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달 호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행안부 이북5도 사무국장)

노경달 행안부 이북5도위원회 사무국장
노경달 행안부 이북5도위원회 사무국장

방과 후 학교 운동장은 나의 놀이터였다. 해질 무렵이 다가와서야 놀이는 멈춘다. 

다방구(술래잡기) 놀이를 끝내고 숙이 누나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오후반 교실까지 배급이 끝나면 식빵이 남는다. 그 식빵의 이름은 ‘강낭빵’이다.

숙이 누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강낭빵 3개씩을 다방구 놀이 후 교실로 빵 배달 봉사한 아이들에게 나눠준 것이다.

나의 첫 봉사활동의 인센티브는 그 강낭빵 배달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만 48년이 흘렀다.

식빵 나르기 봉사를 불씨 삼아 다문화수용성을 높이는 봉사자가 되고자 한국어 교원 자격증과 다문화 자격증 그리고 다문화 관련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식빵 인센티브에서 벗어나 행복감 인센티브를 맛보는 흥미로운 일감이 될 것 같아서였다.

결혼이민자 엄마가 일터에서 돌아오기 전에 올 데 갈 데 어울릴 곳 없는 다문화 아이들의 돌봄 봉사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한국어를 가르쳐 주고, 결혼이민자 아이들에게 그들의 엄마 나라 문화도 제대로 전해주고자 하는 소박한 봉사일 뿐이다.

어쩌면 훗날 우리들의 소박한 봉사가 그들의 가슴 속에 ‘넉넉한 식빵’으로 남아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주민들의 국경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그들을 받아들인 우리의 마음과 제도에만 국경이 남아 있다. 이제는 그것은 낮추어야 할 때이다. 글로벌 21세기 시대에 융합은 보편화하고, 그야말로 다양성과 개방성이 자산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이주정책지수(MIPEX·Migration Integration Policy Index)는 세계 18위이다. 캐나다(4위), 뉴질랜드(5위), 미국(6위), 호주(9위)보다 한참 뒤에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외국인 근로자, 외국국적동포, 결혼이민자, 귀화자 및 외국인 주민 자녀 등의 급격한 증가로 인하여 문화, 인종, 민족적 다양성이 확대되고 다양한 유형의 외국인 주민 200만이 공존하는 다문화 시대를 피할 수는 없다. 

이 나라를 지켜온 공무원들에게 동기부여를 바탕으로 다문화를 올바르게 수용하는 작은 봉사의 감성을 자극할 때가 되었다.

공무원들이 앞장서서 사회통합의 지혜를 모아간다면 힘들지만 잘 견디고 있는 코로나19를 극복하듯이 새로운 일상이 곧 도래할 것이다.

정부도 다문화가족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예방하고 사회구성원이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업무를 재설계하는 등 대전환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1300여 종의 민원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정부24’는 코로나19 극복에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 조례 등에서 정하고 있는 민원서식 일부는 여전히 다문화수용성이 부족하다.

‘성명 기재란’의 경우 많은 서식이 한글 세 글자 기준으로 제시되어 있다. 우리나라 주민 입장에서는 성명을 기재할 수 있지만, 세 글자 한국인 성명보다 글자 수가 많은 베트남 결혼이민자 등에게는 배려심이 없는 것이다. 하루빨리 업무를 설계하는 공무원의 다문화수용성을 차분히 제고시켜 나가야 한다.

마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역에 내리면서 느닷없이 식빵 타령을 하고 보니, 오늘의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머지않아 코로나19를 물리치고 국경을 넘는 발걸음도 한층 자유로워질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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