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인의 좌충우돌 사회적응기(10)

이서인 시인(여자 정훈장교 1기)
이서인 시인(여자 정훈장교 1기)

우리나라 국민에게 공정하지 못하면 결코 참을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교육, 병역, 채용이 바로 그것이고 그 중 으뜸은 병역이다. 국민 대다수가 가족이나 친지 중 누구 한 사람은 과거나 현재, 미래에 군인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벨기에 공주 군사훈련 기사가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한 것도 최근에 불거진 고위직 공직자 아들의 공정 병역 이슈와 무관하지 않게 느껴진다.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특혜 없다.”… 진흙탕 기며 군사훈련 받는 벨기에 공주” 지난 9월 20일 일간지에 실린 보도기사에는 벨기에 왕실의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엘리자베스 공주가 왕립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기초군사훈련을 하는 사진과 함께 그 이유도 설명이 되어 있었다.

“규율이 엄격한 왕립육군사관학교를 거치는 것은 벨기에 왕실의 전통이다. 공주의 아버지인 필리프 국왕도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다만, 공주로는 엘리자베스 공주가 처음이다. 엘리자베스 공주가 여왕이 될 경우 그는 벨기에군 최고사령관 직위도 부여받게 된다.”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영예라는 것이다.

군사훈련 내용은 나도 현역 군인 시절 대부분 경험한 것이었지만 기사에서 특히 주목을 끈 대목은 신입생 감독관의 말이었다. “공주와 함께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는 영광이다. 하지만, 우리는 공주를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대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과정의 공정에 목마른 우리 청년 세대에게 던져진 어른들의 이정표이기도 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현역 군인으로 있을 때 나도 아들 문제로 고민한 적이 있었다. 몇 년 전 아들이 장교로 임관하던 날 ‘창군 66년 만에 현역 첫 모자(母子) 장교 탄생’이라는 타이틀로 딱 한 번 SNS 실검 1위에 올랐던 적이 있었다.

임관행사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여러 언론에서 심층 인터뷰를 하자는 요청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군 생활을 시작하는 아들에게 부담이 될까 봐 모두 거절하였다.

나의 고민은 그다음에 시작되었다. 임관 후 초등군사반 교육이 끝날 때쯤 자대 배치가 되는데 흔한 얘기로 도심지 가까이 위치한 아스팔트 부대로 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다행히도 아들은 최전방 부대에 배치되어 같은 병과 선배 장교인 ‘엄마 찬스’ 의혹을 받지 않게 되었다. 이후 아들은 GOP 부대에 투입되었고 수개월 교대 근무에서 운영 지침이 고정 근무로 변경되면서 결국 전역 때까지 최전방 철책 대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 흔한 말로 군대에서 줄을 잘못 선 결과이다.

때마침 옆 사무실에는 아들을 최전방 부대 수색대대 소대장으로 보낸 후배 장교가 있었다. 우리는 가끔 만나 차 한잔을 하며 이런 얘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아들들에게 감사해야 돼. 본인들은 최전방에서 고생하겠지만, 그런 자식들이 있어서 후배들에게 떳떳하잖아. 아들아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해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군대에서 이 질문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현역 간부의 아들이고 그 중에도 으뜸은 장군의 자식일 것이다. 아빠 엄마 찬스의 눈길도 부담이 되겠지만 혹여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부모님께 누를 끼칠까 해서다.

며칠 전 제72주년 국군의 날 행사가 창군 이래 처음으로 육군 특수전사령부에서 거행되었다. 각 군의 특수전 임무를 주로 소개한 중계방송을 보다가 문득 후배 가족이 떠올랐다.

‘전군 최초 한 가족 세 식구 낙하산 강화훈련. 준장 아빠, 중령 엄마, 특전사 입대 아들과 함께 점프’ 2016년 당시 이례적으로 몇몇 중앙지에서 강하 사진과 함께 내용을 비중 있게 다룬 보도기사였다.

여군 후배인 홍 중령은 전역을 앞두고 있었고 마침 아들이 특전사에 입대하게 되자 뜻깊은 일을 하고 싶어서 가족 동반 강하를 제안했던 것이다.

칭찬해 주고 싶은 것은 아들이 입대 전 몸무게가 100kg이 넘었는데 신체검사에서 2급 이상만 지원할 수 있는 특전사에 들어가기 위해 1년 동안 20kg을 감량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홍 중령은 이전에 특수전사령부에서 참모를 역임했다. 당시만 해도 특수전 부대에 여군 참모는 시기상조라고 하여 세 번이나 문을 두드린 끝에 특전사 최초 여군 정훈공보참모로 입성을 했다.

특전사에 전입하면 장병 모두 낙하산 강하훈련을 해야 하는데 당시 40대 후반이던 홍 중령이 20대와 같이 훈련을 받는 것이 걱정되었던 나는 훈련 전 도가니탕을 한 그릇 사주며 그저 무사히 훈련을 마치기를 기원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가족 동반 강하를 무사히 마친 후 온 가족의 환한 웃음을 보도사진 속에서 보며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홍 중령 수고 많았어. 특히 류 장군님 웃는 모습이 멋지던데?”하니까 후배가 조용히 속삭였다.

“선배님. 사실 남편이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사관학교 생도 시절 공수 교육받을 때도 힘들었대요. 그런데 이번에 아들 강하훈련에 힘을 주자고 해서 기꺼이 동참했는데 그 웃음이 해탈의 웃음이었대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결코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왕관의 무게는 가족에게도 함께 져야 할 몫인 것이다.

저작권자 © 공생공사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