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5급공채 폐지 다시 논의할때 됐다
고시순혈주의 편리하지만, 공직경쟁력은↓
7,9급 출신은 과장 자리도 이젠 흔치 않아
땜질처방보다는 근본 문제 논의 시작할 때

일본 도쿄의 주요 부처들이 몰려 있는 일명 '가스미가세키'. 공생공사닷컴DB
일본은 2012년 우리의 5급 공채에 해당하는 1종 간부시험을 없애는 등 공직채용제도를 개편했지만, 우리는 행시 대신 5급 공채로 이름만 바꿔서 11년째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일본 도쿄의 주요 부처들이 몰려 있는 일명 '가스미가세키'. 공생공사닷컴DB

그동안 개방형 공직을 늘리고, 정부헤드헌팅 방식을 도입하는 등 공직에 민간 전문가 등을 수혈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덧칠을 하고, 현란한 이름을 붙인다 하더라도 ‘고시 순혈주의’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고시(5급 공채) 우선주의’는 이미 공직사회 내에 시스템화돼 버렸다.

이러니 7급이나 9급 시험에 합격해 1, 2급 관리자로 오르는 사례는 오히려 더 줄었다. 예전에는 비고시 출신 국장급 자리를 한 두 개쯤 내어주기라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배려는 사라진 지 오래고, 대부분 고시 출신들 몫이 됐다.

자리를 주려 해도 사람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중간간부 때부터 비고시를 키우지 않았으니 사람이 있을 리 있는가. 요즘은 부처에서는 국장급은 고사하고, 비고시가 갈 수 있는 과장급 자리도 씨가 말라가고 있다.

“공직 말년에 과장 보직이라도 달고 싶으면 그런 과에 오래 있으면 안 돼 빨리 옮기세요. 그 과는 고시 출신들 몫이잖아.” 이게 중앙부처 비고시 출신 공무원이 선배들로부터 듣는 한번쯤은 꼭 듣는 얘기이다.

실제로 비고시 출신이 갈 수 있는 과장 자리는 손에 꼽을 정도다. 운영지원과장이나 감사나 복무점검 분야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몇 개 자리를 두고, 비고시 출신들이 박터지게 싸운다.

개방형으로 내놓은 국·과장 자리도 공무원이 감당하기 어려운 의사나 법률가, 외교전문가 등만 민간인만 공모하도록 하고, 나머지 개방형 직위는 공무원과 민간인이 같이 경쟁하도록 하고 있다.

어쩌다가 새로운 제도가 도입돼 과장급으로 입직한 민간 출신 공무원이 부이사관으로 승진하면 생색내기는 극에 달한다. 언론은 뉴스가 되니 큼지막하게 쓴다. 팩트지만, 과대포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공직개혁이 좌절된 2010년으로부터 꼭 11년이 흘렀다. 본질은 외면한 채 치장과 곁가지로 공직개혁을 포장할 때는 아니다.

이제 5급 공채 폐지를 포함한 채용제도 전반과 공직개혁을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결국, 길은 5급 공채의 폐지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고인 물은 썩고 순혈주의는 조직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기원전 6세기 인구 10만명도 안 되던 로마가 지중해의 패권자가 되고, 인구 100만명에 불과했던 몽골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속주민을 시민으로, 자신의 부족으로 받아들이는 포용성과 다양성, 그리고 경쟁이었다.

요즘은 ‘공시생’이 몰리면서 5급과 7급, 9급의 실력 차이도 크게 줄었다. 9급 시험 떨어지고, 7급 된 공무원도 있고, 말은 안 하지만, 7급 떨어지고 5급 공채 합격자도 있다. 5급 준비하다가 7급으로 하향 지원해 합격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판에 그들만의 리그를 두고, 시험 등급에 따라 종착점이 정해지는 한국판 ‘육두품제’는 손보는 게 당연하다. 현장 경험이 있는 7, 9급 출신과 5급 공채 출신이 경쟁하고 보완할 수 있는 구도라면 좋겠지만, 그런 구도는 이미 깨어진 지 오래다.

더 늦기 전에 땜질식 처방만 하기보다는 이제 5급 공채의 폐지를 테이블 위에 올릴 때가 됐다는 것이다.

김성곤 선임기자 gsgs@public2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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