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인의 좌충우돌 사회적응기(5)

이서인 시인·여자정훈장교1기
이서인 시인·여자정훈장교1기

어느덧 인생의 50대 후반이 지나가고 있는데 이렇게 사회생활에 적응이 안 되는 것도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

어느 날 불쑥 찾아온 불청객인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네 일상을 전부 뒤바꾸어 놓았다.

미세먼지 때문에 쓰던 마스크는 이제는 한 달 내내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어디를 가나 착용하고 있고, 오늘 아침에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집 앞 약국으로 달려가서 출생년도에 따라 판매하는 공적마스크 2개를 획득한 후 겨우 안심을 했다는 것이다.

모든 학교가 한 달 이상 개학을 연기했고, 초등학교 교장샘인 친구는 학교 재정과 더불어 시간제 강사들의 월급 중단과 같이 단절된 그들의 삶을 걱정하고 있다.

한편, 교환 학생으로 선발되어 한 달 전 러시아로 유학 간 딸이 그곳에서 확진자가 증가하자 급박하게 다시 한국으로 귀국했는데 2주간 격리해야 한다고 해서 안팎으로 시름이 더해졌다.

이렇게 나와 주변의 일상은 속절없이 피어나는 봄꽃에 눈길을 줄 수 없을 만큼 삭막해졌지만, 서로를 보듬으며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이겨내려는 사람들로 인해 다시금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첫째, 위기에 나선 영웅들에게 감사하기
 
국가에 위기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군 장병들은 언제나 그곳에 함께하는데 군인 출신인 나로서는 가장 먼저 그들의 소식에 눈길이 머물게 된다. 지난 3월 한 간호장교의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되었다.

마스크에 쓸린 콧등에 밴드를 붙이고 투혼을 발휘하는 김혜주 대위의 영상은 올라온 지 10여 시간 만에 조회 건수가 1만 5000회를 넘어섰다.

한편, 김 대위의 후배인 국군간호사관학교 60기 신임 간호장교 75명은 임관식 행사를 앞당겨 마치고 코로나19 사태의 최전선인 국군대구병원 등에 투입되었다. 이들의 의료 봉사 활동은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되어 국민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최근 몇 년 동안에 간호장교들의 모습이 언론에 이렇게 많이 노출된 것도 아주 보기 드문 현상이다. 위기가 도래해야 숨어 있던 영웅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모양이다.

그 영웅 중에는 초등학교 동창인 김00 의사도 있다. 가끔 나의 건강 자문 역할도 하고 있는 그 친구는 현재 00구 보건의로 근무하는데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면서 매일이 전투라고 동창 단톡방에 가끔 소식을 전한다.

뱃살이 조금 넉넉했는데 한 달 만에 홀쭉해진 친구의 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위로의 말을 전한다. “네 덕분에 우리가 안전하다. 코로나 사태 끝나면 최고로 맛있는 곱창구이 사줄게. 힘내라.”
         
둘째, 사회적 기부활동에 동참하기
 
코로나19 사태는 사회활동에 가장 커다란 제약을 주고 있지만, 그와 더불어 경제활동에도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부터 사람과의 거리 두기를 하다 보니 개인적인 모임은 다 취소가 되었고 4월 중순에 계획했던 동창 모임도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되었다.

이러한 시장의 불황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자영업자들에게 직격탄이 되었고 이에 용감한 시민들이 발 벗고 나섰다. 이른바 ‘착한 임대인 운동’이다.

지난달 우리 삼남매 단톡방에 막내 동생의 메시지가 떴다. “누나, 형. 우리도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하는 게 어때? 창고 CCTV를 보니 이번 달에 마트에 주차 차량이 절반은 줄었어.”

사실 지난해 우여곡절 끝에 완공된 물류창고는 아직도 한 동이 미임대 상태다. 게다가 투자자금 중 일부는 보증금이 포함되어 있는 상태라 임대 수입은 6월 이후에나 가져가기로 한 터였다. 퇴직 후 동생들과 함께 시작한 창고 임대사업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생각하지도 않은 고민거리를 가져온 것이다.

몇 번의 장고 끝에 우리는 임대 수입을 한 달 더 미루기로 하고 임대료를 깎아주기로 결정했다. 가계 사장님들은 장사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얘기하기도 어려웠는데 너무 고맙다고 했다. 수입은 줄었지만 지금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에 마음만은 뿌듯했다.
                      
셋째, 나만의 루틴(routine) 만들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사람과의 거리 두기를 계기로 올봄에 새롭게 시작한 것이 있다. 하루 만보 걷기다. 다행히 집 근처에 경의선숲길이 위치해 있어서 매일 오후에 마스크를 끼고 산책을 나선다.

가좌역에서 내려 경의선숲길 초입에 들어서면 온갖 봄꽃들이 나를 맞이한다. 어사화로 알려진 영춘화로부터 시작한 봄은 개나리와 목련을 피워내더니 지난주부터 연남동과 와우교 구간에서는 벚꽃이 흐드러진다.

신수동 구간 철길 건널목에 위치한 화분에서는 이제 막 튤립이 꽃봉오리를 올리기 시작했고 대흥동 구간에 들어서니 황매화와 라일락이 뾰족하니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새창고개를 넘어 집으로 오면 총 6.5km의 만보 걷기가 끝이 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우리네 일상이 무너지고 있지만 이미 봄은 우리 곁으로 와있고 따사로운 봄처럼 서로를 보듬다 보면 지금의 어려움도 다 지나가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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