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희의 썰] ‘이제와 돌아보니’(1)

윤설희 KB생명보험 부사장
윤설희 KB생명보험 부사장

지난달 말 후배 셋이 나를 찾아왔다.

어느덧 중견관리자 자리에 오른, 그지없이 성실하고 특별히 모난 데도 없는 후배들이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그들 나름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공통점은 리더십, 그중에서도 커뮤니케이션 문제였다. 특히 리더로서 아래 직원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살면서 우리가 가장 힘겨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work) 자체일까 아니면 ‘관계’(relationship)일까. 둘 다 어렵지만, 조직생활 33년차인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시간이 갈수록 ‘일’보다 ‘관계’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관계’는 내가 타인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가의 문제이고 이는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의 방식에서 출발한다. 소통의 대표적 수단은 ‘말’이다.

‘말’은 직접적으로 상대방의 감정선을 건드리기 때문에 ‘말’로 따뜻함을 나누기도 하지만,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나는 평소 어떤 말 습관을 가졌는가. 습관은 이미 고착화되어서 무의식적으로 표현하고 행동하는 영역이다. 몇 가지 ‘말 습관’을 한번 들여다보자.
흔히 일어나는 맞벌이 부부의 주말 상황이다.

부인: “여보. 당신 너무한 거 아니야. 온종일 소파와 한몸이네. 당신만 피곤해. 나도 힘들고 피곤하다고. 얼른 일어나 집안일이라도 하세요.”

대표적인 ‘You message’이다. 상대의 행동에 대해 내 입장에서 비난을 퍼붓는다. 이걸 ‘I massage’로 바꿔보자.

부인: “여보 당신 아침밥 먹고 계속 소파에 누워서 TV만 보고 있네. 나는 당신이 그렇게 안 좋은 자세로 온종일 보내는 게 걱정이 돼. 우리가 다들 허리가 안 좋으니까 좀 움직이는 게 낫지 않을까.”

상대의 행동에 대한 비난보다 나의 염려를 표현한 것이다. 물론 이렇게 I message로 이야기하려면 부글거리는 마음을 다스리는 수양은 필수다. 당신이 남편이라면 위 두 개의 대화에서 각각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첫 번째 대화에서는 마지못해 일어나 청소기라도 잡겠지만, 다음주에도 여전히 소파와 껌딱지일 게다. 두 번째 대화에서는 “그래. 맞아요, 허리에는 자세가 중요하다고들 하지. 내 허리는 소중해”하며 가볍게 몸을 일으키지 않을까.

두 번째 상황을 보자. 엄마: “너 정신이 있니. 내일모레가 중간고사인데 지금 게임을 하다니 도대체 대학을 가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미친다. 미쳐.”

자녀(상대) 행동에 대해 비난하는 You message다. 어렵더라도 I message로 말 습관을 바꿔보자. 자녀의 경우에는 특히 즉발적 태도는 피하자. 대여섯 번 긴 호흡을 하자.
엄마: “게임하고 있네. 시험준비 하느라 힘들지. 좀 쉬기도 해야지. 근데 엄마는 걱정되네. 네가 요즘 열심히 공부하는데 시험 직전에 방심하느라 노력한 만큼 성적이 안 나와 속상해할까 봐.”

자녀의 행동 그 자체보다 그에 대한 나의 염려를 표현하는 I message다. 이 경우의 리스크는 평소와 확 달라진 엄마의 말에 자녀가 오히려 가식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새로운 말 습관을 들이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을 사무실 상황으로 가져와 보자. 상사: “김 과장 자네는 입사한지 10년이나 되었는데 여태 보고서를 이렇게 밖에 못 쓰나. 보고서의 맥락도 없고, 말만 있고 액션이 없잖아.”

기대에 못 미치는 부하직원에 대한 나의 답답함과 상대에 대한 비난이다. 이제 I message로 바꿔보자.

상사: “김 과장 이번 프로젝트건 보고서 잘 봤어요. 애썼는데 좀 걱정되네. 나는 김 과장이 이번 일로 한 단계 성장하고 회사에서 인정받았으면 하는데, 그러기엔 실행범위를 좀 좁게

잡은 것처럼 느껴지네. 어떻게 생각해요. 내가 도와줄 일이 있을까.” 부하직원의 미래에 대한 나의 애정과 기대가 담겨 있다. 상대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You message와 그에 대한 나의 걱정, 염려를 표현하는 I message. 두 표현의 차이는 크다. 그리고 이것이 좋은 소통, 좋은 리더십의 출발이다.

나는 날 찾아온 후배들의 평소 말 습관을 들어본 후 그들에게 I message 중요성을 전했다. 그리고 2주에 한 번 정도 그들과 통화를 하고 말 습관의 변화를 코칭할 계획이다. 나는 그간 내가 가족과 직원에게 했던 말 습관이 대표적인 you message임을 알았다.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라도 알았으니. 후배들이여. 나처럼 하지 말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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