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인의 좌충우돌 사회적응기(6)

이서인 시인·여자정훈장교1기
이서인 시인·여자정훈장교1기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전에는 일상적이던 많은 일이 아주 소중하게 느껴진다. 두 달 동안 사람과의 거리 두기를 시작하며 재미없고 무료한 일상을 탈출할 묘안을 생각해보던 중 직장 생활할 때 아주 부러웠던 몇 가지가 떠올랐다.

가끔 출장 나갔을 때 보았던 멋진 카페에서 브런치 먹는 아줌마들, 일과 시간에 개를 동반해서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 꽃 피고 단풍 드는 계절에 무리 지어 여행 다니는 사람들이다. 현재 꽃구경은 지자체장들이 앞장서서 오지 말라고 당부하니 당분간은 불가능하고 가을 단풍이나 기다려야 할 참이다.

지금 시점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니 비록 혼밥이더라도 식사는 자동적으로 브런치가 되었다. 그리고 동반할 개는 없지만 일과 시간 중 공원 산책하기이다. 지난 두 달 동안 마스크를 끼고 하루 만보를 목표로 경의선숲길을 걷다 보니 나름대로 얻어지는 깨달음과 행복함이 있었다.

첫째, 건강 회복하기 

사실 만보 걷기를 시작한 이유는 건강 회복과 다이어트 때문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확찐자’가 있는데 나는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이미 ‘확찐자’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2년 전 캐리어에 받치는 사고로 인해 다리가 골절되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였지만 후유증은 컸다.

수술하고 업무상 장애로 휠체어 신세가 되어 3개월간 휴직을 했다. 두 다리로 다시 걷기까지는 6개월 이상 걸렸고, 1년 후 핀 제거 수술을 하고 정상적으로 돌아오기까지 일 년 반의 시간이 걸렸다.

일 년 반 동안 운동을 못하니 근육은 사정없이 줄어들었고 그에 비해 몸무게는 엄청 늘어나 있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 매년 실시하는 체력검정에서 3㎞ 달리기에서는 특급을 획득했던 터라 다리 건강은 자신이 있었는데 골절상을 입고 보니 잘 걷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옷도 몸에 맞는 게 없다 보니 새로 살 때마다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이왕 사람과의 거리두기를 시작했으니 이참에 운동을 열심히 하기로 결심하고 오전에는 근력운동을 오후에는 만보 걷기에 도전을 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출발하여 5000보씩 왕복 걷기를 했는데 2주가 지나자 그것도 지루해졌다. 그래서 효창운동장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좌역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오기를 목표로 두 달 동안 꾸준히 만보를 걸었다.

물론 다이어트도 목표 중 하나라 식이요법도 병행했다. 걷다보면 마(魔)의 구간이 두 군데 있는데 바로 홍대 땡땡거리와 공덕동 맛집 골목이다. 요즘 한창 맛이 오른 주꾸미 복음과 치킨 냄새는 정말 참기 어려운 유혹이다. 그 유혹을 눈을 질끈 감고 걷기를 재촉하며 결심을 한다. ‘확찐자여!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날 사정없이 맛있게 먹어주리라’.

둘째, 혼밥에 익숙해지기
 
내가 아직도 직장인이었다면 아마도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이후의 변화가 더욱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사람과의 거리두기를 시작하면서 재택근무가 일상화되었고 직장인들의 커다란 즐거움이었던 점심시간의 풍경도 거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삼삼오오 모여서 맛있는 밥 한 끼와 커피를 나누던 정겨운 모습은 어느새 실종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혼밥을 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눈에 뜨인다.
 
직장에서 퇴직한 후 일 년 동안 아주 어색한 일과 중 하나가 혼밥이었다. 출근하고 점심은 당연히 동료와 같이 먹는 게 일상이었고 저녁 회식이 있는 날은 하루에 두 끼를 같이하는 것도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직 후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일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후배들이랑 식사 약속도 간간이 있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그것마저 단절되었다. 각종 모임도 연기가 되어서 올해는 강제적으로 혼밥에 익숙해지게 되니 사회적 환경 변화가 가져다준 기회라고 생각하고 싶다.

셋째, 크게 라디오를 켜고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오디오보다 비디오에 더 친숙해지게 되었다. TV와 컴퓨터에 길들여지고 휴대폰이 상용화되면서 시각적인 것에 아주 예민해지고 그래서 눈의 피로감도 더해져만 간다.

만보 걷기를 시작하면서 나의 이런 생활 습관에 변화가 왔다. 처음 며칠은 그냥 걷다가 지루해져서 이어폰을 끼고 라디오 방송을 듣기로 했다.

반갑게도 우리 시대의 8090 가수들이 DJ를 맡고 있는 프로그램을 찾았다. 일찍 길을 나서면 양파의 목소리가 촉촉하게 귀를 간지럽히고 조금 늦게 산책을 시작하면 이세준의 밝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를 맞이해 준다.

5월이 다가오니 날씨가 더워져서 요즈음은 저녁 시간에 산책을 나서는데 예전에 오빠 부대를 몰고 다녔던 김원준의 허스키한 목소리도 아주 매력적이다.
 
오롯이 청각에 집중하며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다 보면 단발머리 여고생 시절의 팝송도 생각나고 대학생 때 즐겨 듣던 시대정신이 가득 담긴 록 음악도 새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어느 날 혜성처럼 나타난 서태지와 아이들로부터 확산된 힙합과 최근에 새롭게 주목받는 트로트까지 아주 다양한 음악의 마력에 빠지게 된다.

“맞아. 내가 한때는 카페에서 DJ도 했었지….” 오늘도 만보 걷기가 주는 행복한 추억 여행을 떠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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