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인의 좌충우돌 사회적응기(18)

이서인 시인(여자 정훈장교 1기)
이서인 시인(여자 정훈장교 1기)

퇴직 후에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내 소개를 할 때면 이렇게 말한다. “전에는 군인이었고 현재는 시인으로 활동하는 이서인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렇게 되묻는다.

“어떻게 군인이 시인이 될 생각을 하셨어요?” 그럼 나는 냉큼 이렇게 대답한다. “네. 이순신 장군도 시인이었고 남이 장군도 시인이셨어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유명한 시를 남기셨고요.” 그러면 이내 “아! 맞아요. 문무겸비….”한다.
  
우뇌를 개발하라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명령과 복종, 규율과 질서, 책임과 의무가 우선시되는 군대에서 문화는 왜 필요한 것일까.

며칠 전 모임에서 이 문제에 대해 지인들과 대화가 있었다. 출판계에 평생 종사하면서 오랜 세월 군과도 인연을 맺고 있는 대표의 말씀에 의하면 “인간의 머릿속에서 좌뇌의 역할은 주로 언어 중추 기능을 담당하고 있고 좌뇌가 발달하게 되면 수학, 논리력, 합리적, 이성적인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얘기는 이어진다. “우뇌는 예술적, 감성적 감각을 담당하고 있다. 군은 이성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조직의 특성으로 인해 좌뇌의 개발이 중요하다. 그러나 위기상황 속에서 목숨을 내걸고 전투를 수행할 때 이성적 판단만으로는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적 행동을 촉발하게 하는 것은 우뇌가 가진 애국심과 충성심 같은 감성이므로 평상시 지속적으로 문화활동과 체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말에 적극 공감한다. 군인정신 덕목 중 하나인 ‘용기’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주어진 임무를 기꺼이 수행하려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군인들이 뮤지컬을 한다고?
 
얼마 전 올림픽공원에 위치한 뮤지컬 공연장을 찾았다. 역시 가을은 단풍의 계절이라 공원에 심어진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을 바라보니 코로나19로 인해 우울했던 마음도 일순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공연도 언택트로 진행되어서 뮤지컬의 진수인 대면 공연이 제한되었는데 다행히 위드코로나 정책으로 공연장을 직접 찾아 뮤지컬을 관람할 수 있었다.

이번에 육군에서 올린 공연은 ‘메이사의 노래’라는 창작뮤지컬이다. 유엔 가입 30주년을 기념하여 해외파병을 소재로 제작한 ‘메이사의 노래’는 국제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파병 장병과 이들 덕분에 잃어버린 꿈과 희망을 되찾아 가는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메이사’는 천체 오리온자리에 있는 별의 이름으로 ‘빛나는 존재’라는 뜻이다. 극 중 주인공이 자신을 지켜주고 희망을 준 파병 군인에게 붙인 이름이자, 절망 속에서 희망을 잃지 말라는 의미를 담았다.

이번 작품은 2008년부터 장병들에게 고품격 문화콘텐츠를 제공하고, 국민과 문화예술로 소통하고자 꾸준히 뮤지컬을 만들어 온 육군이 ‘MINE’, ‘생명의 항해’, ‘The Promise’, ‘신흥무관학교’, ‘귀환’에 이어 여섯 번째로 선보이는 작품이다.

‘메이사의 노래’ 공연을 통해 과거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발전한 대한민국의 위상과 해외에서 국제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우리 군의 다양한 활약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문화가 가진 강력한 힘이다. 
 
BTS와 군대 

사회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막강한 기획사는 군이라는 얘기를 한다. 퇴직 후 언론협력관으로 재임용되어 육군에서 근무할 때 마침 ‘신흥무관학교’ 공연을 준비 중이었다.

여러 매체에 홍보하면서 정부정책 홍보지에도 처음으로 홍보하게 되었다. 담당 기자의 요구사항은 뮤지컬 주연배우들과의 인터뷰와 사진촬영이었는데 공연일정과 배우들의 사정상 여건이 제한되었다.

그래서 제작사와의 협의로 주연배우들의 사진을 쓰고 인터뷰 내용은 별도로 받아서 주기로 했다. 이후 정부홍보지는 이례적으로 이른바 대박을 쳤다.

당시 주연배우가 대세 연예인인 지창욱, 강하늘, 성규였기 때문이다. 한 사람만 보아도 흐뭇한 세 배우의 얼굴을 한 컷으로 표지에 담았으니 대박이 날 수밖에. 관계자로부터 고맙다는 치사를 들은 기억이 새롭다.

‘메이사의 노래’ 공연에 출연하는 41명의 배우 중 일부를 제외하고 31명은 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국군 장병이다. 이들은 입대 전 가수, 연기자, 댄서 등으로 영화 및 드라마, 무대 예술과 같은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파워풀한 군무와 강렬한 랩,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K-POP과 전통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꾸며진 무대는 넘치는 재능을 자랑하는 장병들의 열정과 노력 덕분이다.

그룹 엑소와 인피니트 멤버로 K-POP의 선두주자인 박찬열과 김명수, 드라마 루갈, 막돼먹은 영애씨를 통해 알려진 박선호와 한국 1대 빌리로 발탁된 박준형, 태권도와 K-POP을 접목한 그룹 ‘K타이거즈 제로’ 멤버 강건우,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피날레 메인 댄서로 활약한 조현식 등이 펼치는 시너지 효과는 뮤지컬을 빛내주는 별이다.

이들이 일반 병사로만 군 복무를 하게 되었다면 그 재능이 어떻게 되었을까.

세계적인 K-POP 스타인 BTS의 입대 문제를 두고 국민적인 여론이 분분할 때마다 2013년 해체된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 연예병사 제도에 아쉬움이 남는다.

명예는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BTS를 육군 뮤지컬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오게 될까.

공연장, 무대장치, 배우 섭외, 음악 등 뮤지컬 제작에는 큰 비용이 들어간다. 가장 아쉬운 점은 군이 제작한 뮤지컬마저 정작 우리 장병들은 소수 인원만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격조 있는 군대문화 발전에 동참해줄 어디 누구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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