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조 칼럼

최영조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
최영조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

일상에 매몰되어 살다 보면 주변에 감춰진 것까지 신경 쓰기가 쉽지 않다. 우리 일상에 나의 오지랖(?)을 기다리며 손짓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요즘인가.

나에게 재미를 주고, 지적 자극을 주는 다양한 글과 영상들. 그러나 내가 잘 인식하지 못할 뿐 세상엔 나를 불편하게 하지만, 알아야 할 현상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빈곤’ 문제다.

다른 누군가가 담당해야 할 일이고, 정부가 좋은 정책으로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에서 가난은 내가 걱정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고 여겼다. 폭염에 힘들어하는 쪽방 어르신들도 언론의 관심을 받는 현실에 안심하기도 했다. 무려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 아니겠는가.

안심은 의심으로 바뀌었다. 최근에 접한 통계 수치와 몇몇 사건들은 그동안 내가 가진 생각에 균열을 냈다.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신경 써야 할 가난한 사람들이 많고, 정부가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할 빈곤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목숨을 빼앗은 가난

지난 19일 새벽, 전북 전주시의 한 여인숙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세 명이 사망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희생자들은 잠시 머물기 위해 여인숙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여인숙은 집이었다.

희생자들은 쪽방이나 고시원처럼 열악한 주거 환경을 견뎌야 했던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이다. 작년 1월에 목숨을 앗아간 서울시 종로구 쪽방과 여관, 같은 해 겨울 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과 닮았다.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은 마련돼있다. ‘주거복지로드맵’, ‘취약계층·고령자주거지원 방안’을 꼽을 수 있다. 문제는 이전보다 개선된 정책이라고 하지만, 지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아직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자격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높은 기준은 제공되는 임대주택의 전체 물량 부족해 선정되기까지 대기 기간이 길 수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 취약계층은 늘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빈곤한 삶은 국가의 여력이 미치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로 인해 나타나기도 한다. 지난달 31일, 서울시 관악구 한 아파트에서 한 여성과 아이의 시신이 발견됐다. 한 아무개씨(42)는 한부모 여성으로 북한이주민이었고, 아이는 장애가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사인을 아사로 추정했다. 한씨 모자는 보건복지부, 통일부, 서울시, 관악구청의 관리·지원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었다.

한씨 통장 잔액이 0원이었고, 집에서 발견된 식재료가 고춧가루뿐이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아직 이런 현실 속에 살고 있다.

통계가 말하는 현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2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 하위 20%의 소득 증가율이 2018년 이후 줄곧 마이너스였다가 올해 2분기에 0.045% 증가세로 전환됐다.

하지만, 소득격차문제는 여전하다. 소득 최하위 20%와 최상위 20%(5분위)의 소득 비율을 나타내는 수치가 5.3으로 나타났다. 이는 5분위 배율(소득분배 불균등을 나타내는 수치로, 클수록 더 불균등하다는 뜻)로 지난해 5.23이었다. 하위 계층에서 소득증가가 여전히 어려운 만큼 맞춤 대책에 대한 필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소득 하위계층의 고령가구 비중이 높고, 고령화가 심화하는 것도 사회 전체의 빈곤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2017년 기준)은 42.2%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1위로, 평균(13.5%)의 3배를 넘는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수준을 고려했을 때 믿기 힘든 기록이지만, 현실이다.

‘빈곤의 덫’을 깨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와 함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관심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2014년 송파구에서 생활고로 동반 자살한 세 모녀도, 관악구에서 아사한 북한이주민도 우리 곁에 살고 있었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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