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선 의도적 도발에 부상…‘전상’ 판정
보훈처는 “규정에 없다” 공상’으로 뒤집어
하 예비역 중사, “내 명예 찾아 달라” 청원
문 대통령 “탄력적 해석여지 살펴보라” 지시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도발 1주기를 맞은 2016년 8월 4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서 열린 '북한 DMZ 지뢰도발 응징 1주년 기념행사'에서 당시 수색작전에 참여한 정교성(왼쪽부터) 중사, 김정원, 하재헌 하사, 장준규 육군 참모총장 등 참석자들이 묵념을 있다. 서울신문 자료 사진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도발 1주기를 맞은 2016년 8월 4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서 열린 '북한 DMZ 지뢰도발 응징 1주년 기념행사'에서 당시 수색작전에 참여한 정교성(왼쪽부터) 중사, 김정원, 하재헌 하사, 장준규 육군 참모총장 등 참석자들이 묵념을 있다. 서울신문 자료 사진

국가보훈처가 2015년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두 발을 잃은 하재헌 예비역 중사에 대해 최근 ‘전상’(戰傷)이 아닌 ‘공상’(公傷) 판정을 내려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당사자인 하 예비역 중사가 “목함지뢰 도발 사건, 억울하다…저의 명예를 지켜달라”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파문이 일자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법조문 탄력적 해석 여지를 살펴보라”고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일각에서는 “이런 때 필요한 것이 적극행정인데 정작 필요할 땐 적극행정을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17일 보훈처와 청와대 등에 따르면 보훈심사위원회는 지난달 7일 회의에서 하 예비역 중사에 대해 공상 판정을 내리고 이를 같은 달 23일 본인에게 통보했다.

하 예비역 중사는 2015년 8월 4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수색 작전 중 북한군이 수색로 통문 인근에 매설한 목함지뢰가 폭발해 양쪽 다리를 잃었다.

중상을 입은 하 예비역 중사는 치료를 받고 국군의무사령부 소속으로 근무하다가 “장애인 조정 선수로서 패럴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꿈을 이루겠다”며 지난 1월 31일 군복을 벗었다.

육군은 하 예비역 중사가 전역할 당시 ‘적이 설치한 위험물에 의해 상이를 입거나 적이 설치한 위험물 제거 작업 중 상이를 입은 사람’을 전상자로 규정한다는 내부 규정에 따라 전상판정을 내렸다. 하 예비역 중사도 당연한 결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보훈처 보훈심사위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하 예비역 중사의 부상을 ‘전상’으로 인정해줄 수 있는 명확한 조항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공상으로 판정했다.

‘전상’은 적과 교전이나 무장폭동 또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행위, 전투 또는 이에 준하는 직무수행 중 입은 상이를 뜻한다. 반면 ‘공상’은 교육·훈련 또는 그 밖의 공무, 국가 수호·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 등의 과정에서 입은 상이를 의미한다.

보훈심사위는 그동안 군에서 발생한 대부분 지뢰사고에 대해 공상판정을 해온 사례를 참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훈처가 하 예비역 중사에게 보낸 (공상판정) 문서에는 ‘일반 수색작전 중에 지뢰를 밟은 것과 등 봐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하 예비역 중사는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다리 잃고 남은 거는 명예뿐인데 명예마저 빼앗아 가지 말아 달라”, “끝까지 책임지시겠다고들 했는데 왜 저희를 두 번 죽이느냐”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또 “공상자와 전상자 별차이 없다. 5만원 차이난다하시는데 나는 돈이 아니라 명예가 중요하다”며 섭섭함을 털어놓았다.

그는 부상자를 전상으로 판정한 천안함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했다. 군 안팎에서도 천안함 폭침사건과 비교했을 때 형평이 맞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혼선은 군인사법과 유공자법의 규정이 다른 데서 비롯됐다. 군인사법에는 명확한 규정이 있는데, 유공자법에는 이게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북한의 의도된 도발로 인한 것이냐 일상적인 순찰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냐는 점이다.

당시 군은 천안함 폭침과 마찬가지로 목함지뢰 사건 역시 북한의 도발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육군도 하 예비역 중사를 전상 처리한 것이다.

목침 도발을 의도된 도발로 규정했으면 이는 ‘적이 설치한 위험물에 의해 상해를 입은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볼 때 “보훈심사위원회가 법의 탄력적 해석에 인색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유공자법에는 없더라도 하 예비역 중사가 군인사법에 의해 전상 판정을 받은 사실을 감안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논란이 되자 “독립심사기구인 보훈심사위의 내·외부 법률전문가 등이 위원(11명)으로 참여해 유공자법에 규정된 심사기준 및 절차에 따라 심도 있는 논의 과정을 거쳤다”며 “과거 유사한 지뢰폭발 사고 관련 사례 역시 종합검토한 뒤 의결했다”고 설명했던 보훈처는 문 대통령이 “탄력적 해석 여지를 살려보라”고 지시하면서 입장이 난처해졌다.

“하 예비역 중사가 이의신청한 만큼, 이 사안을 본회의에 올려 다시 한번 깊이 있게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논란은 이미 커질 대로 커진 뒤다. 보훈처 내에서는 “규정대로 한 심사위원회를 탓할 수는 없지만, 좀 더 유연하게 해석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편, 이의신청과는 별개로 이번 기회에 국방부의 군인사법 시행령과 보훈처의 유공자법 시행령에 있는 전상과 공상(규정)에 대한 일부 차이를 손보는 등 법령 개정작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성곤 선임기자 gsgs@public2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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