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인의 좌충우돌 사회적응기(17)

이서인 시인(여자 정훈장교 1기)
이서인 시인(여자 정훈장교 1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0 도쿄올림픽이 끝나고 지금은 패럴림픽이 열리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일 년 미뤄진 이번 올림픽의 참가 여부를 놓고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참가를 잘한 것 같다.

경쟁에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승자에게는 올림픽 메달과 함께 각종 포상비가 뒤따르고 국민에게 환호를 받았지만 패자는 고개를 떨구고 쓸쓸하게 귀국하는 것이 이전의 통상적인 모습이었다면 이번 올림픽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장면들이 속출했다.

4년도 아니고 5년 동안 절치부심하면서 기량을 닦아온 태극전사들의 경기 장면을 보고 우리 국민은 많은 위로를 받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투혼에 갈채를 보냈다.
         
높이뛰기 4위, 행복한 군인 우상혁      

올림픽에서 메달을 받은 선수의 반응을 분석해본 결과 금메달을 딴 선수가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동메달을 딴 선수가 가장 행복지수가 높다고 한다.

결승전에 올라가지 못한 아쉬움도 있겠지만 3, 4위전에서 이겨 동메달을 획득하여 메달리스트가 된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메달을 놓고 패한 4등의 심정은 어떠할까?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4등을 하고도 행복한 웃음을 지은 선수들이 있었고 국민도 그들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냈다.
 
우상혁은 메달리스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도쿄올림픽이 낳은 최고 스타 중 한 명이다. 높이뛰기 결선에서 2m 35를 뛰어 종전 한국 기록을 무려 25년 만에 깬 동시에, 한국 올림픽 육상 트랙·필드 종목에서 사상 처음으로 최고 성적인 4위를 기록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국민은 스물다섯 청년이 뿜어낸 무한 긍정 에너지에 열광했다. 비인기 종목이었고 메달도 못 땄지만 파이팅을 외치며 최선을 다해 뛰고 경기를 즐기는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도 행복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의 경기를 중계한 외신에서도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보여주는 선수”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현역 시절 국군체육부대에서 근무한 경험으로 인해 나의 이번 올림픽 최애 선수는 우일병이 되었다. 우상혁 선수의 정체성은 경기에 임하기 전과 경기 후에 보인 반듯한 거수경례를 통해서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국군체육부대 소속 우일병은 귀국 후 가진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기 시작과 끝은 거수경례로 하자고 마음먹었다. 군인 신분이란 걸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메달을 아쉽게 놓쳐 조기 전역이 무산돼 아깝지 않으냐는 취재진의 물음에는 “군대 간 덕에 이렇게 된 것이다. 슬럼프로 힘들었는데 군대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말했다.

어릴적 사고로 인해 짝발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를 극복한 ‘스마일보이’ 우 일병이 “나는 행복하다”고 하면서 지은 백만불짜리 미소가 아름다운 이유이다.

여자 배구 4위, 리더의 품격 김연경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 도미니카와의 경기 중 김연경이 외친 이 말은 이번 대회 최고의 올림픽 어록으로 떠올랐다. 특히 김연경은 일본과의 16강전에서 42%의 공격 성공률을 보여주며 블로킹 3개를 더한 30점을 따냈는데 경기 후 허벅지 핏줄이 터진 부상 투혼이 알려지며 더 큰 박수를 받았다.

김연경은 인터뷰에서 “마지막에 역전승했는데 결국 팀워크였다. 선수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했기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이어서 “13-14가 됐을 때 포기하지 않았다. 3연속 득점으로 이길 수 있었던 건 팀워크였다. 원팀이 됐기에 가능했다”고 동료에게 공을 돌렸다.

여자 배구는 준결승, 3·4위전에서 거듭 3대0으로 완패했는데도 국민은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세계 랭킹에서 한참 앞서는 강호들을 잇달아 물리치고 4강에 오른 데다 확연한 실력 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분전하는 모습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이미 제 가슴엔 금메달을 안겨주셨네요.”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의 도쿄올림픽 마지막 경기가 끝난 뒤 나온 인터넷 반응이다. 여자 배구대표팀 주장 김연경은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에서 30득점 이상을 4차례나 기록한 선수가 됐다.

매경기마다 리더의 품격을 보여준 김연경 주장을 비롯한 선수들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낸 성숙한 시민의식이 돋보인 올림픽이었다.

근대5종 4위, 브로맨스의 정석 정진화
    
근대 5종은 사격, 펜싱, 수영, 승마, 육상 등 한 선수가 5개 종목을 소화하며 승부를 가린다. 경기를 시청한 많은 국민이 처음으로 근대5종을 알았다며 선수들의 투혼에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우리 선수끼리 동메달 경쟁이었던 근대5종 종목에서 메달을 딴 전웅태에 이어 4위를 한 정진화는 메달을 획득한 동료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우리 선수끼리 축하하고 위로하는 것을 지켜보던 많은 국민도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정진화 선수는 귀국 후 가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4위를 한 소감을 밝혔다.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많은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결승선에 들어왔을 때 크게 느꼈던 감정은 ‘우리 너무 고생했다. 축하한다’였다.

이어서 “4위라는 건 아쉬운 등수기도 하지만 제가 생각했던 4위는 1, 2, 3등을 빛낼 수 있는 순위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4위는 아쉽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근대5종을 더욱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답했다. 자신이 참가하는 종목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한국 올림픽 대표팀은 이번 대회 12개 종목에서 ‘안타까운 4위’를 했다. 그리고 국민은 4위를 한 선수와 팀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금메달 숫자로 국가 순위를 정하는 기준에 집착해 은메달이나 동메달마저 푸대접했던 과거와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유쾌하고 발랄한 올림픽 4위 “Z세대”의 반란에 영락없는 꼰대 세대인 나도 행복한 올림픽을 보낼 수 있었다. 다시 2024 파리올림픽을 준비하는 4위들에게 또 한 번 반전의 결과가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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