌는데 시의회가 지난해 8월 문서 발굴 등 고증작업 등을 거쳐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조 실장은 이렇게 조용히 말 끝을 맺었다. 

"공무원은 국민 세금으로 일하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는지 국민에게 알려야 할 책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큰 홍보수단은 언론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홍보에 매달려야죠."

P.S. 《이공사이》는 이 공직자의 사는 이야기를 줄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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