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령 수필가(대한민국아카데미미술협회 초대작가)
김가령 수필가(대한민국아카데미미술협회 초대작가)

우리는 미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가는 곳마다 예술 작품이 있다. 심지어 음식도 예술의 형태일 수 있으며, 예술과 미적인 것을 향유하려는 우리의 성향을 철저히 이용하고 있다.

예술 작품의 매력은 도처에 편재하면서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첨단 과학시대의 ‘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용어 속에 예술(Art) 개념이 포함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간의 생각은 우리의 선조가 만든 인공물들에 의해 모습을 갖추어 왔다. 이런 물건들이 인간의 상상을 점령하고, 상상력을 지배하는 힘은 우리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힘을 갖는다.

우리는 최근 일상의 사물들이 점점 심미화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자동차, 집, 스마트폰 등을 사는 이유가 그 사용 가치 때문만은 아니다. 디자인, 예술, 그리고 아름다움의 전략적 제휴가 우리를 명품의 소비자가 되도록 유혹한다. 최근에는 슈퍼 부자들이 ‘예술 소유자’라는 새로운 엘리트가 되었다. 예술과 힘은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

예를 들어, 모네의 인상주의 작품은 그저 오래된, 물질 재료들의 배열이 아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인상을 만들어 내고, 우리의 감수성에 인상을 남긴다. 그 작품을 여러 시점에서 더 자세히 들여다볼 때마다 그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효과는 더 커지면서 사물을 다르게 보게 하는 예술의 힘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그 회화의 최상의 미적 가치는 우리가 생산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우리가 얻는 미적 경험을 예견하지도 생산하지도 못한다. 한 작품의 관람자가 그 작품과 대면해 무엇을 경험하게 될지를 정확하게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예술과 존재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존재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예술 작품이 아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보편 법칙에 종속되지 않는 자율적 창조물이 아니다. 세계가 미적 현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는 미적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치, 아름다움, 진리는 현실 자체에 존재한다. 예술적 아름다움은 어떤 예술 작품이 그 ‘콤퍼지션’에 의해 정립된 기준에 부응한다. 이 기준은 외부적 관점에서 평가될 수 없다.

모든 예술 작품은 스스로를 판단한다. 예술 작품은 자기 스스로의 미적 판단이다. 예술, 그것 자체가 가치인 것이다. 예술은 인간이 그것을 좋아하는지 아닌지 묻지 않는다. 우리가 예술 작품으로 끌려 들어가거나 그러지 않을 뿐이다. 이것이 예술의 힘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 미술계에서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원예술’이 활성화되었다. 비록 공연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몸의 움직임이라든가 소리의 비중이 높은 작업이 등장한다. 일상을 다룬 작품이 부쩍 늘어났다.

미술가들은 어떤 특별한 사건이나 인물을 다루기보다는 매일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소재를 발견한다. 물론 그 이전에 일상을 다룬 작업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예전에는 산, 들, 강 같은 자연이 작품의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도시의 건물과 도로,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작업의 소재이다. 

또한, 현대미술에서는 사실보다는 작가의 주관적인 느낌이나 감성을 표현하는 것을 더 중요시한다. 모든 것을 작가의 두 손으로 직접 만들던 것을 재료의 선택에 중점을 두어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작품을 제작하는 기술보다 재료나 물건을 잘 선택해서 얻는 효과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작품뿐 아니라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 역시 작품이 된다.

예술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은 최종적인 결과물보다 아이디어나 창작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미술은 시간이 지나도 그 모습이 지속되는, 순간을 영원히 고정시키려는 작업이었다. 반면 현대미술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어떤 작품은 퍼포먼스가 끝나면 사라지기도 하고 설치미술 작품들은 전시 공간에 따라 작품의 크기나 모습이 달라지기도 한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예술이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든 가지지 않든 이미 우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예술을 배제하고서는 현 사회를 이야기할 수 없기에 예술가를 검색하다 보면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예술은 청중, 감상자들과 소통하면서 시대를 비판하기도,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하는 사회적 기능이 있다. 또한, 사물의 이면을 통찰하고, 부분에서 전체를 포괄하고, ‘있음’과 ‘없음’을 넘어서는 상상을 펼치는 예술계에서는 관계, 시스템, 사회적 경로 등도 예술적 사유의 일부가 되었다. 그래서 예술과 현대미술을 꿰뚫어보는 안목과 식견은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읽는 혜안이 될 수 있다. 

추상회화의 본질과 형상에 혁명을 일으켰다고 평가받고 있는 미국의 화가 마크 로스코. 그의 작품전이 2015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바 있다.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작품과는 다른 차분하고 엄숙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봄이 기지개를 켜는 이즈음에 그때 그런 감동과 예술적 힘을 느낄 수 있는 전람회에서 심오한 미의 세계를 만끽해보고 싶다.

- 참고 도서: 예술의 힘,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김남시 옮김, 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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