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와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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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와 골프’
  • 공생공사닷컴
  • 승인 2020.08.3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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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인의 좌충우돌 사회적응기(9)
이서인 시인(여자 정훈장교 1기)
이서인 시인(여자 정훈장교 1기)

갈매지구로 생애 35번째 이사를 한 지 3주가 되어간다.

젊은 시절에는 이삿짐 정리도 삼일이면 뚝딱 해치웠던 것 같은데 이제는 힘에 부쳐 쉬엄쉬엄 하다 보니 이제서야 대충 살림살이가 제자리를 찾았다.

이사 오기 전 가구와 의류는 무료나눔도 하고 일부 물품은 팔기도 하며 몇 번을 망설이다가 버리기도 많이 했는데도 이삿짐은 왜 그리 많던지. 다음 이사할 때까지 이곳에서 부지런히 비우기를 결심해 본다.
 
동상이몽(同床異夢)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인 갈매지구는 최근 부동산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지역이다. 바로 인근에 태릉골프장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4일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방안’이 발표되었다.

발표내용 중 국민 뿐만 아니라 군인들까지 관심이 집중된 것은 “태릉골프장 부지 등 신규부지 개발을 통해 3만 3000가구를 추가할 예정이며 태릉골프장 개발을 통해 1만 가구를,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 미군 캠프킴 부지에서 3100가구를 공급한다”는 것이었다.

태릉골프장 개발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갈매지구의 아파트 가격은 2억 이상 폭등했고 이어서 전세 가격도 5000만원이나 올랐다. 다행히도 나는 정부 발표 석 달 전 전세계약을 마친 상태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의 관심사도 증폭되었다. 왜냐하면, 갈매지구는 한적한 후반기 삶의 로망을 꿈꾸며 이사를 결심한 곳이고 푸르른 소나무 군락이 일품인 태릉골프장 옆에는 육군사관학교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육사는 현역 시절 소령으로 진급해서 생도 훈육관이란 직책으로 2년간 근무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푸릇푸릇한 청춘의 생도들과 마주하면서 나 또한 군인으로서 신독(愼獨·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가함)의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한 곳이기도 하다. 태릉골프장을 바라보는 동상이몽의 현실이다.

군부대 옆에 골프장이 생긴 이유

군 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비상사태가 발생한다. 어떻게 보면 군의 존재 이유도 국가 비상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대부분 비상사태는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증대되어 남북 간의 긴장 상태가 고조될 때이다.

또한, 홍수나 가뭄, 폭설 등의 자연재해와 이번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전염병 발생 시에도 군에서는 비상사태가 발령되어 대비태세에 들어간다. 이때 군 간부들에게 동반되는 지시사항 중 하나가 골프 금지이다.

그러나 이럴 때 오히려 일반 골퍼들은 좋아한다고 한다. 현역 군인들에게 배정된 티가 일반인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군부대 옆에 골프장이 생겨난 것일까? 바로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장기 복무 군인들은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대부분 별거를 시작한다.

초등학생 때에는 시골이라도 학교만 주변에 있으면 가족이 같이 살지만, 아이들이 중학교에 가면서부터 학업 문제로 떨어져 살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간부들은 한 달에 한 번씩만 휴가가 주어지다 보니 대부분의 주말을 혼자서 보내야만 하고 건전한 여가생활을 위해 부대 옆에 골프장을 짓게 된 것이다. 또한, 운동 중이더라도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부대가 바로 옆이라 곧바로 복귀하여 대비태세에 임할 수 있다. 만일 등산을 한다면 부대 복귀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한편, 비상시 넓은 골프장에 헬기를 이용하여 빠른 시간내 병력을 이동시키고 군수물자를 수송할 수도 있다. 이러한 목적하에 지어진 군 골프장이 때만 되면 전가의 보도처럼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다.

예비역을 위하여  

그렇다고 모든 군인이 골퍼는 아니다. 나 또한 많은 기간을 전방에서 보냈기 때문에 골프채를 잡아 볼 기회가 없었다. 심지어는 태릉골프장이 바로 지척에 있는 육사에서 근무할 때도 단 한 번도 골프를 쳐 본 일이 없다.

당시는 생도 훈육하랴 아이 돌보랴 몸이 둘이라도 모자를 때였다. 골프장으로 올라가는 길은 매주 금요일 생도들과 같이 뜀걸음으로 통과하는데 경사도가 높아서 숨이 턱까지 차올라 깔딱고개라고 불렀다. 아마 그때 골프를 배웠다면 지금 싱글 골퍼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골프에 입문한 것은 전역 전 마지막 근무지이고 그때 내 나이 50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라도 골프를 배운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50대 후반에 테니스나 등산을 하기에는 버겁고 젊었을 때처럼 호기롭게 술을 마실 수도 없으니 옛 전우들과 가끔 만나서 건전하게 운동하고 밥 한 끼 나눌 수 있는 장소가 군 골프장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예비역 할당티가 많지 않아서 두 달에 한 번 정도다.

수십 년을 가족과 떨어져서 외롭게 지내며 위국헌신하다 이제야 마음 편하게 운동하며 전우애를 나눌 수 있는 장소를 예비역들에게 제공해 주는 것도 보훈정책 중 하나이다.

태릉골프장을 굳이 개발해야 한다면 몇몇 사람들만 혜택을 받는 아파트 건설이 아니라 녹지가 부족한 도심에 휴식공간으로 개방하여 국민과 육사 생도, 군인 가족들도 함께 소통할 수 있는 멋진 힐링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되기를 바란다. 집값이 치솟는 판에 나만의 한가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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