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로 알아보는 적극행정(8)

정부는 공무원들의 적극행정을 독려 중이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적극행정을 하다 수사나 감사의 대상이 되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움츠러들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적극행정위원회 등을 거쳐 적극행정을 하면 감사 면제나 법적으로 면책을 해주기로 했다. 또한 인사혁신처는 적극행정 페이지인 ‘적극행정 온’(mpm.go.kr/proactivePublicService)에 적극행정 우수사례를 업데이트 하고 있다. 인사혁신처가 추천하는 ‘2019 적극행정 우수사례’를 소개한다.

한정일 경감이 경찰 수어 길라잡이를 붙이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한정일 경감이 경찰 수어 길라잡이를 붙이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어느 한적한 골목에서 청각장애인 A씨가 30대 남성으로부터 근처의 폐가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사건 직후 가까스로 경찰서를 찾아가 사건 경위를 진술하던 중 예상치 못한 문제에 직면했다. 필담이 불가능했던 A씨가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과정이 무척이나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A씨는 법률 상담을 받기 위해서는 수어 통역사를 직접 섭외해야 했고, 수어 통역사를 어렵사리 제공받았지만 설명하는데 또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정확한 단어를 표현하는 수어가 없어 수어 통역사나 조사관이 A씨의 말을 잘 인지하지 못했고, 잘 이해하지 못한 한 조사관이 의문을 제기하는 일도 있어 A씨는 마음의 상처까지 입었다.

한국에 청각장애인은 34만명.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이 때 경찰인재개발원 생활치안센터 한정일 경감이 나섰다.

한 경감이 성폭력특별수사대에 근무할 때 필담이 불가능한 청각장애인의 신고를 접수하는 과정에서 수어를 해석하지 못해 범인이 도주하거나 증거물이 훼손되는 등 문제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찰 수어 길라잡이’를 개발, 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예산과 인력이었다. 영업사원이 된 것처럼 지자체와 유관기관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아 도움을 요청했다. 협조가 잘 되는 기관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수어에 대한 전문지식도 부족해 전문가들의 협조를 구해야 했다. 또한 수어에도 사투리가 있어 전국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표준화하는 과정도 거쳐야 했다.

우선 촬영장비와 수어통역사, 필요한 단어의 선정이 필요했다. 시청‧구청의 방송국에서 방송장비를 협조받았고, 서울시청 사회복지과와 농아인센터, 서울시 청각장애인협회와 강동구청 농아인협회에도 찾아가 도움을 구했다.

또한 법률용어와 경찰에서 쓰는 전문용어 38개의 단어를 추렸다. 살인, 강도, 강간, 절도 등 일반인이 사건‧사고 이야기에서는 많이 볼 수 있지만, 정작 청각장애인들은 수어로 표현 할 수 없는 단어였다.

여러 기관의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수어를 개발하고 사진을 찍었다. 한 경감은 직접 수어를 배우가며 모델을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수어는 표정과 미세한 표현력도 무척이나 중요했기에 강동구 수어통역센터 직원을 모델로 촬영을 진행했다.

한 경감이 단어를 설명하면 모델이 손짓과 표정으로 단어를 표현했다. 그러면 전문가들이 의견을 조율했다.

이렇게 표준화된 수어가 제작됐다. 이는 선진국에도 없는 사례였다.

한정일 경감은 “흡사 나쁜 결과가 나올까 두려워 아무일도 하지 못한다면 공직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적극행정이란 국민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생각하고 이를 찾아 채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송민규 기자 song@public2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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