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긴급재난지원금 신청 공직사회 백태
고위직 ‘조기 포기’, 중간 간부 ‘반반파’도
하위직은 “수령도 착한 행위, 눈치보지 말자”

긴급재난지원금 신용카드 및 체크카드 신청을 하루 앞둔 10일 한 시민이 조회서비스 홈페이지를 방문, 검색을 하고 있다. 김성곤 선임기자 gsgs@public25.com
긴급재난지원금 신용카드 및 체크카드 신청을 하루 앞둔 10일 한 시민이 조회서비스 홈페이지를 방문, 검색을 하고 있다. 김성곤 선임기자 gsgs@public25.com

“연가보상비도 못 받는데, 긴급재난지원금까지 기부하라고? 난 그럴 생각 없어요.”

긴급재난지원금 온라인 신청을 하루 앞둔 중앙부처 6급 공무원이 아내에게 한 얘기이다. 받아서 영세점포에 써서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취지라면 받아서 쓰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물론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는 반쯤 기부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아내도 “아이들 둘 키우는 게 넉넉하진 않지만, 100만원 중 절반은 기부해도 된다”는 얘기를 누차 해왔다.

하지만, ‘착한 기부’라는 용어로 포장돼 기부하지 않으면 착하지 않은 것 같은 프레임에는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11일부터 시작되는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긴급재난지원금 온라인 충전 신청을 놓고, 공직사회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4인 가족 기준 100만원이 지급되는 것을 두고 ‘100만원의 시험’이라고도 표현한다.

연가보상비도 전액 삭감됐는데…

중앙과 지방, 고위직과 하위직에 따라 입장에 다소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최근의 착한 기부행렬에는 부정적이다.

고위직은 당연히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체념형’이다. 중앙부처 국장을 맡고 있는 고위공무원은 “초기에는 이런 문제가 생기면 갈등을 했지만, 지금은 당연한 것이 됐다”면서 “고위공직자라면 받아서 쓰기보다는 기부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앙부처 하위직은 다소 온도 차이가 있다. 호봉이 높은 공무원들은 유연하지만, 하위직 낮은 호봉자들은 부정적 기류가 많다.

특히 최근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연가보상비를 전액 삭감당한 터여서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부하기보다는 받아서 쓰는 쪽에 방점이 찍혀 있다.

중앙부처 비고시 5급 사무관은 “별 고민 없이 반은 쓰고, 반은 기부하는 쪽으로 정리했다”면서 “나 같이 ‘일부 사용 일부 기부’ 아닌 ‘전액 수령파’도 많다”고 말했다.

시·군·구 5급 이상 금액이 문제일 뿐 기부는 기본

그러나 지방은 다르다. 시·군·구의 5급 이상은 기부가 대세다. 시·군·구청장 주도로 5급 이상 간부의 기부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마당에 이를 거스를 강심장을 가진 시·군·구 과장급 이상 간부가 있을까. 다만, 금액이 문제일 뿐 기부는 기본이다.

광역지자체는 조금 다르다. 여기서는 서기관급이 갈등의 주체다. 이른바 과장급이다. 눈치가 보인다. 시장과 도지사가 ‘착한 기부’에 나서고 있는 마당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위직은 기부에 반발의 강도가 센 편이다.

“정부는 또 공무원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다 주는 척 쇼하고 뒤로는 기부하라고 강요하며….” 지난 8일 부산광역시노조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또 다른 광역시 노조 게시판에는 “금요일에도 야근을 하고 늦게 귀가했습니다. 이렇게 고생하는데 재난지원금은 받아야죠. 모두 착한 소비에 쓰십시다”라는 주장도 게시됐다.
6급 이하 하위직 공무원들의 경우는 대체로 받아서 착하게 쓰자는 쪽이 많은 편이다.

“직급이 죄인가요

시·군·구에서는 5급, 광역에서는 4급, 중앙부처는 3급은 기부가 대세다.

초급 간부들의 경우는 ‘직급이 죄냐’는 불만도 나온다.

2020년 공무원 봉급표에 따르면 5급 사무관 1호봉은 월급이 253만 8900원이다. 반면, 6급 5호봉은 250만 1000원이다. 같은 6급이라도 호봉이 높으면 300만~400만원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직급이 높다는 이유로 기부 대열에 울며 겨자먹기로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9급, 7급서 시작해 박봉을 견뎌내면서 올라온 하위직 공무원들의 입장을 생각해 드러내놓고 얘기를 못하는 것뿐이다.

이와 관련, 한 광역지자체 위원장은 “착한 기부, 착한 소비 어떤 형태로든 경제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된다”면서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자발적 기부 운동에 지나치게 눈치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어떻든 공직사회는 긴급재난지원금을 놓고 수령과 기부 사이에서 내적·외적 갈등을 한동안 이어갈 전망이다.

김성곤 선임기자 gsgs@public2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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