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없어져 겪었을 국민 불편은 돈으로 따져봤을까
“국민 위한 새 공적 역할 모색” 노조 얘기 귀담아 들어야

지난해 10월 24일 우정사업본부 앞 우본공무원노조 지부장대회에서 현장 지부장들이 현장의 의견을 리본에 써서 묶어 놓은 모습. 우본공무원노조 제공
지난해 10월 24일 우정사업본부 앞 우본공무원노조 지부장대회에서 현장 지부장들이 현장의 의견을 리본에 써서 묶어 놓은 모습. 우본공무원노조 제공

영락없는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다.

올해 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산업본부(우본)는 4년간 직영 우체국의 절반 수준인 677개를 위탁국으로 전환해 비용도 절감하고, 창구망도 합리화하겠다는 계획을 야심 차게 내놨다.

노조가 성명을 내고, 국회 앞에 천막을 치는 등 강력히 반발했다. 정치권도 대국민 서비스 저하를 우려했다. 이후 양측이 협의 추진키로 하면서 소강 국면에 접어들긴 했지만, 새해 벽두 우본 종사자들에겐 날벼락 같은 소리였다.

1년이 지난 지금 우본이 추진한 우체국 폐국의 성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3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본공무원노조(위원장 이철수)에 따르면 올 들어 우본은 50개 우체국을 폐국, 이를 통해 15억원의 비용을 절감했다.

이철수(왼쪽) 우본공무원노조 위원장과 김황현 사무총장
이철수(왼쪽) 우본공무원노조 위원장과 김황현 사무총장

이는 당초 우본이 제시했던 우체국 하나를 폐국하면 1억 5000만원의 비용이 절감할 수 있다는 주장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우본 주장대로라면 50개국을 폐국했으니 75억원의 비용 절감효과가 나타나야 하는데 현실은 5분의 1인 15억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거꾸로 50개의 우체국이 문을 닫으면서 국민이 겪은 불편은 돈으로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굳이 삼국지의 마속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군사전은 하책이요. 싸우지 않고 마음을 얻는 게 상책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욕 얻어먹고, 직원들의 눈물에 눈감으면서 폐국을 해 얻는 이익과 우체국을 존치해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이 상책이고 하책일까.

우본공무원노조는 반문한다. “4만 3000여 명이 종사하고 있고 약 9조원의 예산을 운용하는 우본에서 15억원이라는 절감액으로 대체 무슨 효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인가.”

물론 우본이라고 고민이 없을 리 없다. 행정안전부의 디지털 고지·수납 공통기반 구축으로 우편물량(세입)이 2019년 기준 전체 전자고지 대상우편물 58.3%가 디지털로 전환될 판이라고 한다. 우체국 폐국 등을 추진하며 제시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우체국 폐국은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해야 할 보편적 서비스의 후퇴로 이어지고, 시골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국민은 더 비싼 요금으로 우편서비스를 이용하는 상황이 초래된다고 노조는 반박한다.

이는 곧 우본의 기반 가운데 하나인 우체국의 서민금융으로서의 위상도 무색해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우본공무원노조는 “한국우정의 새로운 비전과 공적 역할을 모색하라”고 조언한다. 민간기업과 무한 경쟁하는 택배사업에서 벗어나서 정부의 복지정책과 연계된 공적 배달사업 발굴, 전자우편사서함 도입,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는 중·저신용(4등급 이하) 서민을 위한 우체국 중금리 대출 도입은 구체적인 방안이다.

또 비대면시대의 은행 점포 폐점에 따른 우체국망 활용 등 지금은 우정사업의 역할과 기능을 재편해 차별화된 한국형 우정사업의 모델과 비전을 수립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우본공무원노조는 “비용절감 효과가 미약한 우체국 폐국 및 손쉬운 인력 구조조정에는 강력히 맞서겠다”면서도 “새로운 비전 모색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2~3년간 머물다 가는 본부장으로서는 가시적 성과에 마음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폐국은 눈에 보이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본의 먼 장래를 위해서는 손쉬운 길보다는 먼걸음도 필요하다. 나아가 노조의 얘기도 흘려듣기보다는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우본에서 잔뼈가 굵은 경영자라면 더욱 그렇다고 할 것이다.

김성곤 선임기자 gsgs@public2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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