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령 수필가(대한민국아카데미미술협회 초대작가)
김가령 수필가(대한민국아카데미미술협회 초대작가)

용과 범이 서로 싸운다면 누가 이길까? 강자와 강자와의 싸움. 누가 이길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그래서 실력이 엇비슷한 맞수의 대결을 두고 ‘용호상박(龍虎相搏)’이라 한다. 

세력이나 역량이 비슷한 두 영웅을 가리키는 말인 용호는 이백(李白)의 시에서 유래한다. 정복 전쟁이 무수히 일어난 춘추전국 시대를 묘사한 시에 “용과 범이 서로를 물고 뜯으며, 전쟁이 광포한 진나라에 이르렀도다.”라고 한 구절이 있다.

이로부터 흔히 막강한 이들의 대결을 용호의 싸움으로 표현한다. ‘자존심 강한 두 천재가 대결한다’는 뜻의 줄임말인 ‘자강두천’이라는 말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고 보면 집집마다 용호가 있다. 바로 남편과 아내다. 요즘은 남녀평등시대라 맞벌이를 하며 평소 친구처럼 지내는 부부들이 많다. 수입이 줄고 지출은 늘어 가계가 점점 어려워져도 사이좋은 부부들은 싸우지 않는다. 그냥 TV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 물개박수나 치면서 희희낙락한다. 이럴 때 용호는 상박이 아니라 ‘순박’으로 본디 선한 동물이었지 싶다.

그런데 모름지기 용호라면 서로 치고받고 싸워야 제격이 아닌가. 스포츠에서 라이벌이나 정치판에서 여야가 맞서는 것은 그렇게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이팅” 하면서 득점을 하고 “파이팅” 하면서 소통과 화합으로 갈 수 있다.

G2인 미국과 중국도 세기의 맞수로 경쟁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이익의 공생관계이기도 했지만 체제가 다른 만큼 매우 불안정하고 위험한 관계이기도 했다.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 패권의 취약성과 미중 상호의존성의 한계가 드러나는 계기였고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중국 또한 미국의 압력이 강화되자 독자적인 발전 경로를 찾기 시작했다. 미중 패권경쟁의 전개는 상호의존성의 종언, 즉 ‘탈동조화’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처럼 초미의 대결 사이에서 한국은 두 강대국의 갈등을 최대한 순치시키고, 신냉전적 줄서기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전략을 기본적인 생존의 차원에서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미중이 강대강 대치국면으로 치닫고 있지만 이 과정이 지나고 나면 더 유연하고 친밀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가 승자의 편이라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러나 간혹 무승부도 있다. 승부를 가릴 수 없는 연장전이 계속 이어지더라도 최선을 다해 싸운다면 삶의 마지막 결과를 얻어내는 과정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정글에서 자신의 세력을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동물들의 세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사회에도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이 엄연히 존재하는 한 싸움은 피할 수 없으며 오히려 일생동안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 의례와도 같이 자리 잡고 있다. 삶은 매 순간 치열하게 이어지는 싸움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힘에서부터 일생일대의 중요한 일을 해내는 힘, 병마와 싸울 때 필요한 힘, 위기나 재난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힘, 국가간 정복의 힘, 그 모든 것이 생(生)에너지이며 ‘용호상박의 힘’이다. 

미중은 남북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한반도 내에서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처럼 언제든지 전면전으로의 확대가 가능한 설전이나 국지전이 벌어질 위험을 안고 상존해 있다. 많은 희생과 상처를 불사하고도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보다 큰 불상사가 없겠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와 억제를 해야 할 책임이 남북뿐만 아니라 세계 각 국에게 있다. 세계가 힘을 모아 평화와 질서를 위해 무력이 아닌 ‘선의’로 경쟁하고 서로 상생하는 모멘텀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이 세상은 선한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잘 사는 것 같다. 이타적이기보다는 이기적으로 사는 게 편하며 온정보다는 냉소가 쉬워 보인다. 그러나 ‘선이야말로 강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모든 것들과 싸워야 하기에 선하게 살고자 한다면 늘 보이지 않는 투쟁으로 이어진다. 사소한 개인의 삶에서도, 글로벌한 세상사에서도 ‘선의 승리’를 위한 투쟁은 인류가 없어지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선악을 판단하고 옳고 그름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을 찾아 그름에 맞서 이를 수호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싸움이라면 “파이팅”이라고 응원할 수 있지 않을까. 

도전과 응전의 연속인 삶 속에서 임전무퇴의 기상과 투혼은 청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 “왔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 라고 인생이라는 전장에서 승전보를 남길 수 있도록 발톱을 감추고 사는 순박한 용호라도 싸워야 할 때는 용맹과 지략을 겸비한 본연의 모습을 발휘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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