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온 고향 남겨진 이야기’(4) 회령군편(상)
노경달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사무국장

노경달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사무국장
노경달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사무국장

“그리 넓지 않은 평야이지만, 청류(淸流)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오룡천과 팔을천 사이에 조선총독부가 심은 듯한 느티나무는 가늘고 긴 언덕을 차지하였고, 그 숲 속에 관공서가 있었으며, 그리고 일본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회령 출신 어느 이북도민의 ‘나의 학창시절’ 이야기다.

무산령을 겨우 넘어선 기차가 두만강을 향해 힘차게 내려오는 철도길 옆으로 오룡천의 청류가 흐르면서 그리 넓지 않은 평야를 이루었고, 회령의 외곽은 소용돌이치는 두만강 물결과 함께 국경도시를 오가는 기차 손님에게 잊을 수 없는 풍경을 제공하였다.

1920년대 회령시내 모습. 김약연 선생 증손자 김재홍 제공
1920년대 회령시내 모습. 김약연 선생 증손자 김재홍 제공

또한, 그들이 기억하는 회령시내 모습은 이렇다. 신작로라는 자갈길에서 팔을천으로 건너가는 길가에는 상업학교가 있었고, 역전에서 멀지 않은 곳의 붉은 벽돌 도립병원 언덕에는 살구나무가 있었다. 그들은 그러한 풍경을 학창시절의 추억담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회령군민이라면 누구나 회령군 애향가를 민요풍으로 흥겹게 부른다. 학창시절을 오룡천에 담아서 부른다.

산 넘어 북쪽 하늘 내 고향 회령~
복숭아 꽃 살구 꽃 빵긋이 피고요
실버들 한들한들 풀피리 소리
강남 제비 넘나드는 저 언덕 위에 내 고향 오막살이 그립습니다.
아~ 가고 싶은 내 고향 그리운 내 고향~

<회령군 애향가>

북간도 한인의 삶과 애환이 담긴 회령에서 태어난 규암 김약연 선생

1868년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태어난 규암은 1899년 문익환 목사와 윤동주 시인 집안 등 25세대를 이끌고 북간도로 집단이주해 명동촌을 일궜다.

명동촌은 ‘밝은 동쪽‘ 또는 ‘동쪽을 밝힌다’라는 뜻을 담고 있는 명동촌은 규암 김약연 선생을 비롯한 애국지사들과 다수의 한인 동포들이 1899년 2월부터 개척하였고 북간도 한인들의 삶의 터전이자 독립운동의 중요한 근거지가 되었다.

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김재홍씨 제공

명동학교는 1908년 4월 27일 만주 지린성 허룽시 명동촌에 설립한 민족교육기관이다. 김약연 등은 1906년 10월 용정에 설립된 서전서숙의 정신을 계승하여 명동촌에 있는 여러 서재를 통합하여 근대적 민족운동을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명동학교를 설립하였다.

규암 김약연 선생은 1908년 개설한 명동서숙을 명동학교·명동교회·명동중학교·명동여학교로 키워가며 한인들의 항일사상을 고취시켰다.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대한국민회를 만들어 산하에 홍범도 부대 등을 두고 항일무장 투쟁을 지원했다.

1919년 3·1 운동 때에는 간민회 회장으로서 용정에서 한인 1만여 명의 만세 시위를 주도한 이유로 2년 반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10년 강제병합에 앞서 이미 통감부 시절부터 한국 내 사립학교가 탄압을 받아 민족교육이 단절되었으나 명동학교는 모범적인 민족교육을 통해 두만강 대안 지역에서의 항일독립운동의 중심 거점이 되었다. 명동학교가 있던 북간도 지역은 지리적으로 만주와 연해주를 연결해 주는 지점으로 이주 한인들과 망명한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6월 7일, 봉오동전투 승전 100주년 대한독립! 그날을 알린다

일본제국주의 감점기 일본군 보병75연대 부대원들이 회령에서 축제를 벌이는 모습. 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김재홍씨 제공
일본제국주의 감점기 일본군 보병75연대 부대원들이 회령에서 축제를 벌이는 모습. 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김재홍씨 제공

이북5도위원회는 ‘대한독립! 그날을 위한 봉오동 전투’ 특별사진 기획전을 준비하였다. 오는 6월 4일부터 16일까지 이북5도청 마당과 로비에서 열리는 특별사진기획전에서 100년 전 간도의 북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기대해 본다.

봉오동전투에 참패한 일본군이 그 보복으로 한인을 집단 학살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간도참변 사진을 비롯하여 ‘항일무장독립운동과 봉오동전투’ 코너에서는 봉오동전투 전적지와 홍범도 장군의 활약상 그리고 실제 작전상황도 및 현장의 사진 등으로 봉오동 전투의 의미와 홍범도 장군의 생애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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