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인의 좌충우돌 사회적응기(14)

이서인 시인(여자 정훈장교 1기)
이서인 시인(여자 정훈장교 1기)

최근 각종 언론에서는 74세 여배우의 오스카 수상 소식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바로 ‘미나리’ 영화의 조연을 맡은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소식이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오스카 감독상을 받은 데 이어서 올해 윤여정 배우의 수상 소식은 그동안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고구마를 몇십 개 먹은 것 같이 답답하고 지쳐 있던 국민의 마음에 청량한 사이다를 선사한 느낌이다. 

적지 않는 나이, 아니 이미 일흔을 훌쩍 넘긴 여배우가 오스카상을 거머쥔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유쾌한 74세 여배우의 꿈 

지난 4월 25일, 미국 LA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로 64년 만에 아시아 출신 여배우로는 역대 두 번째로 여우조연상 수상자가 되었다.

푸른 색의 단아한 드레스에 목걸이도 하지 않은 채 수상대에 섰지만 55년간 배우 경력에서 나온 자신감 있지만 겸손하고 유머 까지 담긴 그녀의 수상 소감은 “오스카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는 평(APTN)이 잇따랐다.

그녀의 꿈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열등의식으로 시작했다. 먹고살려고 했을 뿐이다. 대신 열심히 했다.” “자꾸 일하러 나가라고 종용하는 두 아들 잔소리에 열심히 일했더니 이런 상을 받게 됐다”고 윤여정 배우는 말했다.

이혼녀라는 세상의 편견으로 당시에는 카메라 앞에 서기도 어려워 생계형 배우를 자청했던 윤여정 배우는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제 세계가 인정하는 대배우로 우뚝 섰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젊은이들도 윤 배우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윤며들다(윤여정에 스며든다는 뜻)’는 말부터 “어우 얘, 증말” 같은 ‘휴먼여정체(한글 프로그램에 쓰이는 휴먼명조체를 패러디한 말)’라고 불리며 그의 유쾌하면서 솔직담백한 말투가 온라인에서 재빠르게 소비되고 있다. 그야말로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의 대명사로 떠오른 것이다.

그는 몇 년 전 TV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에 출연할 때 마흔 살 이상 차이 나는 젊은 배우들과 소통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이 센스가 있으니 들어야죠. 우리는 낡았고 매너리즘에 빠졌고 편견을 가지고 있어요. 난 남북통일도 중요하지만 세대 간 소통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윤여정 배우의 연기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열린 가치관이 전 세계 배우들이 꿈꾸는 오스카상 수상과 함께 젊은이들의 덕질을 받게 된 원동력이 아닐까?

행복한 98세 피아니스트의 꿈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중 눈이 번쩍 뜨이는 장면이 있었다. ‘98세 피아니스트 김덕화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에 수피아 여학교에 입학하여 교실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1937년 신사 참배 거부로 일제에 의해 학교가 강제 폐교되자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할머니의 꿈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 김덕화 할머니는 결혼을 했으나 남편이 일찍 사고로 죽게 되었고 혼자 몸으로 자식들을 키우느라 피아니스트의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그러나 할머니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던 피아니스트의 꿈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70살이 넘어 할머니는 다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독학으로 피아노를 시작하여 매일 연습한 결과 지금은 아리랑을 비롯한 가요, 찬송가 등을 능숙하게 연주한다.

올해로 98세가 되었지만, 하루하루를 음악처럼 살아가는 할머니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여 SNS 영상을 찾아보며 연습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곡은 가수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이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할머니의 남은 인생은 더이상 눈물로 보내는 일생이 아닌 매일 행복을 꿈꾸는 멋진 피아니스트의 삶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된다.

제2의 청춘을 꿈꾸다 

요즈음 내 주변에는 인생 1막의 직업과는 전혀 무관하게 인생 2막의 꿈을 펼쳐가는 지인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방송국에서 평생을 일했던 친구는 그동안의 여행 수기를 모아 2년 전 책을 냈고 얼마 전에는 캘리그라피를 시작했다. 군인으로서 30여 년을 헌신해온 동기생 두 명은 요즈음 드럼에 빠져서 매일 행복한 두드림을 하고 있다.

평생 간호사로 아픈 환자들을 위해 살았던 여고 동창은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간간이 전시회도 하고 앞으로는 포토에세이를 쓰고 싶다고 한다. 나는 옆에서 열심히 써서 내년 회갑 때는 책을 한 권 내자고 부추기고 있다.

28년 동안 출판사를 경영해온 동창은 2년 전부터 고향에 있는 시골집들을 스케치하며 예쁜 색깔 지붕을 머리에 이고 텃밭이 정겨운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역시 나는 옆에서 열심히 그려서 내년에 회갑 기념 전시회를 하자고 만날 때마다 꼬드기고 있다.

며칠 전 나도 <지금 너를 마중 나간다>는 생애 첫 시집을 출간했다. 현역 군인 시절에는 간간이 습작만 해왔는데 전역을 하기 전 시인으로 등단을 했고 이제야 버킷리스트에 들어 있던 개인 시집을 세상에 내어놓게 되었다.

꿈을 계속 꾸는 한 나이와는 무관하게 그는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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