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령 수필가(대한민국아카데미미술협회 초대작가)

김가령 수필가(대한민국아카데미미술협회 초대작가)
김가령 수필가(대한민국아카데미미술협회 초대작가)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이후에 한다(繪事後素). 먼저 바탕을 손질한 후에 그림을 그린다. 사람은 좋은 바탕이 있은 뒤에 형식(禮度)을 더해야 한다. 예(禮)보다는 그 예의 본질인 인(仁)한 마음이 중요하다.’

공자와 그의 제자인 자하의 문답을 읽고 있자니 의문이 생긴다. 그럼 어진 성품이 아닌 사람은 평생 예를 갖출 수 없다는 것인가? 형식적인 예를 갖춤으로써 인을 채워가는 부분도 있지 않은가. 늦어도 학령기가 되면 예를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공부는 왜 하는가? 내면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면 형식도 갖추어야 한다. 어느 것이 먼저이고 나중이라고 할 수 없는 문제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에게도 성별에 맞게 옷을 입히는 등 예를 갖추도록 한다. 그러니 인이 부족한 사람은 아예 예를 논하지 말라는 식의 발언은 어불성설이 아닌가.

요즘 사람들은 서예를 잘 하지 않는데 붓글씨를 쓰면서 인, 예를 배우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예(書藝)’라고 하지만 중국은 ‘서법(書法)’, 일본은 ‘서도(書道)’라고 한다. 서예에서 ‘예(藝)’는 ‘예(禮)’와 한글 독음이 같으니 연관이 있다고 이해하면 어떨까? “예, 좋아요”라고 답해도 무방할 듯하다.

초등학교 방과후교실 성인반에서 서예를 배울 때의 일이다. 평소에는 아이들과 시간대가 다른데 방학 때는 함께 공부했다. 3남매가 모두 서예를 배우는 경우가 있었다. 부모는 아이가 입학을 하면 꼭 아이와 함께 서예실에 찾아왔다.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수강신청을 하고 가는 것이다. 명절이나 스승의 날이 되면 간소한 선물을 챙겨 와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 두 달 혹은 일, 이 년 배우다마는 게 아니라 아이가 학교를 다니는 6년 동안 성실하게 글씨를 배우게 했다.

남매는 개구쟁이였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변해갔다. 물론 나이가 들면 다 변하게 마련이지만 좋게 변해가는 것이다. 1학년들은 병아리처럼 조잘댄다. 좀 더 별난 아이는 책상 위에 올라가고 뛰어다니기도 한다. 먹을 쏟아 부어서 바닥이 엉망진창이 되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도 서예를 통해서 글씨가 좋아지면서 차분하게 안정감을 찾아간다. 남매들은 말도 느려졌다. 즉,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바로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른 아이들보다 변화가 뚜렷했다. 나중에 첫째가 성인이 되어 찾아왔다.

명문대 이과생이 되었다고 했다. 졸업생이 스승의 날에 방과후교실 선생님을 찾아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참 귀한 광경을 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은(師恩)을 잊지 않고 모교를 찾아온 마음은 단정한 차림에서도 드러났다. 선생님께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전하는 손길과 공손한 말씨는 ‘뉘 집 자녀인지 참 잘 배웠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했다.

인이란 무엇이고 예란 무엇인가.

검소한 예는 인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옳은 말씀이다. 하지만 부탁도 예를 갖추었을 때는 들어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임금도 예로써 신하를 부린다고 했다(君使臣以禮). 본질과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 인과 예,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仁義禮智信)중에 소중한 덕목이니 어느 것이 먼저라고 왈가왈부할 것 없이 지금부터라도 잘 지켜 바르게 살아가야겠다.

글씨 쓰기를 싫어했던 막내가 기억난다. 선생님께서 써주신 체본(體本)을 따라 쓰는 것은 뒷전이고 내가 쓰는 글씨를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말수가 많았는데 내 글씨를 지켜볼 때는 조용했다. 다부지게 들여다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막내에게도 ‘착한 마음이 먼저’라는 가르침이 전해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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