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없이도 잘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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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없이도 잘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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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1.0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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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인의 좌충우돌 사회적응기(1)
이서인 시인
이서인 시인

흔히 우리는 심성이 착하고 순박한 이를 보면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말한다. 공직에 있을 때 나의 삶에 대한 기준 또한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내가 느낀 것은 법 없이도 잘 산다는 것은 시쳇말로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었다. 사회에 나와보니 내가 얼마나 법의 보호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법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열심히 업무를 대신해 주었기 때문에 평범한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내가 법을 잘 몰라서 낭패를 겪은 첫 번째 사례는 바로 실업급여였다. 공직자로 30여 년을 살아오다 이제 사회에 발을 내 딛은 지 10개월이 되었다. 28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임기제 공무원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봉급명세서에 새롭게 명시된 항목이 고용보험이었다.

실업을 전제로 보험 가입을 선택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해 가입한 고용보험은 4년 반 동안 매월 봉급에서 자동으로 공제되었고 내심 퇴직 후 6개월간 버팀목이 되리라 생각하니 든든했다.

지난 연말로 퇴직일이 다가왔고 새해에 나는 희망찬 사회에서의 첫 출발을 꿈꾸며 서류를 갖추어 고용보험공단을 찾아가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사업자등록 되어 있으시죠. 명의 이전하셔야 실업급여 신청하실 수 있어요” 관계자가 컴퓨터를 몇 번 두드리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인가하고 멍하니 있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지난해 10월 물류창고를 짓겠다고 신청한 사업자등록증이 문득 생각났다.

1년 전 두 남동생과 노후 인생 설계를 의논하다 보니 나는 아들이 대학을 졸업했지만, 동생들은 각각 3명인 아이들이 내년에 모두 대학에 다녀야 해서 향후 4~5년이 가장 많이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첫째 동생은 최근 퇴직해 계약직으로 근무를 하고 있어서 급여가 많지 않았고, 둘째 동생도 요즈음 불경기라 사업이 여의치 않았다.

우리는 아버지의 500여 평의 땅을 활용해보자는데 머리를 모았고 아버지도 지난 10년간 다른 사람에게 실제보다 저렴하게 임대를 해주셨던 터라 흔쾌히 동의해주셔서 내가 대표로 사업자 등록을 하게된 것이다.

나는 사업자등록을 해도 창고 설계와 시공을 하려면 자본금이 많이 들어가고 창고를 지어서 임대를 해야 소득이 생기기 때문에 올 해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최초에는 3개월이면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었던 물류창고는 이러저러한 여러 가지 법 규제로 인해 아직도 짓고있는 중이고 그동안 모아놓았던 퇴직금도 계속 시공비로 들어가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법은 사업자 등록과 동시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해 놓았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새로운 직장을 얻기까지 실업급여를 받으면 어느 정도 퇴직 후의 삶도 여유 있게 유지할 수 있으리라던 나의 노후 인생 설계는 초장부터 무너졌다.

임대로 인한 소득도 없이 오히려 계속 투자비가 들어가는데 이제까지 냈던 고용보험료 수 백만원은 허망하게 공중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다음으로 법을 몰라서 겪은 두 번째 황당했던 사례는 종합부동산세 납부 고지서를 받고 나서였다. 요즈음 서울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서민들은 한숨을 내쉬고 있지만 나는 다행히 3년 전 전 용산에 내 집 마련을 하게 되었다.

당시 전세로 살고 있는데 재계약을 하려니 갑자기 전세비를 1억 5000만원이나 올려달라는 것이다. 평생을 직업군인으로 전국을 떠돌다 보니 28년 동안 이사만 10여 차례 했고 노후를 위해서는 이제 평생 살집이 필요해진 시점에 전세가가 너무 많이 오르다보니 차라리 집을 사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목돈이 아쉬울 때마다 해지할까 하다가 꾹 참고 30년을 불입 해 온 군인공제회비와 은행 대출금을 더해서 드디어 내집을 장만한 것이다. 춘천이 고향인 나로서는 용산역에서 itx청춘열차를 타면 1시간 10분이면 고향에 갈 수 있다는 것도 용산에 자리를 잡게 된 엄청 큰 매리트였다.

부동산은 타이밍이라더니 10여 년 동안 바닥이었던 아파트 시세가 매매 다음 달 부터 오르기 시작하더니 매년 억 단위로 올라 지금은 용산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집 장만을 못했다면 나 또한 계속 전셋집을 찾아 전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감사한 일이지만 지난해 가을 종부세를 내라는 고지서를 받고 황당했다.

내가 투기로 집을 산 것도 아니고 아파트를 팔아서 이윤을 남긴 것도 아닌데 그저 집 값이 올랐다고 세금을 더 내야한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제는 전세로 옮기려고 해도 용산은 전세대출금도 안된다고 하니 꼼짝없이 비싼 집에 살면서 세금을 내야 할 판이다. 그동안 하우스 푸어라는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었는데 그 말이 이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방금 ‘부동산가 급증, 11월부터 건보료 인상’이라는 뉴스가 나를 또 한숨 쉬게 한다. 앞으로도 또 어떠한 법 때문에 내 후반의 인생이 좌충우돌할 지 모르지만 최소한 법 없이도 살 사람들에게 법이 가혹한 잣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과 함께 법꾸라지로 사는 사람들을 희망의 잣대로 보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서인 시인은〉

196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춘천여고를 나왔고, 여자정훈장교 1기다.
2014년 중령으로 예편해 그해부터 2018년까지 육군에서 임기제 군무원으로 부이사관을 달고 근무했다. 예편 뒤에는 평소 문학소녀의 꿈을 살려 2015년 종합문예지 시와창작 시부분에 등단했다. 2019년에는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시·문학 부문)을 받았다. 현재 시와창작 작가회, 시마을문학회, 화랑문인회 작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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