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인의 좌충우돌 사회적응기(11)

이서인 시인(여자 정훈장교 1기)
이서인 시인(여자 정훈장교 1기)

올해는 6·25전쟁 70주년이자 여군 창설 70주년 이기도 하다.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누란의 위기에 처하게 되자 여성들이 부지깽이라도 들고 조국을 지키자며 여자의용군교육대에 자원하여 입대한 것이 여군의 효시이니 6·25전쟁과 여군은 불가분의 관계이기도 하다.

지난 9월 6일이 바로 여군 창설일이었다. 올해는 70주년이라 특별히 의미가 있는 날이었지만,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기념행사도 생략해서인지 쓸쓸한 느낌과 함께 위국헌신하신 여군 선배님들께도 송구스러울 뿐이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제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제

함부로 흐트러지게 걷지 마라

오늘 남긴 내 발자국이

마침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1986년 여자정훈장교 1기로 임관하여 신참 소위로 군인의 길을 걷게 된 나의 수양록 첫 장에 적혀 있던 글귀이다.

서산대사의 명언으로 널리 알려진 글이지만, 당시 나에게는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으로 다가온 글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이기에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조심스럽고 어려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나와 우리 동기생들은 군의 계획도 모른 채 시한부 군대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전까지 여군은 여군 병과와 간호 병과로 임관하여 주로 행정 업무와 간호 업무라는 제한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육군에서는 1986년 최초로 정훈병과에서 여자 장교 6명을 모집하여 시험적으로 운영하게 되었고 제도의 성공 여부에 따라 여군의 확대 여부도 결정되도록 계획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4년간 시범 운영 후 1990년, 기존의 여군 병과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6개 병과로 확대되어 남군과 동일하게 임무 수행을 하게 되었다. 이후 30년 동안 점진적으로 전 병과 및 각 군 사관학교와 ROTC, 삼사관학교가 여성에게도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이제 군에 금녀(禁女)의 벽은 사라지게 되었다.
 
여군, 별을 달다

군에서 장군으로 발탁되는 것을 흔히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밤하늘에 무수히 반짝이는 것이 별이지만 그것을 어깨에 달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표현하는 말이다.

“육·해·공군을 통틀어 처음으로 여군 소장이 탄생했습니다. 여성 최초로 이른바 투 스타 장군이 된 강선영 육군 소장은 어제 육군 항공작전사령관에 취임했습니다. 항작사령관에 여군이 임명된 것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2019년 11월 뉴스로 70년 여군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일이었다. 또한 2001년 여군이 처음으로 장성으로 진급한 이후 19년 만의 성과이기도 하다.

강 소장의 임관 기수인 여군 35기는 나에게도 각별한 후배였다. 1990년 전방 생활을 마치고 보직을 받은 여군학교에서 교관으로 교육한 첫 기수이자 보병, 정보, 화학, 경리, 부관 등 남군들과 동일한 병과로 임관한 첫 여군 기수이기 때문이다.

각 병과 최초라는 타이틀을 걸고 험난한 군인의 길을 걷게 될 후배들에게 나는 정신교육 첫 시간에 그 유명한 서산대사의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제’를 소리 높여 외쳤다.

강선영 소장은 취임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최초로 이뤄놓은 것이 여군들이 할 수 있는 한계나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라면서, “내가 못하면 나의 한계로 끝나지 않고 후배들에게 한계가 되었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순간들도 많았지만, 극복하려고 노력해왔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강 소장은 내가 목청을 높혀 열강했던 정신교육 첫 시간 강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을까? 

양(養)적 확대에서 질(質)적 성장으로
 
여군의 비중 확대는 국방개혁 2.0의 주요 과제 중 하나이다. 1990년 당시 간호병과를 제외하고 총 99명의 여군 장교와 부사관으로 재출범했던 여군의 숫자는 30년이 흐른 지금, 지난 6월 30일 기준 1만 3449명이며 계급별 여군 비중이 장교는 9%, 부사관은 6.4%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양적 확대도 중요하지만, 질적 성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질적 성장의 핵심 고리로는 가장 먼저 각 군 사관학교 여생도 비중의 증대다. 1997년 공군사관학교가 처음으로 여성에게 문을 개방한 이래 각 군 사관학교에서 매년 여생도를 모집하고는 있지만, 2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체 모집인원의 10%에 불과하다.

사관학교 생도 시절은 남녀 생도 상호 간 양성평등 의식이나 장차 군의 고위 간부로서 인격의 성장과 리더십의 발휘 측면에서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사관학교 출신이 고급간부로 진급하는 비율이 상당한 현실에서 여생도 모집비율은 장기적인 여군의 고위직 진출과 주요 보직 배치에도 중요한 관건이 된다.

이제는 최초 여군 전투대대장, 함장, 조종사의 타이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군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장병들의 전투력을 창출해내는 주요 보직에서 여군들이 역량을 발휘되도록 양성평등에 의한 인사정책이 우선되어야 한다.

여군이라서가 아니라 능력에 의해 평가받을 수 있도록 과정의 공정에 국방개혁의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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