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겸수 강북구청장 비서에게 지시했지만 공무원 동원 지시 증거 없어”
지방선거 때 공약안 전달…기획예산과장 직무·직위 이용 금지 위반
“현직 구청장 비서 요구인데 거절할 공무원 몇이나 되겠나” 동정론도
“시군구 공적업무와 선거 지원업무 구분 모호…판결 반면교사 삼아야”

그래픽 이미지 픽사베이
그래픽 이미지 픽사베이

공무원 정치기본권이 관심사가 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공직선거법 위반 관련, 대법원의 한 판결이 공직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요약하면 구청장은 벌금 90만원으로 직을 유지했는데, 이를 도와준 과장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250만원의 벌금형을 받고 해임됐다.

구청장은 비서에게 홍보물 제작을 지시했지만, 이를 구청 공무원에게 시키라고 한 증거가 없어서 그 부분은 무죄 판결을 받았고, 비서의 요청을 받고, 관련 자료를 건넨 기획예산과장은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외양만 놓고 보면 구청장 선거법 위반인데 거기에 연루된 부하직원이 더 많은 벌금형을 받은 것이다.

관련 기사에는 “ㅇㅇ은 90만원 졸개는 200만원” 등 판결을 수긍하지 못하겠다는 댓글 등도 달렸다.

우선 대법원 확정 판결부터 보자.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겸수 강북구청장에게 벌금 9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이로써 박 구청장은 구청장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선출직 공무원은 공직선거법 또는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혐의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 또는 징역형을 확정받아야만 당선 무효가 되는데 90만원으로 확정됐기 때문이다.

2선을 하고 3선을 노리고 있던 박 구청장은 2018년 지방선거 당시 구청장으로 재직하며 선거를 준비하면서 구청 공무원들에게 선거 공보물과 공약 관련 문건 등을 제작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박 구청장의 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보고,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으나, 2심은 혐의 중 일부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보고 무죄로 판단해 90만원을 선고했다.

박 구청장이 별정직 7급인 김모 비서에게 선거공약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은 맞지만, 직접 공무원들의 도움을 받아서 만들라는 지시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이 부분 무죄의 배경이었다.

공무원들의 도움을 받은 것은 맞지만, 공무원을 동원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당시 김모 비서의 요청을 받고, 부하 직원에게 관련 내용을 달라고 해 이를 건네 받은 황모 과장은 1심에서 300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뒤 2심에서 250만원으로 감형된 게 대법원에서 그대로 굳어진 것이다.

본말이 전도된 것처럼 보이지만, 황 과장은 빠져나갈 여지가 없었다. 이번 사건에 황 과장을 포함해 공무원 5명이 연루됐지만, 황 과장이 가장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정치 관계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등 정치적 의사표시만 해도 처벌을 받는 게 공직선거법인데 여기서 몇 걸음 더 나아가 직접 부하직원에게 지시를 하고, 이를 토대로 공약 검토 문서를 만들어서 건넸으니 명백한 공직선거법 위반인 것이다.

과장의 직위에서 자신이 맡은 기획예산 관련 직무를 활용해 선거를 도왔기 때문이다. 물론 “2선째인 현직 구청장의 수행비서가 자료를 요청하는데 거절할 공무원이 있겠느냐”는 동정론이 없진 않지만, 결과는 참혹하다.

당시 황 과장의 지시를 받은 직원 중 일부는 감경이 이뤄진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70만원에서 250만원의 벌금형이 확정됐다. 벌금형과는 별개로 해임되거나 감봉 등의 징계도 받았다.

지자체의 한 공무원은 “기초지자체에서는 공적 업무와 시군구청장 업무의 구분이 모호한 경우가 있지만,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걸리면 단체장이 이를 보호해줄 수 없다”며 “이번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김성곤 선임기자 gsgs@public25.com

저작권자 © 공생공사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