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록원, 김수연 왕지‧김호인 교지 복원
건‧습식 클리닝으로 종이에 난 구멍도 메워

김수연 왕지 복원 전(왼쪽)과 복원 후(오른쪽). 행안부 제공.
김수연 왕지 복원 전(왼쪽)과 복원 후(오른쪽). 행안부 제공.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김수연 왕지(金壽延 王旨)의 복원을 완료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번에 복원된 왕지는 1434년(세종 16년) 김수연 무과급제 홍패로 현재 보물로 지정된 홍패보다도 1년 앞서 발급됐다.

왕지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사이에 국왕의 명을 담아 내린 문서로, 조선 세종 이후로는 교지로 통일됐다. 홍패는 조선시대 문‧무과에서 급제한 사람에게 주는 증서다. 충숙공 김수연 장군은 4군 6진의 개척에 앞장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국가기록원은 이 홍지에 찍혀 있는 어보 ‘국왕행보(國王行寶)’가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실록을 근거로 한 그간의 연구에서는 1433년 3월부터 1443년 10월 사이에 발급한 홍패(왕지)에는 ‘국왕신보(國王信寶)’가 사용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김수연 왕지에서 ‘국왕행보’가 사용된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기존의 견해에 수정이 필요하게 됐다.

박성호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1433년 3월부터는 새로 주조한 어보(御寶)를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라면서 “제도 마련 초기에는 과거 급제 문서인 홍패에도 ‘국왕행보’를 사용하다가 제도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관직 임명 문서에는 ‘국왕행보’를, 과거 급제 문서에는 ‘국왕신보’를 날인하도록 엄격히 구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김호인 교지 복원 전(왼쪽)과 복원 후(오른쪽). 행안부 제공.
김호인 교지 복원 전(왼쪽)과 복원 후(오른쪽). 행안부 제공.

국가기록원은 이외에도 김수연 장군의 아들인 김호인 교지도 복원했다.

김수연 왕지와 김호인 교지는 김해김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었으나, 불안전한 보존환경 탓에 꺾임과 종이 사이의 들뜸, 벌레와 세균에 의한 오염이 있는 등 훼손이 있었다.

구멍난 부분을 메우는 작업. 행안부 제공.
구멍난 부분을 메우는 작업. 행안부 제공.

국가기록원은 건‧습식 클리닝으로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구멍이 난 부분은 원본과 유사한 한지로 보강했다.

복원이 완료된 김수연 왕지와 김호인 교지는 국가기록원 누리집에 공개될 예정이다.

최재희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원장은 “‘맞춤형 복원‧복제 지원 사업’을 통해 조선시대 무과 급제 홍패 중 세종대왕 시기의 기록물을 원형으로 복원하고, 조선 초기 어보 사용의 새로운 용례가 확인된 점을 뜻깊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민간에서 소장하고 있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록물들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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