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인의 좌충우돌 사회적응기(7)

이서인 시인(여자정훈장교 1기)
이서인 시인(여자정훈장교 1기)

5월이면 끝나려니 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고 있다.

6월이 되자 겨울에는 찬바람을 제법 막아주기까지 했던 마스크 KF94를 80으로 바꾸었음에도 숨을 쉴 때마다 힘들어진다. 우리 사회에서 마스크가 사람들의 관심을 이렇게 많이 받았던 적이 있었던가?

지난 두 달여 요일을 맞추어 구매해야 했던 마스크로 인해 짜증이 났던 날도 많았지만 며칠 전 마스크에 관련된 뉴스를 보고 흐뭇한 적이 있었다. 

“한국 정부는 귀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한국과 맺어진 소중한 인연의 표시입니다.”

프랑스 북부 벨포르 지역에 사는 미쉘 오즈왈드씨는 최근 한국 정부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 속에는 요즘 해외에서도 ‘귀한 몸’이 된 한국산 마스크가 동봉되어 있었다.

오즈왈드씨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한 3400여 명의 프랑스 군인 중 한 명이며 18살에 자원입대해 한국에서 2년여를 보냈다고 한다.

편지와 마스크를 전달받은 그는 “프랑스에서는 참전용사들을 잘 언급하지 않는데 한국은 70년이 지났는데도 참전용사들을 잊지 않고 있네요”라며 감동했다고 한다.

오즈왈드씨를 비롯해서 22개국의 6·25 참전용사들이 한국산 마스크를 통해 70년 전 아주 낯설고 피폐했던 대한민국을 새로운 나라로 다시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도움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6·25참전 해외용사에게 마스크를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6·25전쟁 당시 16개국에서는 전투지원을, 6개국에서는 의료지원을 통해 한해 195만여 명의 참전용사가 낯선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다. 이 가운데 3만 7000여 명이 전사하고 10만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는 특별히 대규모 행사를 기획했으나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나 고령의 참전용사들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것도, 해외에서 행사를 진행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때마침 참전국 모두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고령의 유엔 참전용사에게 마스크 지원이 매우 시급하다고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 우리도 여전히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지원규모는 100만장으로 결정됐다. 참전용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에 50만장, 그 외 벨기에와 태국, 에티오피아 등 21개국에 50만장이 참전 인원 등을 고려해 배분되었다.

70년 전 의약품은 물론 의료인력마저 부족했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K-방역으로 주목받게 됐고 보은의 의미로 의료물품인 마스크를 지원하게 된 것이다.
                      
전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올해는 6·25전쟁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전투는 군인들이 하지만 그 폐해는 전 국민이 감내해야만 한다. 70년 전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인해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빠졌을 때 여성들도 구국의 대열에 기꺼이 동참했다. 그중에는 직접 군인으로 자원하여 전투에 참가했던 여성들도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거예요.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연약한 여성의 힘이라도 보태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학교의용군 제2기 모집 때 자격이 미달인 17세 나이로 조르고 졸라 입대했습니다.”

여자의용군으로 자원입대하여 전투에 나섰던 윤경순 여사의 증언이다.

2016년 모 방송사와 협조하여 6·25참전 여군들의 전투활동과 함께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비밀첩보대원들의 활약상을 추적하여 방영함으로써 이달의 우수 프로그램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프란체스카의 비밀결사대’가 생각난다.

1995년부터 6·25전쟁 관련 미군의 비밀문서들이 해제되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1951년에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KLO(주한미군연락처) 첩보부대에 심영애, 박정숙 등 래빗 여성대원이 20여 명이나 투입되어 다양한 첩보활동을 전개하였다.

“여자들이 더 용감해요. 첩보활동을 하려면 담이 세야 하는데 여성 대원들이 이러한 활동에는 적격이에요.”

전쟁기념관에서 직접 만나 뵙고 들었던 이 말은 이들의 훈련을 맡고 있었던 이영철옹(당시 교육훈련대장)에 의해 증언된 내용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간호장교들의 활약상이 돋보여 언론에 주목을 받기도 했다. 6·25전쟁 당시 해군간호장교로부터 출발하여 이동외과병원에서 전투에서 다친 수많은 장병을 치료하고 간호했던 선배들의 나이팅게일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7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휴전 상태이다. 지난 5월 3일에도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내 최전방 감시초소(GP)에서는 북한군에 의한 기습적인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역사는 반복되고 힘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평화는 허상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리는 가장 어려웠을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진정한 친구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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