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조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자문위원

최영조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자문위원
최영조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자문위원

바야흐로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의 시대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디지털 기술로 인해 우리 사회의 전 분야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특히 2020년 초에 발생한 코로나 팬데믹은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메타버스 등 디지털 시대를 규정하는 용어의 구체적인 개념도 이해하기 어렵다. 변화의 시대에 준비되지 못한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고, 국가 전반의 운영에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한 정부는 경쟁력을 잃게 된다. 기업과 정부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조직의 형태와 운영 방식,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조직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확진자 규모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이제 곧 2년의 힘겨운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끝날 것이다. 그동안 코로나 방역에 집중했던 정부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맞이하게 될 미래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방역 정책의 많은 허점을 드러냈지만, 국제적으로 모범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됐을 만큼 안정적으로 관리해왔다. ‘전면 봉쇄’와 같은 최후의 수단은 사용되지 않고, 많은 시민의 참여와 협력으로 개인위생관리와 백신 접종도 높은 수준을 보였다. 영업시간 제한으로 경제적 피해를 본 자영업·소상공인을 위한 대책은 점검할 부분이다.

정부가 실시한 각종 코로나 대책은 여러 언론이나 시민단체에서 지적해서 공론화가 됐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소속 노동자인 공무원들을 어떻게 대하고, 소통하고 있는지 알기는 매우 어렵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 ‘공무원이 당연히 희생할 수 있지 않나’라는 낡은 사고가 남아있는 현실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결정자들은 너무 쉽게 공무원의 희생을 강요하고, 그에 합당한 보상과 처우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구태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달 23일 정부는 42개 중앙행정기관 소속 공무원 3000명과 군인력 1000명을 보건소 등 일선 방역현장에 배치해 기초 역학조사나 문자 발송 등의 지원업무를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2년여 코로나 기간동안 방대해진 정책 업무에 시달린 중앙 부처 공무원들은 코로나 국면이 끝나가는 시기에 갑자기 근무지를 바꿔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번 정부의 파견 결정이 해당 기관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충분한 사전협의나 조사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파견으로 인해 근무지가 변경되는 것은 중요한 노동조건의 변경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과 한마디 상의 없이 제멋대로 결정됐다고 한다. 정부 조직에도 사람이 있고, 인권이 존재하는데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이러한 정부의 방식은 과거의 것이고, 행정서비스의 질도 악화될 우려를 낳고 있다. 부처별 특수성도 고려하지 않은 채 일괄적으로 인원을 차출하고 있어 일부 부처에서는 담당업무의 공백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소상공인 손실보상 등을 담당하는 중소벤처기업부, 고용유지지원 및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지급 등을 담당하는 고용노동부의 경우 현재도 부족한 인력으로 밤낮없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으나, 인력충원은 고사하고 현재 있는 인력마저 파견으로 차출될 위기에 놓였다.

비단 코로나19뿐만이 아니라 각종 재난·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공무원들은 국민의 안전과 피해의 최소화를 위해 사회 곳곳에서 애쓰고 있다. 그리고 이번 코로나19 역시 국가 위기상황임을 인지하며 대한민국의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소속 노동자인 공무원의 이 같은 숨은 노력을 그저 ‘봉사’로 포장하며 일방적인 희생을 당연시하는 정부의 태도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정부의 결정 방식은 미래를 준비하는 조직의 운영 방식과는 반대다. 과거에 연연하고, 현재에 안주하려는 조직의 모습이다.

4차 산업혁명이 세상을 바꾸게 될 디지털 시대를 준비하는 정부의 리더십을 보고 싶다. 내부로는 소속 노동자인 공무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해묵은 위계질서를 타파하면서, 외부로는 시민의 참여를 권장하여 시대를 함께 고민하는 개방적인 조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앞으로 내부 거버넌스가 하위 수준인 조직이 외부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계 흐름의 한 축인 ESG(환경·사회·거버넌스)가 강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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