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령 수필가(대한민국아카데미미술협회 초대작가)
김가령 수필가(대한민국아카데미미술협회 초대작가)

공자는 중국 춘추 시대의 사상가이자 학자로 인(仁)을 정치와 윤리의 이상으로 하는 도덕주의와 덕치정치를 강조하였다. 묵자 또한 중국 춘추 시대 노나라의 사상가이자 철학자로 박애와 겸애(兼愛)를 설파하고 평화론을 주장하여 유가(儒家)와 견줄 만한 학파를 이루었다. 이들 공자와 묵자를 아울러 ‘공묵(孔墨)’이라 한다. 이후 ‘제자백가(諸子百家)’를 달리 이르는 말로 확대되었다. 

이렇게 춘추 전국 시대에 나타난 제자백가의 사상으로 중국철학이 발달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 체계를 갖추고 후세에 계승된 것은 유교 사상과 도가 사상이다. 전자는 송나라·명나라 때에 와서 성리학과 양명학으로 전개되었고, 후자는 민간 신앙이나 예술 이론, 농민들의 생활 습관에 깊이 영향을 끼쳤다. 묵자의 묵가는 법가와 함께 춘추 전국 시대 4대 철학으로 꼽힌다.

한 나라, 아니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을 준 사상이자 철학으로서 공묵이 있었다면 다른 의미의 동음이의어인 ‘공묵(恭默)’이라는 말이 있다. ‘공손하고 말이 없으며 조용하다’는 뜻으로 필자는 평소에 공묵하여 여성스럽다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인데 자화자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썩 좋은 의미만은 아닌 듯하다.

밝음과 어둠 중에 어느 것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요즈음 사람들은 대부분 밝음을 선택할 것이다. 가뜩이나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이 많아서 힘든 일상에서 이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망설임 없이 침울함보다는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상황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항상 웃고 말도 조잘조잘 잘하는 사람은 분위기 메이커로 어딜 가나 대접을 받는다. 남녀 불문하고 밝고 맑은 미소와 재담이 있다면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는데 적잖이 도움을 받을 것이다.

나무도 뾰족뾰족하여 손을 갖다 대기만 해도 찔릴 것 같은 침엽수보다는 넓은 잎을 달고 있어서 보기만 해도 안식과 휴식을 주는 활엽수가 더 각광을 받는다. 왠지 폐쇄적이고 어두운 면이 있어 보이는 나무보다 탁 트인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나무가 사람들의 정서를 풍부하게 하는 데도 보이지 않는 힘이 더 발휘될 것이다.

차가운 추상을 표현하는 현대 화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에서 차분하고 엄숙한 감동을 받는다면 액션 페인터 잭슨 폴록의 뜨거운 추상은 화폭을 바라보는 감상자를 춤을 추는 듯한 동적인 움직임의 열정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조용함과 부산을 떠는 것은 이렇듯 정반의 기운을 내포하고 있으면서 양립한다. 그래서 서로 적응하여 통합되는 시너지라기보다는 한쪽이 득을 보면 다른 한쪽이 손해를 보는 제로섬의 조화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차갑고 어둡고 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공묵은 살아가는 데 필요가 없을까? 별반 중요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냥 치워 버리지 왜 들고나와 심려를 끼치는가? 심려를 끼칠만한지 어떤지 들어 보라. 그러니까 밝은 면이 있다고 해서 다변과 순설(脣舌)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휘의 수와 질량은 비교할 필요도 없을 만큼 공허하지만 백 마디 말보다 공묵이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형제자매들과 싸우고 부모님께 꾸중을 들을 때, 성적이 떨어져 선생님께 훈화를 들을 때, 학교 친구와 대판 싸우고 내가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먼저 사과할 때, 애인과 티격태격 사랑싸움을 하고 난 후 하소연을 들어줄 때, 우울하고 힘이 들 때, 지인의 장례식에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 때 등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살아가면서 공묵의 가치가 빛나는 순간은 많다. 그런데 주로 어려운 일에 봉착했을 때 무엇인가 해결방안을 찾기 직전에 잠잠한 공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마치 제자백가의 철리를 활용하여 실마리를 찾듯이 공묵함으로써 어둠을 뚫고 또다시 밝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모두가 득을 보는 ‘윈윈’으로 갈 수 있게 하는 키워드가 아닌가.

그저 말문을 닫음으로써 오히려 말대꾸하는 듯한 침묵이 아니다. 손순하고 예의 바른,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겸손한 묵비’인 것이다. 공묵이란 공무원, 변호사, 의사, 공증인 등 주로 공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갖추어도 이로운 덕목이 아닌가 한다. 조용함에 답이 있다. 갈엽을 떨어뜨리는 활엽수보다 늘 푸른 침엽수가 올곧음의 표상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같은 마음으로 일하고 어둠과 밝음의 교차에도 동요하지 않으며 묵묵히 맡은 바 책임을 다한다면 미완의 삶을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사회가 고도화하고 다양해질수록 말이 없이 해결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말 뿐만 아니라 글, 이미지, 게다가 영상까지 동원하여 자세하게 설명을 해도 모자랄 판에 공묵이라니 물정 모르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도, 아무리 말 많은 세상이라고 해도 빠르고 본능적이며 감정적인 말 한마디에 우리의 행동이 지배당하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라. 말이 앞서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말이 쉬운 것은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함도 애초에 생각에서 비롯되니 말하기 전에 공묵하듯 잘 생각한 후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가정에서, 회사에서 또는 모임에서 일이 잘되지 않을 때 한 번쯤 공묵을 실천해보라. 조용한 가운데 마음이 정화되고 이로써 생각이 고여 엉킨 일을 풀어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말하지 않음’으로도 순조롭지 않던 일이 모두 풀리고, ‘생각만’으로도 공묵(孔墨)도 울고 갈 만큼의 명현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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