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거사 안정훈의 아날로그 세계일주(12) ‘키예프에서 마주한 위기’(상)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 도심의 밤은 화려했다. 볼거리와 활기가 넘치는 거리 모습.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 도심의 밤은 화려했다. 볼거리와 활기가 넘치는 거리 모습.

여행 중 처음 닥친 위기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의 보리스필 공항에 도착해서 시내로 가는 차를 타려고 할 때 우연히 한국무역진흥공사 키예프 지사에 근무하는 친절한 현지인 젊은 여성을 만나서 도움을 받았다. 

그녀는 내가 한국인인 걸 알고 반가워하며 현지 유심카드를 사서 핸드폰에 끼워서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우버택시를 불러 주어서 싸고 편하게 숙소까지 갈 수 있었다.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우크라이나에 대한 첫인상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숙소에 편하게 도착해서 짐을 풀고 저녁 식사를 하러 시내로 나가려는데, 우버를 전혀 사용할 줄 모르니 어떻게 차를 불러야 할지 난감했다. 핸드폰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다 결국 포기하고 큰길로 나와서 택시를 잡기로했다. 

내 앞에 멈춰 선 차는 택시 표시등도 없는 일반 승용차였다. 우크라이나는 일반 차량이 택시 영업을 하는 게 일반적이라 크게 염려하지 않고 요금 흥정을 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눈치로 협상을 해야 했다. 

가까운 거리인데 300우크라이나 흐리브냐(UAH 약 1만 3000원)의 요금을 불렀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올 때는 거리가 훨씬 더 멀었는데도 250흐리브냐를 주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냥 보내버렸다. 

택시 대신 탄 승용차

그리고 나서 한참을 기다려도 택시는 오지 않았다. 택시를 잡으려고 차도로 내려가 손을 흔들고 있는데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섰다. 기사가 창문을 내리고 “어디를 갈 거냐”라고 묻는 것 같아 목적지를 적은 메모지를 보여 주었다. 그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타라고 했다.

“요금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300흐리브냐를 핸드폰에 찍어서 보여주었다. 내가 200을 찍어서 보여주자, 그가 다시 250을 찍어서 보여주었다. 차를 잡기도 힘들고 시간은 자꾸 가기에 그냥 고개를 끄덕여 주고 뒷좌석에 탔다.

키에프의 거리 공연에서 불 쇼가 제일 인기가 좋았다.
키에프의 거리 공연에서 불 쇼가 제일 인기가 좋았다.

차는 조금 달리더니 가로등만 드문드문 서 있는 인적이 없는 외곽 쪽으로 빠지는 것 같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이 길이 맞느냐”고 물었다. 그는 “뜨라삑 뜨라삑(traffic)”하면서 그냥 달린다. ‘아하! 시내 길이 막혀서 돌아간다는 말인가 보구나’라고 추측했다.

얼마를 더 가다 보니 이젠 가로등마저 없는 깜깜한 후미진 길로 접어들었다.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내가 가려는 식당은 시내 중심지에 있는데 잘못 온 거 아니냐”라고 몇 번을 물었다. 

산길로 달리는 승용차…공포가 밀려왔다

택시 기사는 뭐라 뭐라 얘기를 하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와 우크라이나어로 떠들다가 잠시 공백이 왔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는 순간 갑자기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지금 악덕 택시 기사한테 납치되고 있는 거 아닌가?’ 뒷머리가 써늘해지면서 모골이 송연해지기 시작했다. 

차는 어느새 깜깜한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나지?’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60대 한국 노인 혼자서 세계일주하던 중 우크라이나에서 밤중에 나간 후 실종” “악덕 택시 기사에게 금품을 빼앗기고 피살된 듯” “안전 수칙 무시한 무모한 혼자 여행이 화를 부른 듯” 등등, 매스컴에 나올만한 기사의 제목들이 떠올랐다. 그럼 이게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내 안전보다도  망신살 뻗칠 일이 더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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