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조 칼럼’

최영조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
최영조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

시대가 바뀌면 법·제도가 변화해야 한다. 법·제도는 사회의 작동 원리를 규정하는 규칙이고,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안정적인 국가 운영이 가능하다. 법·제도는 사회 변화를 추동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변화된 사회의 결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유연하게 이끌어온 국가는 국제사회를 선도하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는 항상 후발 주자로 남거나 주류의 흐름에서 도태되기도 한다. 결국, 시대에 어울리는 법·제도의 변화가 한 나라의 역사를 규정하게 된다.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로 미래의 ‘거대한 전환’을 예상하는 지금도 각 국가는 발 빠르게 정책의 변화를 진행 중이다. 감염병 대응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보건·의료 분야는 물론, 소득 감소와 실업으로 어려움을 겪는 계층을 위한 정책이 신속하게 결정됐다.

우리 정부는 초유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통화정책과 더불어 미래 사회를 위한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등의 이름으로 묶인 정책들을 계획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없었거나 좀 더 시간이 지난 뒤 등장했을 정책들이 급하게 쏟아져 나왔다.

코로나19와 같이 사회에 큰 충격을 주지 않고 결정된 정책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요구에서 비롯된다. 다양한 형태의 사회단체들과 기업들이 집단을 이루고 이익단체의 모습으로 정부 기관과 국회를 압박하여 원하는 법·제도의 변화를 이룬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이 원하고, 이를 대리하여 선출된 집단과 정부가 사회의 요구를 받아 논의의 장을 거쳐 법·제도의 형태로 결과물을 만드는 건 당연한 원리다. 그러나 보통의 방식으로 요구하지 못하고, 집단적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계층은 소외될 위험성이 존재한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와 국회는 이들과 관계된 법·제도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낡은 법·제도에 묶인 공무원 정치기본권

보통의 정책결정 형태에서 많이 벗어나 소외되기 쉬운 집단과 분야는 다양하지만, 여기서는 공무원의 정치기본권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공무원은 국가의 일을 한다는 특수성으로 정치적 갈등과 거리 두기가 요구되고, 암묵적으로 평온함을 강요받는다.

헌법에 보장된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할 기본권이 심각하게 제약당하고 있는 상황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시대 변화에 뒤처지고 있는지,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법·제도가 얼마나 낡은 것인지 방증한다.

우리나라 공무원은 일반 국민이 누리는 정치기본권이 심각하게 제약당하고 있다. 여기서 정치기본권은 정당 결성·가입·원조, 선거 출마와 선거 운동, 정치적 의사표현 등이다. 공무원은 모두가 당연하게 누리는 정치 영역의 활동이 금지돼 있다.

SNS에서 선거 후보자가 등장하는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를 수 없고. 공유도 할 수 없다. 선거일에 투표만 가능하다.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정당법, 공직선거법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공무원의 정치기본권과 관계된 정부와 정치권의 시각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있다. 큰 문제의식 없이 관련 법이 탄생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졌다.

정치기본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공무원 집단은 권력자들이 다루기 쉬웠고, 이들이 위기감을 느낄만한 집단행동이 불가능하니 신경 써서 법을 바꿀 필요도 없었다. 그 결과 현재 우리나라 공무원의 정치기본권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해외 사례로 본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

해외 사례를 보면 이러한 문제의식은 더욱 분명해진다. 공무원의 정당 가입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는 제한이 없다. 일본은 국가직은 불허지만, 지방직·교육직은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그리고, 업무수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원칙적으로 모든 정치활동이 허용되는 나라는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있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는 각 나라의 기준에 따라 제한하는 부분이 조금 있지만, 많은 정치활동을 허용하고 있다. 여기서 정치활동은 선거운동, 정치자금 모금, 정당활동 등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에서 우리나라처럼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나라는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공무원단체의 요구와 상관없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2019년 10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공무원·교원의 정치적 자유를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법률은 과잉금지원칙과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고, 민주국가의 ‘기능적 권력통제’로의 기능 변화와 내부감시자로서의 공무원의 역할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공무원의 정치기본권을 진지하게 논의의 테이블로 올려 사태를 파악하려는 움직임은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과거와 살고 있다.

공무원의 정치기본권이 확대되면 어떻게 될까? 갑자기 공무원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워지고, 각종 사건·사고가 뉴스를 도배하게 될까? 정부 기관의 행정서비스가 나빠지고, 예산 낭비가 심해질까? 제도의 변화를 정확하게 예상하기도 어렵지만, 이런 식의 우려는 접근이 잘못됐다.

누군가의 혜택을 빼앗거나 추가하는 정책 결정이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국민으로서 기본권을 보장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으로 발생할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 없다. 지금부터라도 논의를 시작하고, 머리를 맞대고 가능한 범위를 설정하자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제한은 정권이 공직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목적이 컸다. 권력의 입맛에 맞게 공무원을 억압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변했다. 우리나라는 전면적으로 민주주의를 장착했고, 공직사회도 큰 성숙을 이루었다. 변화된 시대상에 맞는 법·제도로 공무원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본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미래 사회를 주도하고자 하는 우리나라의 모습이어야 한다.

저작권자 © 공생공사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