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온 고향 남겨진 이야기’(2) 해주시 편(상)
노경달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사무국장

오월단오에 취떡 二八처녀 피리피리
큰애기 작은애기 둘씩둘씩 짝을 지어
명주황라 분흥고사 배나가오 배나가오
五色의 옷 분흥고사 서천 서국으로 배나가오
그네줄의 뛰리메야하 사게사오 사게사오
올단오의 취떡아하 오람배뚤리 사게사오 

  

노경달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사무국장
노경달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사무국장

황해도 해주(海州) 아낙네들이 그네를 뛰면서 부르던 노래이다. 석가모니가 태어났다는 사월의 초여드렛날을 전후해서 음력 오월 초닷샛날인 단오까지 어울려서 즐기던 그네뛰기로, 해주시 광석천(廣石川)변 등에서 두 처녀가 한 그네를 마주 타고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해주 광석천 위에 놓여진 광석교. 6·25 이후 한 재미교포가 방북해 광석교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해주시지
해주 광석천 위에 놓여진 광석교. 6·25 이후 한 재미교포가 방북해 광석교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해주시지

아낙네들이 창포물에 머리를 감았다고 전해 오는 단옷날, 우리 민족의 고유한 역사적 전통을 가지는 대표적인 민속경기는 씨름, 그네뛰기, 널뛰기, 활쏘기 등이지만, 해주인의 경우는 이 시기에 청장년 남자들에게 두 사람이 샅바를 잡고 힘과 재주를 부려 먼저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겨루는 황소가 걸린 씨름경기를 열었다.

아낙네들에게는 춘향이가 그네뛰기를 하러 광한루에 나갔다가 이몽룡을 처음 만났다는 분위기로 금가락지 상이 걸린 그네뛰기 경기가 있었다.
 
아낙네는 그네, 남정네는 씨름을 즐겨했던 해주
 
녹음이 우거지는 계절의 여왕을 맞이해 굵은 새끼줄을 꼬아서 큰 느티나무에 매 놓아 언제든지 즐길 수 있었다는 해주의 그네뛰기 경연은 높이 올라가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했다. 밭에 씨는 뿌려 놓았으니, 여유로운 마음에 해주 처녀들의 빼어난 그네뛰기 솜씨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래서 그런지 매년 10월에 열리는 대통령기 이북도민체육대회 추천 경기종목으로 “남자 씨름, 아낙네 그네뛰기” 얘기도 나온다. 체육대회는 사실상 이북도민 화합 도모에 오로지 그 목적이 있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구호는 ‘화합’이지만, 머리띠는 ‘필승’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치며 출전하는 ‘장년층’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일 뿐이다.

그러나 치열한 경기 모습은 잠시다. 이날은 이북도민의 만남의 장이다. 850만 이북도민이 모여서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염원하면서 북녘을 향해 날아가는 비둘기를 바라보며,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민족적 아픔을 달래는 날이다.
 
비둘기 마음은 오로지 콩밭에 가 있었다
 
대회때마다 평화의 비둘기 날리는 이북도민체육대회가 올해 38돌을 맞이하게 된다. 이북도민에게는 연간 최대 규모의 행사이다. 화합의 축제답게 매년 성공적으로 한해 한해를 멋지게 꾸몄다는 반응이다.

매년 10월에 열리는 이북도민체육대회 모습. 올해로 38회째를 맞는데 종종 잊지못할 에피소드를 남기기도 한다. 이북5도위원회 제공
매년 10월에 열리는 이북도민체육대회 모습. 올해로 38회째를 맞는데 종종 잊지못할 에피소드를 남기기도 한다. 이북5도위원회 제공

에피소드도 제공한다. 1994년 체육대회 개회식에서는 장구한 세월 속에서 평화를 염원해 온 비둘기조차 지쳤는지 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효창운동장에서 열리는 이북도민 체육대회 개회식에 모시고자 서울시청 공원과 협조를 얻어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 50마리를 대회 전날 이북5도청으로 데리고 왔다. 비둘기들은 청계6가 조류동물 사료상회에서 구입한 먹이를 밤새도록 곱빼기로 말끔히 먹어치우고, 북한산 자락 공기 좋은 이북5도청에서 편안한 밤을 보냈다.

날이 밝자 밥값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이들의 임무는 매우 간단했다. 사회자가 “제20회 대통령기 이북도민 체육대회 대회를 선포합니다”라고 외치면, 동시에 열리는 비둘기 집 문밖으로 나와서 평소에 하던 대로 날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부산 자갈치시장, 속초 아바이순대 골목에서는 물론 전국 각 지에서 단체버스를 타고 고향사람을 만나기 위해 상경한 이북도민들이 가득 메워지고, 단상에 내빈들이 모두 입장을 했다.

이윽고 이북도민체육대회 사회자가 외쳤다. “제20회 대통령기 이북도민 체육대회 개회를 선언합니다”라는 우렁찬 목소리가 퍼졌다. 이어서 국립경찰악대의 팡파르가 울리자 실향민들은 고향 땅 북녘 하늘을 쳐다보며 비둘기를 기다렸다.
 
이북5도위원회에서 들은 해주 사투리
 
그러나 사회자 멘트에 따라 하늘 높이 날아서 이북도민과 함께 열어가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다짐하고 그 염원을 북녘으로 전해 주겠다는 약속을 어긴 것이다.

체육대회가 끝나고, 서울시 공원과에 비둘기가 날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행사에 참여하는 비둘기에게는 미리 먹이를 주시면, 당연히 날지 않습니다”라고 하면서 “‘비둘기는 콩밭에만 마음이 있다’는 속담도 모르느냐”고 되묻는다.

38선이 그어질 때, 황해도 해주시민은 6만 2789명이었으니, 이북도민체육대회에 출전한 선수도 많았지만, 인정미 넘치는 사투리도 많다.

가끔 이북5도청(통일회관)을 찾는 이북도민들은 1층 이북5도청 방문객센터에서 담소를 나누곤 한다. 이 센터는 이명우 이북5도위원회 위원장(평안남도지사 겸직)의 아이디어로 마련됐는데, 꽤 인기가 높다.

옆에서 들으니 도통 못 알아듣는 얘기가 귀에 꽂힌다. “선생님 방금 ‘봉당에 있는 삼밭 소낭구가 몽주리 푸르니’라고 하시던데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저기 앞마당 텃밭에 있는 소나무가 모조리 푸르다’는 뜻인데 무심코 나왔단다. 이처럼 해주 사투리는 구수하고 인정미가 넘친다.(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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