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위원회, ‘공공기관 지속발전 합의문’ 발표
공공기관 운영법 개정·직무급제 논의 노력 명문화
공직사회 등 “직무급제 도입으로 이어지나” 촉각
공공운수노조 등 노동계 임금체계 개편 결사반대

정부가 민간분야에 직무급제 도입을 장려하면서 공무원에게도 이를 확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정부부처 성과평가 워크숍 장면. 인사혁신처 제공
정부가 민간분야에 직무급제 도입을 장려하면서 공무원에게도 이를 확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정부부처 성과평가 워크숍 장면. 인사혁신처 제공

공공부문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수 있게 법 개정이 추진된다.

현재 호봉제가 대부분인 공공부문 임금체계를 직무급제로 바꾸기 위한 논의가 공식화된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공공기관위원회는 25일 이런 내용의 ‘공공기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합의’를 발표했다.

노동계가 요구하는 노동이사제 법제화와 사용자 측이 기대하는 직무급제를 서로 주고받았다. ‘장군멍군’인 셈이다.

합의 자체가 결실…갈 길은 멀어

공공기관위 위원장인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합의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의 참여형 거버넌스와 지속 가능한 임금 체계 개편에 대해 공공기관 노동조합과 정부의 역사적인 대타협이라고 평가할 만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경사노위에서 이 정도 합의를 이룬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자위하지만, 실제로 노동이사제나 직무급제 도입까지는 갈 길이 멀어도 한참 멀다.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해서는 공공부분에서도 입장이 갈리는데다가 직무급제는 노동계에서는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직사회는 공공부문 직무급제에 민감하다. 현재 5급 이상에 적용하고 있는 성과연봉제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마당에 직무급제 도입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임금피크제 손질은 덤

이날 합의문은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해 국회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 논의를 조속히 실시할 것을 건의한다”고 담고 있다.

또 노동이사제가 도입되기 전에는 “공공기관 노사는 자율 합의에 따라 근로자 대표의 이사회 참관과 의장 허가 시 의견 개진이 가능하도록 하고 노동조합이 적합한 인사를 추천하는 경우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등 현행법상 절차를 거쳐 비상임이사에 선임 가능하도록 함께 노력한다”고 권고했다.

김종갑 한전 사장이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한 생각을 피력한 페이스북 화면
김종갑 한전 사장이 지난 8월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페이스북 화면

노동이사제는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참석하도록 하는 것으로,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다. 서울시와 경기도 등 일부 자치단체 산하 공기업 등에서 시행 중이다.

한전 등 일부 공기업은 법만 통과되면 곧바로 시행에 들어갈 태세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지난 8월 4일 페이스북에 “공기업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고려한다면 손들고 해보고 싶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법적으로 뒷받침되면 해보겠다는 것이다.

법 개정 시 한전 등 공기업 노동이사제 도입 전망

금융 공기업 등도 노동이사제 도입이 적합한 업종으로 분류된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상정됐지만, 처리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하지만, 여권이 180석을 가진 지금의 국회 지형에서는 법제화 물살이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이밖에 노동계에 준 떡 가운데 하나가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인력 운영 등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임금피크제 대상 인력을 중소·벤처기업 지원 등에 활용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것을 제안했다. 내용은 그럴듯하지만, 실제 실효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정부부처 직무급제에 끊임없는 러브콜

기획재정부와 노용노동부 등은 꾸준히 직무급제 도입을 시도해왔다. 호봉제는 근속연수가 쌓이면 매년 기본급이 자동으로 인상되는 구조로, 같은 직무인데도 호봉에 따라 임금에 차이가 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노동부는 지난 1월 13일 직무 능력 임금체계인 직무급을 중심으로 한 임금체계 변화 필요성 및 절차·방식, 고려사항 등을 담은 ‘직무중심 인사관리 따라잡기’ 설명 자료를 제작, 배포한 바 있다.

관련 브리핑에서 당시 임서정 고용부 차관(현 청와대 일자리 수석)은 “정부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임금의 과도한 연공성을 줄이고 직무와 능력 중심의 공정한 임금체계로 개편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그의 중량감 등을 감안할 때 직무급제 도입을 위한 길 닦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한동안 수면 아래에 머물다가 이번 경사노위 합의문에 들어갔다.

선 노동이사제 법제화 후 임금체계 개편

합의문을 작성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경사노위에 불참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공공기관위의 임금 체계 개편 합의에 즉각 성명을 내고 비판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이날 성명에서 “직무 중심 임금 체계 개편은 기획재정부가 일방적으로 제시한 내용만 담아 추진될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노동자의 절반이 참여하지 않은 임금체계 개편의 원칙과 방향을 상실한 합의다”며 “일방 합의는 무효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면서 노동이사제를 먼저 도입한 뒤 임금체계 개편은 속도조절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사회적 합의 기구인 경사노의의 취지와 부합하지 않아 정부로서도 추진이 자유롭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래저래 노동이사제와 임금체계 개편은 이제 갓 걸음을 뗀 수준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성곤 선임기자 gsgs@public2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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